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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n Apr 19. 2020

코로나 시대에 독일에 산다는 건

오늘은 화장지를 살 수 있을까?

이번 총선은 내게 투표권이 생긴 이후로 참여를 하지 못 한 첫 번째 선거였다. 이미 2월에 재외국민 등록을 마쳤으니 원래대로였다면 4월 첫 주에 재외국민 선거에 참여했어야 하지만, 독일 정부에서 외출 자제를 권고하고 도시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선관위는 독일 영사관의 선거 사무를 중단했다. 독일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40여개국에 사는 재외국민들이 이번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선거 당일에 유투브 스트리밍으로 개표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비닐장갑을 낀 채 선거에 참여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사람들이 외출을 꺼려 투표를 안 하면 어쩌나 걱정한 마음이 무색하게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총선 투표율을 기록하며. 한국의 가족이나 친구와 통화를 하면,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다거나 h&m에서 옷을 샀다는 말로도 한국이 다른 세상처럼 멀게 느껴졌는데, 심지어 선거를 치뤄내다니.


그럼 누군가는 궁금해할 수도 있겠지. 독일에 사는 사람들은 미용실에도 옷을 사러도 가지 못 하는 거냐고. 그렇다. 독일은 3월 22일부터 일명 '락다운' 상태다. 식료품/생필품을 파는 마켓, 약국을 제외한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포장만 가능하도록 매장 안 의자를 막아둔 동네 빵집

 작은 식당이나 카페들은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일부 문을 열었지만, 독일 정부에서 공공장소에 3명 이상이 모여있을 경우 최대 25,000유로(한화 약 3천3백만원)의 벌금을 매기기로 한 이후 무척 썰렁해졌다. 언제 다시 상점들이 문을 열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4월 19일 날짜로 락다운이 끝났어야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5월 3일까지로 연장했는데 아직까지도 일일 확진자가 천 명대이니 5월 이후라고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코로나가 덮친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라며 유투브에 돌고 있는 영상들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휴지를 사려고 몸싸움을 벌이는 손님들, 텅텅 빈 파스타 코너, 아시안에게 바이러스라며 폭력을 가하는 길거리의 인종차별자들. 와중에 화제를 끌기 위해 이곳의 상황을 과장하고 한국을 치켜세우며 일명 '국뽕영상'을 업로드하는 유투버들도 있다. 


어디나 이상한 사람은 있고, 특히나 불안정한 상황에서야 별의 별 일이 다 생길 수도 있지만 일상이 전쟁이라 여기를 피해 얼른 한국으로 가야하는 상황은 아니다. 변한 일상에 모두 고군분투 하고 있지만 자가격리 중인 이웃을 위해 대신 장을 봐서 문 앞에 놔주고, 교회에서는 과일이나 야채를 봉지에 담아서 누구든 가져갈 수 있도록 입구에 걸어놓기도 한다. 혹시나 코로나 시대의 이곳 풍경이 궁금할 분들을 위해 이 시국이 내게 허락한 유일한 외출, 슈퍼가는 길의 풍경을 몇 장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금요일 오후임에도 사람보다 비둘기가 더 많은 시내(얘들아 세 마리 이상 모여있음 안 돼..)

참고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법으로 외출이 제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밖에 나온 합당한 이유가 적힌 외출증을 지참해야만 외출이 가능하고 거주지역에서 일정 범위 이상을 벗어나면 벌금을 내야하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확진자를 줄이려면 이정도의 고강도 제한이 필요할 정도로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아직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 비율이 반은 넘는다(복잡한 이야기라 나중에 지면 하나를 통째로 내어 써야겠다).


텅 빈 휴지매대. 그 많던 휴지는 어디로 갔을까..

