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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RED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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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 Kang Feb 18. 2024

COVID-19, 그리고 2020의 봄날들

2020년 봄날 작성한 글


2월 7일. 다니던 수영장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수영장 운영을 중단한다는 단체 메시지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한 2주 정도 쉬겠구나 했었다. 수영장에서 2월 중순경에 3월 접수를 받는다는 단체 메시지를 받을때까지만 해도, 뉴노멀을 맞이할 준비를 전혀 안하고 있었다.


그리고, 뉴노멀이 왔다. 팬데믹의 범람과 함께.


지난 날 잔뜩 채웠던 것들을 비워내며, 왜 여기까지 왔을까?

불현듯 비교하며 찾아오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기까지.

그리고 너무 오랜 시간 비우고 있다는 채찍까지.


마음챙김으로 대상을 지우는 "수행으로 가는 연습"이 있었기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는 감사함과 여전히 대상으로 인해 마음의 성질이 결정된다는 "왜 난 아직도"라는 자책이 공존한다.


수영장은 아직도 다시 열지 못하고 있다.

테니스장은 한명 입장해 강습이 끝나 퇴장하면 다음 수강생이 들어온다. 

헬스장은 4월 한달간 폐쇄 되었다.


수영을 못함은 저녁 걷기명상 혹은 러닝으로 대체 되었다.

4월달, 헬스장이 폐쇄 되었을때, 난 아침 6시면 일어나는데, 그리고 뉴노멀을 잠을 더잠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은데 무얼 해야 하나 고민했고, 헬스장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은 잠시 접고 그저 아침을 걷자, 그리고 봄의 내음을 맛보자고 산도 타고, 동네 천길도 걸었다.


좋았다. 아침에 맞이하는 봄이.

그 싱그러움과 녹음이, 과하지 않게 등을 적시는 땀방울이. 새들이 지저귐과 가끔 만나는 청설모도 조금씩 날 채워 주었다. 그저 고마웠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게.


아침운동 중 산에서 만난 청설모

구청에서 걸어 놓은 올해 벚꽃축제는 내년에 만나자는 플랫카드에 이렇게 봄날의 추억 한 컷이 한해 뒤로 밀리는구나라는 섭섭함은 올림픽 한해 미루어지는 것과 비교해도 결코 상실의 크기가 작지 않은 우리내 더 가까운 추억추적 과정 하나를 잃은 느낌이었다.


조카들은 낮시간에 친구와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집에 머물러야 했고, 어디를 가도 마스크를 써야 했고, 가기로 한 여행지의 발음을 찰지게 하며 언제가냐 했지만 어른들은 답할 수 없었다. 쌍둥이 조카들이 어렵사리 간 유치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고, 칸막이로 구분된 밥상에서 친구들과 분리된 공간에서 밥먹는 사진에서는 앞으로 우리 어른들 충분히 더 희생해도 된다는 자책도 들었다.


비우면 본능적으로 채우려 든다.

마음챙김으로 Mindful 하고 있고, 운동으로 Bodyful 하고 있다.

그 반대도 여전히 하고 있다. 마음 잃는 일들, 몸을 잃는 일들...

지독히 관계를 단절했던 1년 끝에, 소셜 살롱을 시작했다.

독서모임을 나가고, 인생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모임에 나갔다.

#트레바리


인생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유료)모임은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 결국은 가서 지금은 주변에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크리에이터클럽 

인생의 한 컷 조차 그저 보낼 수 없는 동시대 사람들이 2주에 한 번 만나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 귀기울였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나를 공유했다. 

소셜살롱이 끝나고 봄날 넘쳐나는 흥으로 가득한 연남동 거리를, 마스크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마주보며 걸어 올때, "내 치열했던 그 시절에도 이런 위안처가 있었다면, 그리고 지금 찬란한 당신들의 젊음에 이런 토론을 나누는 그대들이 너무 부럽다"며 초여름 가기전 올해 마지막 봄기운을 겨우 느껴가며 걸을때면 여러 회한이 몰려오기도 했다.


일년에 한 편 정도 몰입하는 드라마가 있을까?

#슬기로운의사생활

이렇게나 공감하는데 한국을 떠나 이 정도 쫀뜩하게 달라 붙는 창작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처음해 보았다.

화려하지 않은 고백을 다시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누군가도 나만큼 좋았는지 한시간 반복재생 편집을 해주셨다. 


이렇게 코로나가 휘몰아친 2020년을 봄을 보냈다.

우리는 팬데믹 이전으로 다시 돌아 갈수 있을까? 라고 되묻지만 결코 우울하지 않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함은 이래야함을 이끌어온 수많은 오늘의 파편들의 모음이다.

그저 코로나로 인해 다치는 생명이 없고, 우리 아이들이 어서 빨리 친구들과 선생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고.

딱 이정도만 과거로 복원된다면, 우리는 과거의 파편들이 모여진 오늘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다른 방법으로 행복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분주해질 나의 2020's Second Half 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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