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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프라우 Aug 14. 2023

FrauFrau's Frau.006 신사임당

FrauFrau's Frau-06

 현대 여성의 삶과 자유에 대한 성찰을 목적으로 역사 속 인물을 조명해 보는 'FrauFrau's Frau'의 여섯 번째 주인공은 현 대한민국 최고액권 화폐인 5만 원권 지폐의 모델이자 뛰어난 문인이며 예술가였던 신사임당입니다.

 일반적으로 현모양처의 상징,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만 알려져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문인이자 화가, 지식인으로서의 신사임당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현모양처'나 '이이의 어머니'라는 결과값이 아닌, 동시에 현모양처라는 이미지가 여성의 자유에 반한다는 피상적인 회의(懷疑)가 아닌, 신사임당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아보는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신사임당의 본명이 '사임당'이라고 알고 계신데요. 사실 사임당은 그 사람이 머무는 거처를 이름 대신 부르는 '당호'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이라는 인물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사임'이라는 아호를 스스로 붙입니다. 그리고 후대에 들어 그녀가 여자임을 드러내기 위해 안주인이 기거하는 별채를 의미하는 '당'을 붙여 '사임당'이라는 호칭이 생긴 것이죠. 그녀의 정확한 이름은 밝혀진 바 없으며 본관은 '평산 신씨'입니다.

 신사임당은 1504년 12월 외갓댁(오죽헌)이 있는 강원도 강릉 죽헌리에서 태어납니다. 상당히 유복하고 지적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유독 기억력이 뛰어나 학문에 정통했고 시, 글, 그림에 아주 능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림의 경우 7세부터 시작하였는데 산수화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안견의 그림을 본떠서 그릴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자수, 바느질, 요리와 살림 솜씨까지 좋았다고 하니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주변 어른들의 총애를 듬뿍 받으며 성장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엄친딸 중의 엄친딸, 대단한 수재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신사임당은 아버지가 골라준 '이원수'라는 인물을 남편으로 들입니다. 집안만 좋지 가난하고 관직도 없었던 이원수를 아버지가 사위로 정한 이유는 오직 딸 신사임당을 위해서였습니다. 유능한 자신의 딸이 최대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예술가로서 살길 바랐던 아버지는 딸이 굶지 않으며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동시에 당장 친정살이가 가능하게끔 여러 환경적 요소를 고려해 이원수를 낙점한 것이었습니다.

 신사임당은 이원수 사이에 5남 3녀를 두었고 이들 중에는 관직이나 예술가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 많으며 특히 셋째 아들 이이는 훗날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이름난 대학자가 됩니다.


 신사임당은 당대 공인된 화가나 문인은 아니었습니다. 아들 이이의 기록이나 여러 문서들을 통해 그녀가 어릴 때부터 문장과 그림에 능했고 그녀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여러 편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역사 고증이라는 것이 대부분 오래된 고서나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임을 고려하면 그녀의 능력이 근거 없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1537년 그녀가 과부가 된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는 많은 이들에게 애송되며 오랫동안 명시로 꼽힙니다.

 신사임당에 대한 '현모양처' 프레임은 그녀 사후 100년이 지나 아들 이이의 계통을 이은 송시열이라는 유학자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본인 학파의 시조 격인 율곡 이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의 어머니 역시 위대한 어머니이자 현모양처로 말 그대로 마케팅을 한 것이죠.


 오히려 신사임당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분고분 내조를 잘하는 현모양처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버지의 선구안으로 경제력, 집안, 학식 모든 면에서 남편과 그 집안을 능가한 신사임당은 남편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다그치고 자식들의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면서 오히려 가장의 역할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충분히 그럴만한 성격의 그릇과 재능의 크기가 받쳐주었다는 것이죠.

 훗날 남편 이원수는 외도를 하다가 첩을 들이고 신사임당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혜롭고 당찬 부인이었던 신사임당이 공자와 주자 등 옛 성인들을 언급하며 남편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새 장가를 가지 말라고 요청한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렇게 신사임당의 말년은 남편과의 갈등과 자녀들에 대한 교육으로 채워지다 1551년 5월 심장병으로 48세에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를 그저 '현모양처'와 '이이의 어머니'로 포장한 것은 후대의 여러 이해관계에 의해서였습니다. 정작 그녀는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한 주체적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내재화된 힘이 있었기에 율곡 이이와 같은 위인이 배출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남달랐던 이이는 어머니가 병으로 누웠을 때 매일 1시간씩 기도를 올렸으며, 돌아가셨을 때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첩과 살림을 차린 아버지를 원망하며 금강산으로 출가해 승려가 되기도 합니다.


 프라우프라우는 더 이상 현모양처의 전형이 아닌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집안과 자녀들을 일군 지혜로운 가장으로서 신사임당을 비추고자 합니다. 여성들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었던 당대에 여러 사료를 통해 그 능력과 올곧은 성격이 오늘날에까지 전해지는 신사임당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실지, 어떤 일을 하고 인류사에 어떤 업적을 남길지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썸네일 Image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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