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사용설명서
심리상담을 반드시 받아야만 나아질 수 있을까요? 상담자인 저 역시 끊임없이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심리상담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할 수 있어야 제 역할도 분명해지기도 하고, 직업인으로선 아무래도 떳떳하게 먹고 살 수 있기도 하구요. 그건 제 사정이지만 상담 없이 좋아질 방법이 있다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겠죠.
이런 생각은 상담 오기 망설여지는 분들에겐 더 절실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찾아보고,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스스로 해결하려는 분들이 많죠. 실제로 인터넷에는 자기 치유 방법이 넘쳐납니다. 인지치료, 마음챙김, 명상 등등이요. 모두 도움이 되는 방법들입니다. 챗 GPT와 대화하는 것도 방법이겠구요. 또 1-2회 상담 후 "이제부터는 혼자 해보겠다"며 중단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럴 땐 기왕 시작한 상담인데 조금만 더 해보시지 싶지만, 그런 제 생각과는 별개로 진심으로 좋아지시기를 바라며 드릴 수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전해드리는 편이에요. 그러나 저는 이런 기술적인 것보다 훨씬 좋은, 심지어 심리상담보다 도 좋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연애입니다.
생각보다는 평범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죠? 저도 제가 이렇게 말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구요. 다만 연애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깊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건 낭만적인 사랑 예찬이 아니에요. 여기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정교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구요. 심지어 심리상담은 결국 그런 좋은 사랑을 흉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우선 간단한 장면 하나. 비 오는 날, 갑자기 번개를 본 아이가 무서워 울기 시작합니다. 그때 엄마가 아이를 꼭 안아주며 "괜찮아, 내가 여기 있어"라고 말합니다. 아이의 심장은 빠르게 뛰다가 점차 안정됩니다. 눈물이 멈춥니다. 이 단순한 장면 속에는 복잡한 심리적 변화가 숨어 있어요.
우선 엄마 품 안에서 아이의 몸이 먼저 조절됩니다. 그 다음 마음은 이렇게 배워요. '생각보다 세상은 안전하구나.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보호해 주는구나. 나는 그렇게 사랑받는 존재이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무서울 때 누군가에게 기대면 괜찮아지는구나.' 그렇게 안전에 대한 감각과 좋은 대상, 그리고 사랑받을 수 있는 나에 대한 감각이 내면에 자리 잡는 거죠. 그리고 나중에 혼자 있을 때조차 그 품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진정시킬 수 있어요. 부모가 실제로 없더라도, 내 안에 존재하는 그 감각이 나를 안정시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충분히 갖지 못하고 자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불안정한 사랑, 조건부 인정, 차가운 무관심 속에서 말이죠. 이들에게 세상은 위협이고, 자신은 결함 그 자체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괜찮지 않은 사람이다"라는 감각은 깊이 뿌리내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마음을 흔들어요. 그래서 이들은 가까워지면 더 불안해지고, 사랑을 받으면 더 의심하게 됩니다. 좋은 관계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정체성을 지탱할 내적 기반이 약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랑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나를 예쁘게 봐주고, 이해하고 기다려주며, 서둘러 재단하지 않고, 도망치려 할 때 다그치지 않는 사랑이요. 이 사랑은 말없는 신호를 계속 보내줘요. "네가 화내도, 울어도, 흔들려도, 그리고 모자라도, 나는 여기 있다." 그때 그 사람은 점점 상처받은 부분까지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다'라는 문장이 그때 비로소 실체를 갖게 되는 거구요.
정신분석 이론들은 이 원리를 설명하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제일 처음으로, 애착 이론은 그 안정이 신체 수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갓난아이는 스스로를 진정시킬 능력이 거의 없죠.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몸이 긴장될 때 스스로 조절할 방법이 없어요. 이때 부모의 품에 안기면 아이의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아이의 심장박동과 호흡은 부모의 리듬에 동조됩니다. 즉, 엄마의 몸이 아이의 몸을 안정시키는 거에요. 이 경험이 반복될수록, 아이의 뇌와 신경계는 “누군가에게 기대면 진정될 수 있다”는 생리적 규칙을 학습해요. 그리고 그 규칙은 시간이 지나면서 심리적 규칙으로 전환됩니다. '나는 보호받을 수 있는 존재다. 나는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이다.' 애착은 이렇게 몸을 통해 시작해 마음의 기반을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조용히 안심되는 경험, 아무 말 없이 손만 잡아도 눈물이 멈추는 경험은 결코 우연이 아닌 거에요. 우리의 몸은 이미 알고 있어요.
다음으로, 대상관계 이론은 애착을 통해 형성된 안정의 경험이 마음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타인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심리적 표상으로 저장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사람은 사랑받는 경험을 반복할수록 “사랑받을 수 있는 나”와 “믿을 수 있는 타인”에 대한 내적 표상을 마음 속에 구축하게 됩니다. 이때 자기 안의 좋은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함께 품을 수 있는 통합 능력이 생겨니요. 반대로 조건적 사랑이나 일관성 없는 관계 속에서 자라면 자신 안의 부정적 면을 따로 떼어내 부정하게 되고, 통합되지 못한 자기 조각들이 심리적 증상으로 나타게 되구요. 결국 대상관계 이론은 치유란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전체를 다시 하나로 묶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좋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상호주관성 이론은 관계 속에서 '나'가 만들어지는 이 과정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마음과 부딪히고 비춰지며 계속해서 자기를 재구성하는 과정적 존재에요. 상대가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때로는 맞서주는 경험을 할 때, 마음 안에서 분열되어 있던 자기의 조각들이 다시 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즉, “나는 괜찮다”는 자신에 대한 감각은 나 혼자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안정된 시선 속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될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는 거에요. 그래서 좋은 사랑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단순한 위로나 즐거움이 아니라, 그 사람 앞에서 드러낸 그대로의 나를 견딜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이 쌓이며 분열된 자기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죠. 상호주관성 이론에 따르면, 바로 이 관계 속 재구성이야말로 치유이자 성장입니다.
결국 좋은 사랑은 이 모든 이론이 설명하는 가장 깊은 치유 기제를 삶의 현장에서 제공하는 것입니다. 심리상담이 그 사랑을 흉내내는 안전한 실험실이라면, 좋은 사랑은 그 실험을 현실에서 성공시키는 궁극적인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상담이 필수적인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닌 샘이죠.
그러니 상담을 받기보다 좋은 사랑을 만나세요. 전 그것이 상담보다 훨씬 좋은 치료방법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어요. 그런 좋은 사랑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잘 모르겠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때 상담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에요. 언젠가 좋은 사랑을 찾거나 혹은 좋은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상담자의 역할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