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03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신체 일부가 연구의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모자라 그 연구로 인해 어떤 기업은 막대한 수익까지 거둬들였다면?
중요한 건 나와 내 가족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학사에 족적을 남길 정도의 소스를 제공하고 누군가는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했지만, 정작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72년 전 미국에서 시작됩니다. 당시 31살의 헨리에타 랙스는 질 출혈이 계속되자 존스홉킨스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랙스의 자궁에서 안타깝게도 악성 종양이 발견됩니다. 이 과정에서 담당의는 랙스에게서 채취한 암세포를 본인 동의 없이 인근 연구소로 보냈고 랙스의 몸에서 나온 암세포는 20~24시간마다 2배로 무한 증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당시 채취한 다른 암세포들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랙스의 세포는 죽지 않는, 말 그대로 '불멸의 세포'였던 것이죠. 실로 대단한 발견이었습니다.
하지만 랙스는 자신의 세포를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암 진단 8개월 만에 숨을 거둡니다. 자신의 세포가 학계의 이슈를 몰고 오고 전 세계 연구실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죠.
이후 그녀의 세포는 전 세계 실험실에 공유되며 소아마비, 결핵, 암 등의 지독한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실제로 백신 개발과 의학 연구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하네요. 더불어 '불멸의 세포'라는 별칭과 함께 '헬라(HELA) 세포'라는 이름을 얻게 되죠.
이렇게 엄청난 업적을 남긴 랙스의 헬라세포. 하지만 랙스와 그 유가족은 관련해서 어떠한 통보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이러한 부당한 진실을 알게 된 랙스의 가족은 지난 2021년 헬라세포를 배양해 전 세계 실험실에 판매한 바이오 기업 '써모피셔사이언티픽'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최근, 양측의 합의를 통해 드디어 직접적인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됩니다. 무려 72년 만의 일인데요.
유족 측 변호사 벤 크럼프는 “랙스에 대한 착취는 지난 역사에서 흑인들이 보편적으로 겪어온 투쟁을 대변한다”며 “미국의 의학 실험 역사는 의학적 인종차별 역사이기도 하다”라고 전했습니다.
물론 랙스가 흑인이라서, 그리고 여성이라서 이러한 피해를 받았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다만 당시 미국과 세계의 정서를 대입해 보면 분명 특정 계층에 대한 괄시와 핍박이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는 계기가 되었다고 반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크럼프 변호사의 말이 그저 한 쪽의 입장이라고 생각할 순 없을듯합니다.
여성의 자유를 위해, 나아가 오늘날 어디에선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권리를 잃어가고 있을 모든 이들을 위해 세상에 대한 끝없는 물음과 비판이 멈춰 선 안될 것 같습니다. 프라우프라우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하루하루 정진하겠습니다.
썸네일 Image HBO가 제작한 헨리에타 랙스 실사 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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