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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드리머 Oct 11. 2024

발리 바다에 매료되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엄마의 감탄


"와, 바다가 정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네. 정말 어마어마하다. 저 파도 좀 봐." 

 "이야~ 저거 봐라, 와~ 엄청나네"


 엄마는 바다를 보자마자 숨을 멈추고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셨다. 감정표현이 적은 엄마가 이렇게 감탄하시는 모습은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엄마의 감탄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발리의 바다를 바라보며 쉴 새 없이 감탄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리가 함께한 수많은 여행 속에서, 단 한 번도 바다를 가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바다를 좋아하실 줄은 전혀 몰랐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사실 이번 여행은 '엄마의 칠순을 기념하는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엄마가 발리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발리는 코로나 전부터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이었고, 우리 가족이 한 달 살기를 계획한 상황에서 칠순을 맞이한 엄마가 합류하신 것이다. 결국 엄마의 바람은 반영되지 않은 내 결정이었고, 그저 효녀인 듯 포장한 이름일 뿐이었다. 엄마가 가고 싶은 곳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엄마를 동행시켰던 나. 그리고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좋은 딸'이라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사실도 이제야 알았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함께했던 여행들을 되짚어보았다. 우리 가족은 캠핑장과 수영장이 함께 있는 'MBC 야영장'이라는 곳을 꽤 자주 갔었다. 아주 가까운 지인이 MBC 직원이었기에 갈 수 있었던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작은 텐트 안에 우리 네 명이 어떻게 잤을까 싶은데, 당시에는 전혀 좁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캠핑 그릇으로 밥을 해주시던 엄마, 밤이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셨던 아빠, 수영을 마치고 나란히 수건을 두르고 앉아있던 오빠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갔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지만, 정작 바다에 갔던 기억은 거의 없다. 딱 한 번, 6학년 때 제주도에서 튜브를 타던 장면만이 남아 있다. 우리 가족은 바다와 친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중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가족 여행이 거의 없었다.


 엄마도 여행을 많이 다니셨지만, 대부분 성지순례나 지인들과 함께하는 패키지여행이었기에 발리 같은 휴양지에 오래 머물러 본 적은 없으셨다. 내가 어릴 적에도 엄마가 수영복을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었고, 물놀이를 함께한 기억도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엄마와 수영장이나 바다를 연결해서 떠올릴 수 없었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도 엄마가 오셨지만, 우리는 바다 대신 수목원, 미술관, 맛집, 카페만 다녔다. 이제 생각해 보니, 나는 참 엄마를 몰랐구나 싶다. 그때는 몰랐던 엄마의 바다에 대한 사랑을, 발리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새로운 엄마의 모습


 발리에서 처음 방문한 꾸따 비치에서 본 엄마의 모습은 나에게 정말 새로웠다. 엄마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끊임없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셨다. 사실 바다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엄마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으로 담으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순간은 엄마가 핸드폰을 내게 넘기며 자신을 찍어달라고 하셨을 때였다. 평생 동안 엄마가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엄마를 찍으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엄마의 이런 모습을 알기까지 무려 40년이 걸린 것이다.


 숙소를 스미냑으로 옮긴 뒤, 일몰을 보러 스미냑 비치로 향한 날, 엄마는 도착하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성큼성큼 바다를 향해 걸어가셨다. 신발을 벗어 양손에 들고서. 엄마는 끝없이 이어지는 감탄사를 멈추지 않으시며 또다시 쉼 없이 사진을 찍으셨다. 아이들까지도 "엄마! 할머니가 사진 엄청 많이 찍고 계셔. 너무 좋으신가 봐."라고 할 정도였다. 한참을 사진을 찍고 나서 엄마는 내게 핸드폰을 건네며, 아이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셨다. '이렇게 좋아하시면서 왜 그동안 바다 보러 가자고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엄마가 발리의 바다를 대하는 모습만으로도 이 여행은 내게 충만한 시간이었다.





엄마와의 다음 여행은


  엄마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거의 표현하지 않으셨다.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엄마의 의견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물어보지 않아서였을까?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도 엄마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그저 내가 이끄는 대로 묵묵히 따라오셨다. 부정적인 표현도, 그렇다고 좋다는 표현도 잘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발리에서의 바다는 달랐다. 엄마는 감동과 감탄을 멈추지 않으셨다. 엄마가 스스로 발리의 바다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계실까? 남편도 "어머님, 바다에 오시니까 정말 좋으신가."라고 말할 정도로 엄마는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셨다.


 이번 주말, 우리 가족은 아이들 방학에 맞춰 1주일간 하노이로 여행을 떠난다. 현재 우리 가족은 치앙마이에 살면서 아이들이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비자 문제로 태국을 떠났다가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다. 엄마는 한국에서 하노이로 오셔서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역시 엄마가 가고 싶어 한 여행지는 아니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궁금해진다. 엄마는 어디로 가고 싶으실까? 이번 여행을 통해 엄마라는 사람을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런 소중한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제 아이들도 제법 자랐으니(중1, 초5), 다음 여행은 엄마와 단둘이 엄마가 원하시는 곳에서 한 달 살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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