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개월
퇴근 후 아무리 서둘러도 여덟 시 반 전엔 집에 올 수 없다. 회사가 멀어서인데 퇴근이 늦어 애타는 사람은 나 말고도 한 명 더 있다. 바로 주아다. 네 살 까지는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릴 체력이 있었는데 다섯 살 반으로 올라가면서 낮잠을 자지 않는다. 체력은 이미 어린이집을 나오면서 바닥이 되고 저녁밥으로 힘을 보충하지만 내가 퇴근하고 올 때쯤이면 그 힘도 맥을 못 춘다.
아내는 늘 애매하다.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아빠랑 논다며 잠을 늦게 자고 내가 오기 전에 먼저 재우면 아빠를 기다리는 주아가 안쓰럽고. 요즘엔 아홉 시가 다 되어가면 침실로 데려간다. 재운다는 아내의 문자를 받으면 난 조용히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온다. 이미 잠이 들 때도 있고 아직 엄마와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날도 있다. 야근을 며칠 하다 보면 주말 말고는 주아를 한 번도 못 보는 때도 있다. 주아가 먼저 잠든 날이면 볼에 뽀뽀하며 미안해를 속삭인다.
하루는 주아가 일찍 잠들었는지 아내가 거실에 나와 있었다. 주아 자냐고 묻자 아내가 말한다
“아빠 보고 싶다고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어. 겨우 재웠어.”
미안한 마음에 잠든 주아 볼에 뽀뽀를 열 번했다.
가끔 주말 당직을 하는 날이면 아침부터 주아는 아빠 어디 갔냐며 울기도 한단다. 일주일 내내 기다렸는데 아빠가 또 없어서다. 그럴 때면 회사가 멀어 미안하고, 당직을 나가 미안하고, 아침 일찍 나가 미안하고, 늦게 들어와서 미안하고, 인사 없이 나가 미안하다. 모든 게 미안해진다.
주아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살짝 아리다가도 꽉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날 보고 싶어 하고, 함께 있고 싶어 하고, 없으면 섭섭해하는 그 마음들로 다시 가득 채워진다. 마음이 더 충만해진다. 부모를 일찍 잃어 비어있던 그 자리가 부모가 되면서 채워지는 것 같다. 자녀는 부모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자란다. 그리고 부모 또한 자녀의 끝없는 사랑을 받고 자란다. 아빠란 건, 부모란 건 이런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