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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Jul 02. 2016

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다

<마와리 견문록>을 시작하며

내 방에는 큰 칠판이 하나 걸려 있다. 자꾸 보면서 상기시키고 싶은 것들을 붙여 놓는 용도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 여행 갈 때마다 모은 자석들, 전시회 티켓 등이 걸려 있다. 칠판 한편엔 누렇게 바랜 신문 종이가 하나 붙어있다. 장문의 칼럼이다. 중앙일보의 김영희 대기자가 2011년 4월 7일, 신문의 날을 맞아 특별 기고한 칼럼이다. 제목은 "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다".


이 칼럼은 내가 기자가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께서 기자가 되겠다는 나에게 스크랩해 주셨다. 그 덕에 기자가 되겠단 내 꿈은 한층 정교해졌다. 이후로 나는 이 칼럼을 수없이 반복해 읽었다. 칼럼은 고스란히 내 머릿속에 각인됐다.


칼럼 읽기 : "기자는 읽는 대로의 존재다"


Journalist is what he/she reads. 참 멋진 문장이라 생각했다. '어떤 기자가 되겠나?'라는 질문에 답의 날이 바짝 섰다. 나는 많이 읽고 생각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저널리즘, 나에게는 아직까지도 안개에 휩싸여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것을 평생에 걸쳐 고민해보고 싶었다. 한 신문사의 최종 면접장에서 "기자의 최우선 덕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라 답했다. 그리고 합격 소식을 들었다. 2015년 9월, 나는 기자가 되었다.


뻥 아님... 설정 아님...


6개월 후 많은 것이 변했다.


많은 수습기자들이 수습 생활의 악랄함과 지독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드라마 '피노키오' 덕분에 많은 일반인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더라. 기자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여기에 대한 각오는 서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각오는 다부졌다. 다만 수습기자가 거쳐야 할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식이 상당했다. 이것을 견뎌내는 것은 물론 내 손으로 바꾸리라 다짐했다.


수습기자로서의 마지막 주,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여러 이유와 계기가 있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김영희 대기자가 말한 '읽는 대로의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김영희 대기자는 칼럼에서 후배들에게 두 가지를 조언했다. 술 잘 사는 선배를 피하고 책을 많이 읽을 것. 내가 경험한 수습기자는 술을 피할 깜냥도 책을 읽을 시간도 없는 존재였다. 정식 기자가 되면 둘 다 가능하다 말하는 자도 있었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기자로서의 토대를 닦는 수습 교육을 겪으며 도대체 뭘 배워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올바른 저널리즘과 잘 쓴 기사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보다 단독 기사를 위한 공격성과 무례함을 가르쳤다. 기레기는 이 와중에 탄생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풍토를 당연시 여기는 조직에서 '읽는 대로의 존재'가 될 자신이 없었다.


기자만큼 외양과 실상이 다른 직업이 또 있을까 싶다. 기자 지망생은 길게는 수년을 허비하며 언론사 입사를 준비한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그런데 정작 기자가 되고 나선 그만큼 만족하지 못한다. 기자 지망생들을 향해 "제발 다른 거 준비해"라며 장래 후배들의 잘못된 선택을 질타한다. 하지만 그게 잘 먹히지 않는다. 다들 꾸역꾸역 기자가 되고 만다. 나 역시 그랬다. 먼저 언론사에 들어간 친구가 "제발 다른 거 준비해"라고 할 때 귓등으로 들었다. 취업에 성공한 현직자의 배부른 소리겠거니 치부했다. 겪어봐야 안다. 말해선 모른다.


조선반도 기자의 고달픔에 대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 실감 나고 조리 있게 설명하고 싶다. 그 설명을 들은 기자 지망생들이 일찌감치 실상을 알고 현명한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참 구린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냥 나의 짧은 수습 생활기를 써서 엮어보려고 한다. 일부 언론사에서 만든 자사의 수습 생활기는 상당 부분 미화됐다. 퇴사자의 입지를 활용하여 치부를 최대한 실상에 가깝게 써보고 싶다.


시작은 거창한데 끝이 미약할까 봐 걱정이다.


<마와리 견문록> 시작!


*마와리[まわり· 回り·廻り] : 일본어로 '차례로 방문함'을 뜻하는 말. 말 그대로 기자들이 출입처를 차례로 방문하며 각 출입처 별로 기사거리를 수집하는 일. 수습기자들이 경찰서를 전전하며 취재 및 보고하는 방식의 교육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매우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업계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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