이 날은 일부러 조금 더 걸어 시내에 있는 큰 슈퍼마켓에 가보았다. 제일 먼저 휴지 코너로 가보았는데 키친 타올까지 포함해 텅텅 비어있었다. 휴지를 대체 왜 사재기 하는 걸까? 정말 모르겠다. 한국 일부 언론에서는 여기 사람들이 휴지를 마스크 대용으로 써서 없어진 거라고 설명하기도 하던데 휴지를 마스크 필터로 쓰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다. 독일인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추측하기엔, 무언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최초에 휴지를 사재기한 세력(?)이 있고 휴지대신 손과 물로 뒷처리를 해야할까 무서운 사람들이 휴지가 보이는 족족 사가는 바람에 마트에 계속 휴지가 비는 악순환이 되는 것 같다. 


참고로 휴지를 살 방법은 많다. 동네 작은 마켓에서 팔기도 하고, 슈퍼에 올 때 점원에게 휴지가 입고되는 요일을 물어봤다가 그 날 아침 일찍 오면 된다. 우리집에는 둘 중에 한 명이 배탈나지 않는 한(?) 앞으로 한 달은 문제없는 양이 있어서 다행. 

파스타는 코로나가 터진 뒤로, 꾸준히 비어있다. 그래도 지금은 물량이 잘 돌고 사람들도 패닉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라 파스타를 못 살 일은 없다. 이 날 갔던 곳은 다른 마트에 비해 꽤 많이 비어있는 편이었다. 

다들 집에만 있으며 외식을 못 하니 요리사가 되려는지 여러가지 품목이 계속 매진인데, 파스타의 단짝인 토마토 캔과 빵 만드는 데 필수인 밀가루와 이스트를 구하기가 꽤 힘들다. 특히 이스트는 한 달 째 구하지 못 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 이 날 갔던 마트에서 생이스트를 사올 수 있었다. 

(독일에 사는 분들을 위한 팁: 동네 빵집에서 생이스트를 슈퍼 가격보다 비싸게 - 원래는 하나에 15~30센트 정도 - 팔고 있다)


슈퍼 계산대에는 앞 사람과 1.5미터 이상 떨어져 줄을 서라고 바닥에 안내판이 붙어있다. 계산대 사이엔 손님 간 간격 유지, 위생 확보를 위한 비닐까지. 최근엔 마트에 들어갈 수 있는 최대 인원까지 통제하면서 슈퍼 안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에서 줄을 서야 한다. 저번 주 부활절 연휴엔 사람들이 입구 밖에서 슈퍼 입장을 기다리기 위해 1.5미터 간격으로 서느라, 줄이 찻길까지 나와있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주말에 근교로 여행도 갈 수 없고 외식이나 쇼핑조차 할 수 없이 행동의 제약을 받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풍경, 누군가 기침만 해도 흠칫 놀라며 옆으로 피하는 이 모든 일상들이 피로하다. 여기는 한국과 달리 '쓱배송'이 없기 때문에 슈퍼에 직접 가야만 음식을 구할 수 있다(한국엔 없는 음식 사재기가 여기엔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매번 비장한 마음으로 시장가방인지 이민가방인지 구분도 안 가는 큰 쇼핑백을 들고 집을 나서는 것도 한 달 째가 되니 지친다. 


어제는 여름 휴가를 포기하라는 청천벽력같은 기사를 읽었다. 독일의 직장인들에게 여름휴가는 크리스마스 휴가와 더불어 그 해의 가장 길고 아름다운 휴식이다. 우리는 작년 겨울부터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해두고 있었는데, 이제 마음 한 켠에 붙든 희망을 놓아줄 때. 언제쯤 길에서 기침하는 사람을 마주치는 게 겁나지 않게 될까? 언제쯤 걱정 없이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을 다시 탈 수 있을까? 다음 여행은 언제가 될까?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사는 게 쉽지는 않지만, 오늘은 오늘 치의 삶이 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즐겁게 지내보기로 한다.


ps, 여러분 동네의 마스크는 얼마인가요?

어제 슈퍼에서 필터 없는 마스크 3개를 5유로, 한국 돈으로 하면 6천원 정도에 파는 것을 보았다. 비싼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슈퍼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여러분들이 있는 곳의 마스크는 얼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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