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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Jul 10. 2016

마와리 견문록 #1

폭력의 시작

때는 입사 3주 차, 신입사원 교육의 일환으로 편집부*의 업무를 경험하던 때다. 당일 신문 제작이 끝나고 나와 동기들(이하 '우리')은 편집부의 선배들과 회식을 했다. 회사 근처 치킨집에서 회식을 하던 중 나는 잠시 회사에 돌아갈 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 일은 이때 벌어졌다. 알고 보니 같은 치킨집에서 경찰팀(사회부 내 경찰서를 출입처**로 하는 조직)도 회식을 하고 있었던 것. 마찬가지로 우리를 발견한 경찰팀 기자 A는 우리와 함께 있던, 그리고 A보다 연차가 낮은 편집부의 기자 B를 불렀다. 아주 엄격, 근엄, 진지한 표정으로.


B야, 수습기자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 별로 보기 안 좋다. 경찰팀 들어오기 전까지 단속 좀 하자?


동기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분위기를 세밀하게 묘사할 순 없지만, 아무튼 동기들은 많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만큼 억압적인 분위기였으리라 추측한다. B는 A보다 후배인 탓에 면전에서 항변할 수 없었지만, 자리로 돌아와 이 얘기를 하며 불만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는 경찰팀 기자들이, 일부 타 부서 기자들 사이에서도 억압과 폭력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방증이자, 경찰팀 기자들의 폭압적인 위계질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습기자 교육은 두 종류로 분류된다. '사원'으로서의 교육, 그리고 '기자'로서의 교육. 인사팀 주도로 이뤄지는 짧은 '사원' 교육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뒤이어 이뤄지는 '기자' 교육, 즉 사회부 경찰팀의 '마와리' 교육이 주력이다. 일부 언론사는 수습 기간 6개월 중, 전자는 며칠 만에 해치우고 나머지를 모두 기자교육에 할애하기도 한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입사 후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중 우리 사이에서 가장 큰 화두는 단연 '마와리'였다. '어떤 선배가 가장 악마라더라', '정말 한 시간도 안 재운다더라', '경찰 조직에 대해서 미리 공부해 가면 좋다더라', '어느 라인*** 기자실이 최악이라더라'라는 식의 정보공유와 추측이 주를 이뤘다. 점점 다가오는 '마와리'에 대한 우려가 우리를 죄어왔고, 우리는 이렇게라도 해소해야 했다.


'마와리'는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혔다. 우리가 경찰팀에 들어오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경찰팀 기자들의 포효가 사내에 스멀스멀 퍼져 우리 귀까지 들렸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거의 입사와 동시에 경찰팀에서 '굴렀던' 것과는 다르게, 우리 때부턴 신입사원 교육이 길어진 탓에 '쟤네들 편하게 놀고먹는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신입사원 교육이 길어진 것은, 언론계 안팎으로 '마와리' 교육이 반인권적이라는 비판이 나왔고 이에 대해 마땅한 대안이 없자 면피성으로 시도한 것으로 추측한다. 딱히 선진적 변화라고 보기도 어려운 판국에, 이조차도 비아냥거리며 구태를 고수하는 그네들이 한심해 보인 건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이후 우리는 의도적으로 표정에서 웃음기를 없애기 시작했다. 질문하기보다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말수도 줄었다. 즐거웠던 출근길은 점점 무거워졌고 퇴근할 때쯤이면 긴장과 스트레스로 진이 빠졌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마와리'에 적합한 수동형 인간으로 깎여나갔고 무언의 폭력에 적응하고 있었다.




*편집부 : 현장 취재부서에서 취재하고 작성한 기사를 종이 위에 배치하고 제목을 다는 등 '편집' 작업을 하는 부서. 취재와 기사 작성이 끝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하기 때문에 출근과 퇴근이 일반 부서에 비해 조금씩 늦은 특징이 있다. 취재 기자들도 편집부의 업무를 이해해야 긴밀한 공조가 이뤄질 수 있다는 취지로 편집부 교육이 이뤄졌다.


**출입처 : 기자가 취재를 담당하는 기관이나 조직. 말 그대로 들락날락(출입)하며 뉴스를 모은다. 기자는 자신의 출입처에서 발생하는 모든 뉴스를 알고 있어야 하고 회사에 보고하며 필요에 따라 기사로 작성한다. 같은 출입처에 출입하는 언론사들의 기자를 모은 것이 출입기자단이고, 해당 출입처의 홍보조직이 출입기자단을 담당한다.


***라인 : 서울에 본부를 둔 언론사들의 경찰 담당 팀은 서울시를 몇 개 구역으로 나눠 기자들에게 담당케 하는데 이를 '라인'이라 한다. (강남, 광진, 혜화, 북부, 종로, 중부, 마포, 영등포, 관악) 라인 등으로 나뉜다. 각 라인에는 3~4개의 경찰서들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강남라인에는 서초경찰서, 강남경찰서, 수서경찰서, 송파경찰서 정도가 포함된다. 'XX라인 기자'라고 함은 해당 라인의 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를 뜻한다. 구체적인 분할은 회사 별로 다르다.


덧) 마와리에 계속 작은따옴표를 다는 이유는 '마와리'가 업계의 은어로 통용되지만 표준어가 아니고 심지어 우리말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배척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싶어서입니다. 그렇다고 순화어를 사용하기에는 구태의 느낌을 담기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어 굳이 인용 부호를 넣어 표기합니다. 계속된 작은따옴표가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겠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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