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사용설명서
심리상담에서는 나의 대인관계적 태도와 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성격이란 내가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방식이자 동시에 내가 나와 관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러한 방식은 내가 내면적으로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면적 구조란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타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의미합니다.
대인관계적 태도를 살펴본다는 것은 내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또 왜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올라요.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느껴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요.
생각보다 우리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혹은 진짜 나의 모습을 나 자신에게서 숨기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을 ‘나’와 ‘나의 욕구’라고 믿으며 살아갈 때가 많아요. 진짜 나 자신이 나에게 위협적일수록 그 믿음은 더 견고해질 수밖에 없구요. 하지만 어렴풋이라도 나는 알죠.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요. 흔들린다는 감각이 나도 모르는 사이 느껴질수록, 지금 붙잡고 있는 내 모습과 방식은 더욱 침범당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그것마저 무너지면 내가 존재할 수 없고,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가치 없는 사람도, 가치 없는 소망도 없어요. 그러니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해야 하죠. 그래야 지금 겪고 있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와 ‘나의 욕구’가 거창하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껍데기를 하나씩 벗겨내고 나면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이에요. 어쩌면 그것이 너무 사소했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고 존중받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는 더 그럴듯해 보이는 무언가로 나 자신을 포장해야 했던 것일지요.
이야기가 조금 돌아왔네요. 심리상담에서는 나의 대인관계적 태도와 방식을 알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실제 상담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대체로는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가 상담과 상담자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상담 장면에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숨 쉬듯 자연스럽고 너무나 익숙한 방식으로 상담자를 대하게 되죠. 누군가와 상호작용 해야할때는 그것이 무엇이든, 어떠한 방식을 취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그 방식은 워낙 몸과 마음에 밴 것이어서 스스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지만요.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과 상담 세션을 대하는 방식을 세심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내담자에게 알려주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태도가 내담자의 실제 삶에서, 또 지금 겪고 있는 고통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해요.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내가 왜 이 고통을 겪어야만 했는지, 그래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저는 상담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드리는 편이에요. “상담에서 무엇을 원하시나요? 그것을 위해 상담이, 혹은 상담자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시나요?” 이 질문을 드리면 당황하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상담이란 TV나 대중매체 속에서 검사를 통해 해답을 제시하거나, 평범한 사람은 알 수 없는 깊은 진실을 알고 있는 지도자가 자상하면서도 다소 권위적인 조언을 해주는 방식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우리는 여전히 전문가나 권위자 앞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구요.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선생님의 지도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배우죠. 나이가 어리거나 후배라면 지시와 지휘를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나이에 따른 위계는 어쩌면 요즘 젊은 세대에게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 같기도 해요.
상담자에게도 이러한 태도를 가져온다면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내담자분들은 도움을 받고자 상담실을 찾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와 상황을 비교적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편이에요. 그러나 나에 대한 정보나 사건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과, 상담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모습이 솔직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죠. 이런 경우 상담은 내가 왜 상담자 앞에서 솔직해질 수 없었는지를 살펴보는 데서부터 시작될 수 있겠죠.
솔루션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 자신을 내가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사실 진짜 나를 알게 된다면 어떤 방법을 쓰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나는 이미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이건 마치 운명의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과도 비슷하달까요. 제가 상담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상담을 찾는 분들이 해결책을 얻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내 삶에 대한 솔루션은 나를 잘 모르는 현자가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