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활동
일요일 아침은 분주하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세수와 양치를 한다. 잠시 후 각 방에선 전기면도기 소리가 들린다. 칼날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면 깔끔한 옷을 갈아입은 네 명의 입주인이 거실로 나온다.
“다녀오겠습니다”
우성 씨와 지훈 군은 교회로, 재선 씨와 종국 군은 성당으로 향한다. 교회는 걸어서 십 여분 거리에 있고 성당은 버스를 타고 십오 분 거리에 있다. 미리 짝을 지은 것처럼 둘 씩 나눠 간다. 함께 가는 사람이 있으니 걱정도 반으로 준다. 잘 다녀오라고, 끝나면 연락 달라는 인사를 하고 나면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다.
우성 씨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었다. 공동생활가정인 이곳에 입주 전에 거주시설에 계셨는데 그곳에서도 교회를 다녔다. 지훈 군은 어릴 때 성당을 다녔다. 세례도 받았다던데 지금은 교회를 다닌다. 교회가 더 좋다는 이유에서다. 종국 군과 재선 씨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성당을 다닌다. 주중에는 보호작업장과 학교를 다녀 주말은 쉬고 싶을 텐데 아침부터 준비하고 나가는 걸 보면 뭐든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다.
어느 날 종국 군이 교회를 가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도 몇 번 가보긴 했는데 오늘은 성당 말고 교회를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순간 생각이 많아졌다. 성당도 오래 다녔고 세례도 받았고 성당 어른분들도 잘 챙겨주셨는데 갑자기 교회를 간다니. 성당 잘 다니다 왜 갑자기 교회 가는 거냐 묻자 웃으며 우성이 형이랑 같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성 씨는 너 , 나 따라오지 마 하면서 거부한다. 둘은 평소에 티격태격 하는 사이다.
나는 우성 씨에게 종국 군과 함께 교회에 다녀올 것을 부탁했다. 지훈 군을 포함해 셋이 교회를 가고 재선 씨는 혼자 성당을 갔다. 하루는 성당, 하루는 교회를 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종교가 장난도 아니고. 종국 군이 돌아오자 설득에 나섰다. 오랜 전부터 성당을 다녔는데 성당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 그곳에서 많은 도움도 주셨는데 갑자가 안 나오면 걱정하지 않겠냐고. 종국 군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더니 성당을 가겠다고 했다.
일요일 아침. 종국 군은 또 교회를 가겠다고 했다. 성당 간다고 하지 않았냐며 따져 묻자 교회가 더 재밌다고 한다. 교회 가고 싶은데, 교회 가고 싶은데 를 연속으로 말했다. 종국 군이 불안할 때 나오는 모습이다. 나는 알겠다며 가고 싶은 곳으로 다녀오라고 말했다. 나는 우성 씨의 갑자기 변한 무표정을 모른 체하며 종국 군과 함께 다녀올 것을 부탁했다. 이후 종국 군은 교회만 다니고 있다.
지훈 군이 교회에 안 가도 되냐며 묻는다. 오호라 잘됐다 싶어 그럼 성당 갈 거냐고 물었다. 원래부터 성당 다니지 않았냐며 설득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지훈 군은 목을 긁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성당도 가기 싫으냐고 묻자 네 라고 짧게 대답했다. 다시 성당 가면 좋겠는데 뒷말을 흐리며 말한 후 그럼 가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자 감사합니다 하며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만진다.
내 욕심 같으면 입주인이 모두 같은 종교를 가졌으면 좋겠다. 거기에 더해 지원자인 나와 같은 종교였으면 좋겠다. 그래야 성당이든 교회든 절이든 함께 다녀올 수 있고 걱정거리도 줄고 일도 수월해지니까. 처음에 창락 씨와 혁수 그리고 지훈이가 성당을 다닌다고 들었을 때 괜히 기분이 좋았다. 같은 종교라는 동질감도 느꼈고 주말에 함께 다니면 편하겠다는 계산이 빠르게 스쳤다. 종교 기념일이나 행사도 셋이 같이 할 것이니 지원도 한 번에 끝낼 수 있고 만약 내가 같이 못 가더라도 셋이 함께라면 걱정도 덜겠다는 셈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잘 다니던 성당을 안 가고 교회를 가겠다거나 안 가겠다고 하면 누굴 따라가서 지원해야 하는지 복잡해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종교가 장난인가. 사람 따라 재미 따라 취향 따라 옮겨 다니고 바꾸는 게 종교라 할 수 있나. 신앙이라 함은 믿음이 기본 조건인데 일주일짜리 믿음이라면 그건 신앙일까. 종교에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알려드려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내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다. 어릴 땐 교회를 다니다가 성인이 되어 성당을 다니게 된 사람, 종교가 없다가 신앙을 갖게 된 사람, 작년까지 함께 성당을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교회를 다니게 된 일 등 이런 일은 흔한 일이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비난받거나 혼날 일이 아니다. 어디를 다니든 누구를 믿든 그건 자유니까. 종교 생활은 누가 강요하거나 정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스스로 선택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사회복지시설 대부분은 종교 단체나 개인이 종교적 신념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되어왔다. 이러한 이유로 입주인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해당 종교를 갖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성 씨나 재선 씨, 지훈 군과 종국 군도 처음 입주한 시설에 의해 종교를 선택했기보다는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종교 활동을 강요했든 자발적이든 간에 시설과 직원들이 주도하는 것에는 인권 문제 등 여러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시설 입장에서는 종교로 인해 시설을 설립됐고 그 혜택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쓰이고 있으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한다며 순기능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언제까지 시설의 입장이다. 소수의 설립자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사회보다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는 사회가 먼저다.
최근에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통해 복지시설 내 종교 강요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려는 논의가 있었으나 종교계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감동을 준다면 사람들이 따르고 모이는 법, 강요하거나 유인하지 않아도 사회와 이웃, 소외된 이들을 위하는 삶을 산다면 그 모습에서 사람들은 신을 찾고 만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신앙은 신자의 수, 기도의 수, 헌금의 수가 아니라 조건 없이 인간을 사랑했던 신의 마음을 닮으려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