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자
지훈이 담임 선생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후 한 시쯤이었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 00 고등학인데요 지훈이 선생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지훈이가 오늘 점심 먹고….”
전화를 끊고 바로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로 가는 택시 안에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속말로는 별일 아닐 거라고 되뇌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지훈이를 데리고 정문으로 나오셨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지훈이와 함께 집으로 왔다. 택시 안에서 지훈이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차창을 바라봤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밥 먹었어 와 네라는 대화만 있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지훈이가 보이지 않자 담임 선생님은 또래 도우미 학생에게 지훈이를 찾아보라고 했다. 도우미 학생은 옥상에서 지훈이를 발견했다. 지훈이는 옥상 난간 위에 서 있었다. 도우미 학생은 놀라 선생님에게 바로 전화했고 옥상으로 달려온 선생님은 지훈이를 내려오게 했다. 그러고 나서 전화를 한 것이다. 모두가 놀랐다.
지훈이는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고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특수학급과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살고 있는 곳은 공동생활가정이다. 이곳에 입주한지는 6개월 정도 됐다. 법인에서 운영하는 00구 지역의 공동생활가정에서 지내다 시설이 없어지면서 오게 된 것이다. 그동안 아무 탈 없이 편하게 지냈다. 하고 싶은 건 하고 원하지 않는 건 하지 않고 지냈다. 먼저 말을 거는 일은 별로 없었으나 물어보면 대답도 잘했고 웃는 모습도 자주 봤다. 일단 화를 내거나 자해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입주 당시 인적 사항을 전달받은 내용에는 화가 날 때 자신을 때리는 행동을 자주 한다는 내용과 손톱과 주변을 상처가 날 때까지 입으로 뜯는 습관이 있다고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자해를 하는 행동은 한 두 차례 정도였으며 하지 말라고 하자 이후에는 하지 않았다. 손톱을 뜯을 때도 상처가 난다고 그만하라고 일러주니 안 하려고 하던 아이였다. 그렇게 잘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집에 와서는 평소처럼 씻고 자기 방에서 쉬도록 했다. 왜 그랬는지 물어보거나 특별히 더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는 우선 원장님께 상황을 전달했다. 당분간 학교를 보내지 말 것과 잘 지켜보라고 당부하셨다. 담임 선생님에게는 안정될 때까지 등교를 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다음 날 인근의 건강가족지원센터에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내일 오전 10시로 상담을 예약했다. 이제야 지훈이에게 왜 그랬는지 자연스럽게 물었다. 얼굴을 숙이고 바닥을 보며 말했다. 학교도 가고 싫고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다고 했다. 지훈이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못할까 봐 걱정이에요.”
건강가족지원센터에서는 질문지를 작성하는 방식의 심리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자 상담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우울증세 조금 높게 나왔지만 아주 위급한 상태는 아니라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치료 수업을 다녀보면 좋을 것 같다며 병원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하셨다. 지훈이는 중학교 3학년까지 소아정신과를 다녔다. 진료를 보던 병원에 연락하여 어릴 때부터 지훈이를 봐주던 의사 선생님을 찾았고 어렵게 진료 예약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지훈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훈이도 마찬가지였다. 보호자로서 지훈이의 일상생활 모습과 다시 병원 진료를 보게 된 과정을 설명했고 의사 선생님도 지훈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약을 처방받았다. 의사 선생님 역시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하셨다.
지훈이는 2주간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나와 함께 외식도 하고 햄버거도 먹으러 다니고, pc방도 가고, 영화도 봤다. 매일 붙어 다녔다. 그렇게 2주가 흘렀고 지훈이는 다시 학교를 다녔다. 담임 선생님께도 그동안의 일을 알려드렸고 안정되었으니 다시 학교를 보내겠다고 했다. 지훈이는 예전처럼 학교를 잘 다녔다. 얼마 뒤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머리가 쭈뼜섰다. 차분하게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엔 놀라지 않았다. 대신 화가 났다. 담임 선생님은 지훈이가 아직 안정이 필요한 것 같으니 점심 먹고 하교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또 그런 일이 벌어질까 봐, 만에 하나 뭔 일이라도 생길까 봐 학교에서 걱정이 많다며 오전 수업만 듣고 귀가를 하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화가 났다.
나는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럼 학교에서는 뭐 하는 거예요? 학교에 있는 동안 학생이 학교생활 잘하도록 돕고 무슨 일 생기지 않도록 돌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뭔 일 생길까 봐 겁나서 집에 보내는 거 아닌가요? 의사 선생님도 괜찮다고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 후 지훈이는 예전처럼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달라진 건 집과 학교에서 관심이 더 많아졌다는 거다. 이따금 수업시간에 화를 낸다던가 한 두 차례 수업 중 교실을 이탈하는 행동이 있었을 뿐이다. 지훈이와 대화를 자주 했다. 학교 생활은 어땠는지, 복지관은 잘 다녀왔는지, 등하교에는 어려움이 없는지, 그리고 가장 걱정거리였던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우선 졸업 후 천천히 직장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당장 취업을 안 해도 된다고 다 그런 거라고 안심시켰다.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니 버스와 관련된 일이 있는지도 알아보자고 했다. 혹시 돈 걱정을 할까 봐 성인이 되면 장애연금과 생계비로 한 달에 얼마씩 나오는지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걱정거리를 하나씩 하나씩 덜어주었다.
지훈이가 생명에 위험할 정도의 위급한 상황이었으면 그에 맞는 긴급 조치를 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훈이는 또래들처럼 고민거리가 있었고 그걸 견디지 못했고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힘들어했던 것이었다. 그럴 땐 지훈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사람들이 조금 더 관심 갖고 지지해주면 될 일이었다. 시설에 산다고 모든 일을 시설에 떠미는 모습은 무책임한 일이다. 시설 입주인의 삶은 오직 시설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은 시설과 지역사회를 구분 짓고 관계를 끊는 차별의 행위다.
혹시 나를 염려 해 몸을 사린 학교가 잠시 미웠지만 그래도 본분을 잃지 않아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