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부재는 반드시 가정을 이루겠다는 삶의 이유가 되었고, 부모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은 반드시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동기가 되었다.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도 낳아 키우고 있으니 열심히 살아갈 이유는 더 확실해졌다. 이젠 좋은 부모가 돼야 하는 큰 숙제가 남았는데 이건 정말 정해진 답이 없는 일이다. 내가 되고 싶은 좋은 부모, 좋은 아빠는 오랫동안 함께하는 부모,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많은 부모 그리고 자녀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부모이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녀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부모가 되는 것인데 이 기준은 내 경험의 반영이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동은 가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부부싸움이 잦은 가정에서 자란 자녀는 공포와 불안에 위축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공격성을 띄게 될 수 도 있다’
난 엄밀히 따지면 가정폭력의 환경에서 자랐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유추해본다면 난 가해자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인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이러한 연구 결과나 기사들을 볼 때면 마음 한켠이 찌릿거렸다. 화를 참지 못해 욱하거나, 누군가와 다퉜을 땐 행동의 원인이 혹시 어릴 적 가정환경의 영향은 아닌지 행동 하나하나, 감정 한 겹 한 겹을 세밀하게 뜯어보곤 했다. 가정폭력에 노출되었다고 모두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유독 예민했다. 훗날 결혼을 하고 아내, 자녀에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흡수되어 어딘가 숨어있는 공격성에 상처를 주진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의 두려움은 고스란히 양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의 투정을 온전히 받아주지 못해 짜증을 내거나, 단호한 말과 행동으로 울게 할 때면 혹시 마음에 상처를 받진 않았을까,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함께 커가진 않을까 매 순간 조마조마한다. 그리고 이런 조바심은 늘 후회와 미안한 일만 기억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나를 보며 어릴 땐 다 혼나기도 하고 때론 궁디 팡팡 하면서 크는 거라 한다. 또 이때는 크면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부담 갖지 말라고 토닥인다. 하지만 난 늘 기다려 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고, 화낸 것에 미안해하고,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고, 육아정보가 부족한 것에 미안해하고, 부부싸움을 보인 것에 미안해하고, 퇴근이 늦어 더 놀아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아침에 눈뜨면 출근하고 사라진 빈 이부자리를 미안해한다. 이런 모습은 반드시 좋은 부모, 좋은 아빠가 돼야 한다는 노력이라고 포장된 강박일지도 모르겠다.
기다려 주지 않아도 스스로 하려는 아이,
화를 내도 다시 웃어주는 아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표현하는 아이,
육아정보가 부족해도 많은 걸 알아가는 아이.
부부싸움을 보여도 울지 않는 아이,
퇴근이 늦어도 기다려주는 아이,
빈 이부자리를 보고도 저녁에 돌아올 거라 믿는 아이.
나의 강박에 가까운 마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느슨해지고 있다. 아이를 위한다며 스스로 멱살잡이를 하던 나를 아이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조여 있던 손을 펴게 하였다. 난 그저 아이 옆에서 자동차 소리를 내며 함께 놀아주고, 엄마가 밥하는 동안 함께 산책하고, 떼를 쓰면 아내 찬스를 쓰고, 가끔 장난감을 선물하고, 목욕을 함께하며 낚시놀이를 하고, 옆에서 코를 골며 잔 것 밖에 없는데 아이는 내가 미안해하는 일들을 알고 있는 듯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그런 거였구나.’
특별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 좋은 부모, 아빠가 될 수 있구나. 아이에게 좋은 기억만 주려고 애쓰기보다는 화도 내고, 설명하고, 화해하고, 약속하고, 안아줘도 좋은 부모, 아빠가 될 수 있구나. 아이는 나의 강박을 뚫고 성장하고 있었고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뚫려 성장하고 있었다. 한결 홀가분해졌다. 이게 다 아이 때문이다.
나는 이제 사라진 부모보다는 부모로 살아가는 나에게 더 집중하고, 부모의 빈자리는 내가 부모로써 굳건히 자리 잡아가고 , 존재하지 않는 내 가족보다 새로운 우리 가족을 지켜가면서 자연스럽게 결핍과 강박에서 회복해 가고 있다. 나는 아이가 커갈수록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가는 아빠가 되고, 함께 추억을 쌓아가는 아빠이며, 자식에게 사랑받는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 그토록 되고 싶었던 부모, 아빠의 모습을 아이 덕분에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게 다 고운 내 새끼, 우리 아이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