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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Jan 15. 2021

조금 특별한 뉴질랜드인의 소비문화


뉴질랜드에 가면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맨발로 아스팔트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다니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아무렇지 않게 맨발로 걸어 다니는 걸 보면서, 그들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맨발로 걷다가 뾰족한 유리라도 밟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지만, 자연을 아끼는 그들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아서 발바닥이 다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여름에 맨발로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추운 겨울에는 얇은 패딩에 조리 슬리퍼만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뉴질랜드 북섬의 겨울은 아무리 추워도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기에 굳이 털 달린 신발을 신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듯 무심하게 걸친 패딩과 시크하게 신은 슬리퍼의 조합은 나에게 적지 않은 문화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들의 간략하고 소박한 옷차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뉴질랜드에 방문하면 자칫 실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한국처럼 다양한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쇼핑문화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쇼핑몰들이 있고, 저가의 브랜드부터 고가의 브랜드를 파는 곳들이 더러 있다. 다만, 최신 유행하는 아이템이나 고급스러운 명품을 찾기 위해 백화점에 간다면, 우리나라 백화점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뉴질랜드인들은 명품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다. 대체로 유행을 타지 않고 실용적인 브랜드를 많이 선호한다. 몇 년 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스파 브랜드인 탑샵(Topshop)이 시티 한복판에 론칭했지만, 첫 번째 매장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문을 닫은 경우도 있었다. 뉴질랜드인들의 소비문화는 보수적이고 검소하며, 새로운 브랜드가 시장에서 인지도를 얻기 힘든 경우가 꽤 많다.



뉴질랜드에서 그들의 소비문화를 눈여겨보던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바로 중고물품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가끔 주택들이 모여있는 동네에서 ‘차고 세일(Garage Sale)'이라고 적힌 전단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말이 되면 차고지는 마켓으로 변신한다. 집주인은 그동안 안 쓰던 물건들을 한 데 모아 차고지에 쌓아 놓고, 전단지를 보고 찾아온 이웃들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파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동네에 크고 작은 중고가게도 있다. 집에서 잘 쓰지 않는 물건을 기부하면, 점원들은 쓸 만한 물건인지 아닌지 보고 깨끗하게 씻고 닦은 후 진열대에 올려놓는다. 가정에서 쓰는 웬만한 생활용품은 다 있다. 가구, 옷, 신발, 책, 숟가락, 포크, 나이프, 액자, 앨범 등 없는 게 없다. 가게 안에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건들을 구경하는 손님들과, 계산대에는 곱게 화장을 한 친절한 할머니들이 일을 하고 계신다. 비록 여러 사람의 손때가 스쳐간 물건일지라도, 앤티크나 빈티지 물건들은 비싼 값에 거래가 되기도 한다. 어떤 물건은 시간과 비례해 그만큼 가치가 더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중고가게도 있지만, 지역에서 운영하는 중고가게도 있다. 호스피스샵(Hospice shop) 같은 중고가게는 물품 판매액을 취약계층의 의료 서비스 기금으로 쓰이기도 한다. 중고가게라고 해서 허름하거나 오래된 곳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외관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중고물품을 파는 곳인지 분간이 안 갈 때도 있다.



어느 날 큰 접시가 필요해 쇼핑몰에 가서 원하는 디자인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가격표를 보고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중고가게에서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접시를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계산대로 가져갔다. 그 후로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먼저 중고가게에 들려 비슷한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단돈 10불(원화로 8천 원)에 산 접시. 월남쌈 먹을 때 유용하게 쓰고 있다.


한국으로 이사 오기 전 이삿짐을 정리하며,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은 물건을 이민 가방에 담아 중고가게에 들고 갔다. 며칠 후에 내가 기부한 커피잔이 반짝반짝 이쁘게 닦여 진열대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쓰던 물건을 다시 만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나 보다. 하지만 커피잔이 새 주인을 만나 소중하게 쓰인다면 그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소소한 물건이라도 바로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물건의 수명이 다 할 때까지 활용하는 그들의 소비문화 속에서 물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조건 비싸고 최신 유행템 이어야만이 설렘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공장에서 막 찍어낸 듯한 똑같은 모양이 아닌,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있는 각양각색의 물건들 속에서 숨은 진주를 찾는 일은 분명 설레는 일이었다. 내가 찾고 있던 물건이 보이면,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중고물품을 잘 활용하면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다고 하니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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