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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우킴 May 07. 2021

향긋하고 고소한 미나리전 만들기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간지럽힌다. 코로나가 무색하게 곳곳에 꽃이 만발했지만 올봄에도 어김없이 불청객이 찾아왔다.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춘곤증에 극심히 시달리다 겨우 살아났다. 진한 커피를 종일 들이켜보아도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은 끝내 가벼워지지 않았다.


부지런히 장을 봐서 제철 재료로 식구들 면역력을 챙겨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춘곤증 때문인지 계속 뜸만 들이다 식사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곤 했다. 냉장고에 남은 반찬으로 대충 저녁을 차리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오늘 점심에 청계산 부근 어느 식당에 갔는데 미나리전이 기가 막히게 맛있더라! 애들 데리고 한번 가보자."


귀가 솔깃해졌다. 맛집 탐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요즘 그렇잖아도 최소 한 끼라도 남이 해준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회사 생활을 하니 가끔 동료들과 밖에서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기도 했다. 나는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남편에게 바로 답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이번 주말에 가볼까?"


우리는 돌아오는 주말 아침 일찍 서둘러 맛집을 찾아 출동했다. 차를 타고 30분 즈음 지나니 청계산 근처에 다다랐다. 좁은 도로로 들어서자마자 계곡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간판도 없는 자그마한 식당이 보였다.


"여기가 당신이 말한 그 맛집이야?"

"응, 맞아."


조금 허름하긴 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곳에서 터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당 안에는 천으로 된 메뉴판이 벽에 걸려있었고 나무로 만든 크고 작은 테이블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나이가 지긋이 든 할머니와 젊은 여자분 둘이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우리 가족이 첫 손님이었다. 다른 손님이 오기 전 우리 마음대로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어디에 앉을까 잠시 고민하다 주방이 잘 보이는 쪽으로 앉았다.


"미나리전이랑 도토리묵 그리고 수제비 주세요."


고민할 시간도 없이 남편의 주문이 끝나버렸다. 그러자 주방에 서 계신 할머니의 두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가스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부으셨다.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보았을법한 정겨운 모습이라 눈을 뗄 수 없었다. 시골에 여행 온 것만 같았다.  


음식 냄새가 나자 아침을 안 먹고 나온 아이들이 빨리 음식이 먹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 제일 먼저 미나리전이 나왔다.


'음... 이게 전이라고?'


보통 전이라 하면 재료에 반죽이 섞여 모양이 가지런하지만  나온 미나리전은 너무나 투박해보였다. 젓가락으로   떼어 입속으로 넣어보았다. 듬성듬성 자른 미나리 사이사이에 살짝 튀겨진 듯한 가루의 정체가 궁금했다. 미나리 본연의 향과 맛은 그대로,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주문한 다른 음식이 하나씩 나왔지만 미나리전에 정신이 팔려 어떻게 이런 맛이   있는 건지 할머니의 요리비결이 궁금할 뿐이었다. 주방에서 일을 끝내고 나와계신 할머니께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을 드렸다.


"어떻게 하면 전이 이렇게 바삭할 수가 있죠? 밀가루를 넣으신 건가요..?"


"나는 밀가루 안 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신 할머니 표정 뒤에는 거대한 비밀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뇌리에 착 붙어 떠나지 않았던 미나리전. 왠지 집 앞에 식당이 있었더라면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을 법한 곳이었다.


며칠 뒤 나는 주방에 서서 식당에서 먹은 미나리전을 떠올렸다. 밀가루와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드는 대신, 물에 씻은 미나리에 쌀가루와 부침가루로 옷을 입혀보기로 했다.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기다려보았다. 뒤집개로 꾹꾹 눌러가면서. 딱히 반죽이라 할 게 없어서 제멋대로 흩어질까 염려했지만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 전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만약 할머니께서 레시피를 모두 공개하셨다면 이렇게 주방에 서서 새로운 맛을 찾아 헤맬 수 있었을까. 식당에서 만난 미나리전과 비슷한 모양이 되어가는 걸 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환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쌓아온 춘곤증은 온데간데없이 날아가고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미나리전 레시피

① 미나리 한 단을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조금 털어낸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부침가루와 쌀가루 1:1 비율로 옷을 입혀준다.

②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중불로 낮추어 미나리전을 부친다. 반죽이 거의 없는 상태이므로 모양을 동그랗게 잘 잡아준다.

③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익으면 완성이다. 접시에 담아 맛있게 먹는다.

향긋하고 고소한 미나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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