당신은 누구십니까?

49개월 25일

by frarang

아내와 난 동갑내기다. 서로 부르는 호칭은 ‘자기야’ 또는 서로의 이름 그리고 편안함의 극치인 ‘야’이다. 연애 시절부터 친구처럼 말과 행동을 편하게 하면서 지냈다. 그 여파가 결혼 후에도 이어진 것이다. 결혼 초기엔 자기야 나 오빠 또는 애칭으로 호칭을 부르다 결혼 생활이 어느 정도 지났거나 자녀가 태어나면 호칭은 여보 라든가 00 아빠, 00 엄마로 부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직도 서로의 이름과 ‘야 ’ 라며 편한 호칭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선호하는 건 ‘자기야’, 아내가 선호하는 건 ‘야’이다. 아내의 ‘야’라는 호칭이 깔보거나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편하게 날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가끔 우리가 서로 ‘야, 야’ 하며 편하게 호칭을 부를 때 뒤통수가 따끔거릴 때가 있다. 주아가 보고 있어서인데 서로 편하게 대하는 모습이 혹시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건 아닌가 싶어서다.

“자기야, 우리 주아가 있을 땐 서로 ‘야’라고 하지는 말자. 주아가 보기에 안 좋을 것 같아.”

진지한 나의 제안에 아내는

“야, 우리가 잘 지내면 괜찮거든”

“그럼 주아 아빠, 주아 엄마라고 부를까?” 내가 다시 물어보자

“그냥 편하게 부르자. 때가 되면 호칭도 달라지겠지.”

조금 짜증 섞어 말하는 아내에게 더 이상 말했다가는 동생 부르듯 ‘야’라고 할까 무서워 그쯤에서 그만뒀다.

사실 나도 누구누구 아빠라든지 엄마라는 호칭은 별로 당기진 않았다. 결혼 후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삶보다는 자녀를 위해 남은 일생을 희생하며 살아야 한다는 대명사적 표현으로 생각해서였다. 00 엄마, 00 아빠가 아닌 내 존재 그대로 인정받으며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일종의 자아의식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왜 세상의 많은 부모가 누구누구 엄마, 아빠로 살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하다가 호칭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게 되었다. 시작은 전과 마찬가지로 ‘야’라는 표현을 주아 앞에서는 하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괜찮다, 안 괜찮다를 주고받다가 동시에 주아를 바라보고는 떠오른 생각. ‘그래, 주아에게 물어보자’.

“주아야? 엄마 아빠가 서로 어떻게 불렀으면 좋겠어?”

내가 먼저 물어봤다.

“1번 야, 2번 자기야, 3번 여보, 4번 주아 아빠.”

주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주아 아빠라고 작은 소리로 수줍게 대답했다. 아내도 물었다. 이번엔 고민 없이 주아 엄마라고 했다.

어색하지만 이제부터는 주아 아빠, 주아 엄마라고 불러 보련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우리끼리만 그렇게 안 불렀을 뿐 다른 사람은 다 주아 아빠, 주아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름 대신에 누구 아빠, 누구 엄마나 누구 남편, 누구 아내, 누구 아들, 누구 딸이라는 호칭은 그 사람의 존재를 망각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 되는 표현이었다. 나를 품어주는, 내가 품는 또 다른 내 이름.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전 26화부모도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