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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rang Aug 07. 2020

사라진 봉사자

코로나 19의 시대, 사회복지사의 고민

사진출저 : pixabay

160명. 올해 상반기 내가 근무하는 복지기관에 다녀간 봉사자의 수다. 예년 같으면 1000명이 훌쩍 넘어 계산기를 두드리는 재미가 있었지만 올해는 10분의 1로 줄어 목표 달성률을 알아보는 것조차 싫어진다.  이게 다 코로나 19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피해를 보는 곳은 기업, 자영업자뿐만이 아니라 사회복지기관도 그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비길 수는 없지만 담당자로서 느끼는 체감은 거의 실업과도 같다. 봉사자들에게 보내는 안부 문자도 이젠 보낼 인사말이 바닥이 났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19를 조심하라는 말밖에는 더 무어라 할 말이 있을까. 많은 사회복지기관도 우리와 같을 상황일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19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코로나 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 되면서 많은 학자들이 코로나 19 전과 후의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신문과 잡지엔 분석, 예측 기사가 꾸준히 실리고 서점엔 여러 학자들의 담론을 담은 도서들이 넘쳐나며 유튜브에는 각계각층의 전문가 인터뷰 영상이 줄 서고 있다. 이미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많은 예측과 분석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UNTACT 바로 비대면이다. 말 그대로 접촉이나 대면하지 않고 진행되는 활동이나 서비스를 말하는 것인데 코로나 19 이후 세상은 그런 세상이 될 것이란다. 다시 말해 사람과 대면 없이 원하는 일을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젠 공간의 제약 없이 어디서든 편하게 일 할 수 있게 된다는 건데, 세상이 아무런 예고 없이 몇 단계를 뛰어넘어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듯하다. 번거로움이 사라져 편할 수 있겠지만 사람과 대면하면 겪는 아기자기한 삶도 사라지진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이런 염려는 봉사활동에도 영향을 주진 않을지 불안하게 만든다. 올 상반기 봉사활동 수치야 코로나 19가 대유행되는 시점이었기에 이해할 수 있지만 코로나 이후 다시 말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봉사자 수가 예전 같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봉사자 모집, 봉사활동 진행, 봉사자 교육, 봉사자 관리 등 주 업무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일 수 있겠지만 봉사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내 일 보다는 세상 일이 걱정된다.    

 

우리가 남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인디언 최후의 추장인 제로니모는 ‘강을 건너는 방법은 강을 건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우리가 남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의 크레이그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므로 우리는 공감이라는 능력을 통해 함께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남이 되어본다. 공감은 좋은 일, 즐거운 일보다는 슬픈 일, 어려운 일, 힘든 일, 고통스러운 일을 만날 때 그 힘이 발휘된다. 함께 울어주고, 손잡아주고, 아파해주고, 걱정해주면 일이 당장 해결되진 않지만 위로를 주고, 힘을 주며, 웃음을 준다. 어쩌면 일을 해결해주는 것보다 더 큰 힘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는 공감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봉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이 될 수 없으므로 남이 겪는 일을 뼈 속까지 알 수 없다.  그 일이 얼마나 기쁜지, 놀라운지, 행복한지, 아픈지, 슬픈지, 불안한지. 공감 능력조차 미흡하다면 더 알 길이 없다. 봉사는 누군가의 일을 직접 느끼고 볼 수 있는 경험을 준다.  태풍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의 피해현장을 복구하면서 터전을 잃은 절망을 느끼고, 기름이 휩쓸고 간 바닷가를 닦으며 어민들의 짙은 한숨을 느끼고 , 연탄을 나르며 흐르는 땀방울 속에서 추위를 느끼고, 무료 급식소에서 밥과 국을 듬뿍 퍼주며 허기를 느끼고,  부모 없는 아이들과 함께 놀며 미소 뒤에 숨은 울음을 느끼고, 장애인의 손과 발을 대신하며 뻣뻣함을 느낀다. 봉사는 누군가의 어려움을 더 가까이 느끼는 것이며 누군가가 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자연스레 공감 능력으로 바뀌고 세상을 보는 눈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비대면으로 줄어들 대면의 기회. 봉사는 대면으로 진행되는데 봉사 역시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될까? 봉사가 줄어들면 봉사자 수가 줄고 , 기관의 방문자 수가 줄고, 후원금도 줄어 기관운영의 어려움이 생기고, 후원 봉사사 담당자 업무에 혼란이 생기고, 입주 장애인 분들의 프로그램 운영에 차질이 생기고, 최저기준 서비스 유지에도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보다는  타인의 어려움을 모르는 세상,  단편적인 시각으로 보게 될 세상, 공감이란 말이 사라질 세상, 사람들의 자아실현 목록에서 봉사활동이 빠질 세상, 인간미가 없어질 세상이 될까 그게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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