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피해자들에게
우리사회는 이제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을 인식하고 사회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어요. 주로 학교나 군대, 성 문제에서 문제가 크게 대두된 괴롭힘 문제는 이제 보다 일상적인 직장에서의 괴롭힘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실상 우리는 아직 나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못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모르는 사이 뉴스나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극단적인 사건의 이미지들만이 우리에게 각인되어서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진짜 괴롭힘은 애매할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괴롭힘은 대부분 법과 도덕, 상식과 합리성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아요. 이것은 가해자 입장에서 보자면, 가해자 스스로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이 하는 일이 괴롭힘임을 알고 있어서 선을 명확히 넘는 행위를 피하려고해서인 것 같아요. 때문에 대부분의 괴롭힘은 애매한 형태로 교묘하게 이루어지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에게 "그가 잘못한 게 맞지만 너도 좀 예민한 것 같다."는 '진심어린' 조언을 해서 피해자에게 또다른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내가 정말 예민하고 잘못한 걸까."라는 자책을 하며 무너져 내리게 되고요. 이 글은 그렇게 무너지기 직전에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서 쓰여졌어요.
애매한 괴롭힘의 방식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괴롭힘은 괴롭힘인지 아닌지 따지기에 애매한 형태로 나타나요. 친구가 "농담이잖아, 왜 그렇게 예민해?"라며 당신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조롱할 때, 혹은 가족이 "다 너를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당신의 선택권을 무시할 때 같은 상황들이요. 군대에서는 선후임 간의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들이 자행됩니다. 직장에서는 업무의 일부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가 정당화되고, 연인 사이에서는 "사랑하니까"라는 말로 통제와 제약이 가해집니다.
특히 성적인 영역에서 이러한 회색지대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변명으로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이 일어나거나, 칭찬이라는 말로 외모에 대한 부적절한 언급이 정당화됩니다. 농담이라는 핑계로 성적인 의미가 담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거나, "다들 하는 얘기"라며 상대방의 불편함을 무시하는 경우도 흔해요. 직장에서는 회식 문화나 팀워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성적 불쾌감을 주는 상황에 노출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괴롭힘에 대한 미시적 폭력이론
미시적 폭력(Microaggressions) 이론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미묘하고 간접적인 차별과 괴롭힘을 설명합니다. 심리학자 데럴드 윙 수(Derald Wing Sue)에 따르면, 미시적 폭력은 "일상적이고 간단한 언어적, 행동적, 환경적 모욕으로, 의도적이든 아니든 적대적, 경멸적, 부정적인 인종적, 성적, 성 정체성 또는 종교적 경멸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괴롭힘이 항상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미묘하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수치심이나 분노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무력감, 혼란, 자기 의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잘못한 것인가?"라는 깊은 죄책감으로 이어집니다. 가해자들은 이런 죄책감을 교묘하게 이용할 떄가 많아요.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네가 그렇게 행동하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아하는데 너만 문제 삼아"와 같은 말로 피해자의 인식을 왜곡시킵니다. 이것은 '가스라이팅'의 흔한 형태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경험한 괴롭힘은 절대로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설령 당신이 다소 예민했던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해자의 괴롭힘 행위보다 더 크지는 않습니다. 만일 당신이 무언가 조금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당신을 괴롭혔다는 사실이 무마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어떤 실수나 약점도 괴롭힘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탓하는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책감이 들 때마다, 그것을 오히려 상대방의 행동이 부적절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세요. "내가 잘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아니, 이것은 나의 경계가 침범당했다는 신호다"라고 자신에게 말해주세요.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면 꼭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세요. 혹시 그 사람들이 당신의 일부 잘못이나 예민성을 꼽으며 조언을 하려고 하더라도 기죽을 필요는 없어요. 무시가 어렵다면 일단 그건 그것대로 따로 미뤄두세요.
괴롭힘의 판단 기준은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그 행동이 당신에게 미친 영향입니다. 아무리 "장난이었다", "다 너를 위해서였다" 또는 "그렇게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말로 포장해도, 결과적으로 당신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었다면 그것은 명백한 괴롭힘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주변의 다양한 피해자 지원 제도를 통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꼭 무언가 구체적인 조치를 바라지 않더라도 우선 그들의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 도움이 될테니까요.
애매해서 더 잔인한 괴롭힘
일상에서의 애매한 괴롭힘이 특히 잔인하고 또 위험한 이유는 대부분의 괴롭힘이 그런 형태로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그 모호함으로 인해 주변의 지지를 얻기 어렵고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당신이 고통스러운 것은 당신이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괴롭힘은 절대로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