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치와와들
요즘 넷플릭스에 새로 공개된 연애 프로그램 <불량연애>가 소소하게 화제이죠. 양아치들의 연애라는 소재가 상당히 자극적이에요. 실제 출연진들도 상당히 과감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사람들이라는 느낌입니다.
저는 이걸 마냥 즐기진 못했어요. 심리상담사라는 직업 특성상 워낙 많이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어서 방송을 방송 그 자체로만 보기가 좀 힘들었기 때문이에요. 일반 시청자가 보기에 저 사람들은 왜저래 싶은 구석들이 많을 것 같았는데요. 심리상담사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시선을 공유하면 좀 더 재밌는 시청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본 키워드는 불안과 분노, 그리고 충동성입니다. 정신건강 영역에서 사랑에 대한 욕구는 건강성의 마지막 보루 같은 거에요.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있는가는 그 사람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출연자들이 사랑을 찾아 이런데 나왔다는 건 겉으로 강한 척하지만 결국 외롭고 사랑받기 원하는 사람들이란 의미인 거 같아요.
눈 마주치자마자 싸우는 건 거칠고 폭력적이긴 하지만 눈 마주침에서 위축감을 느낀다는 의미이기도 할 거에요. 위축감을 느낀다는 건 남들보다 훨씬 겁이 많다는 이야기이도 하고, 그만큼 다른 사람을 위협적인 대상이라고 느낀다는 거고요. 왠만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장소에선 눈이 마주치면 원만한 관계를 위해 친근감 표현을 먼저 하는 게 보통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친근감보다는 위협으로 느껴 그런 사회적 행동을 할만한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거라고 볼 수 있겠죠.
여성 출연자 중 하나가 학창시절 모든 사람이 적으로 보여서 목검을 들고 다녔다는 것도 같은 맥락일 거에요. 그만큼 안정적인 대인관계 경험이 부족하고 사람을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다는 말 같아요.주인에게 매맞고 자란 강아지가 사람을 경계하고 두려워 하는 것처럼요. 꼭 늘 화가 나 있지만 실제로는 늘 겁먹은 치와와를 보는 것 같기도 하죠. 그렇게 겁나면서도 어떻게든 세보이려고 하는 건 그런 위축감을 들키면 약자로 몰려 큰 고초를 치러왔던 그들 세계의 룰에서 학습된 양식인 거 같고요.
불안이 분노로 포장되고 또 행동으로 튀어나온다는 건 불안감이라는 정서를 잘 조절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건 정서조절과 함께 충동조절이 어렵다는 것도 보여주는 거고요. 숟가락 가지러 가다가 게임에 빠지는 게 충동조절이 어렵다는 걸 좀 더 분명히 보여줘요. 어떤 출연자는 마음에 안드는 선배를 계단에서 밀어버렸다고도 했어요.
이런 모습들은 그들이 정서를 느끼고 조절하는 방법을 성장과정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요. 그리고 이런 마음들이 표현될 때 이해받는 경험이 제한적이었단 의미이기도 하고요. 사람은 감정이 표현될 때 그게 받아들여져야 안심할 수 있고, 안심할 수 있어야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리고 이런 걸 잘 조절하려면 분명한 자기감, 그러니까 내가 나라는 감각을 가져야 해요. 그래야 정서에 휘둘리더라도 자신으로 돌아와 그걸 조절할 수 있거든요. 잔뜩 있는 문신들은 일종의 자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자해는 흔히 자아가 극도로 불안정해 자신이 사라지는 것 같은 공포가 찾아올 때 신체 감각을 지표로 자기감을 되찾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돌아오더라도 근본적인 자기감이 불안정하니 또다시 흔들리게 되는 거구요. 이런 자기감 역시 결국은 나의 감정과 욕구를 잘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형성될 수 있어요. 감정과 욕구는 좀 더 생리적인 것에 가깝기 때문에 이것들이 부정당하면 나 자신이 부정되는 것과 같으니까요.
이런 프로그램은 캐릭터의 개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국 연프는 출연자들이 멀쩡하거나 때로는 남들보다 뛰어난 겉모습 뒤에서 교묘하게 성격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걸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요. 그런데 불량연애는 처음부터 출연자들이 너무 솔직하네요. 그만큼 사랑에 절실하고 자신의 미숙한 모습을 감출 사회적 기술 습득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실제 심리치료 상황에서도 병리가 확실한 사람일수록 평가도 빠르고 개입도 빨라질 수 있어요. 평범한 사람에 더 가깝고 병리적 수준이 얕을수록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감추는데 능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개입 방향을 잡는게 까다롭고 오래 걸릴 때가 있습니다. 사회적 기능이 좋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핵심적인 취약성을 가리는데 능숙해요.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그걸 드러내고 파악하는 게 필요할 때, 내담자가 그걸 알고 싶어 함에도 불구하고 오래 걸리고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치료의 관건을 내담자의 퇴행 능력에 있다고 보기도 해요.
요약하자면 불량 연애에 나오는 사람들은 분노와 불안이라는,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통제되어야할 감정들을 처리하기가 어려운 거에요. 이 감정들은 죄책감과 우울보다도 더 원초적인 감정이에요. 그러니까 분노와 불안은 우리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이고 죄책감과 우울은 대인관계가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인 감정들인거죠. 이건 그만큼 출연자들이 원초적 감정 통제를 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걸 뜻하는 걸로 보여요. 이런 부분은 양육 과정에서 보호자에게 자연스럽게 이식되듯 학습된다는 점에서 애착과 가장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어요. 출연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또 짝을 찾고 싶어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