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환호했다
70세, 발리에서 수영복 입은 엄마를 처음 봤다
엄마가 수영복을 입고 물에 들어가는 모습을 볼 줄이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장소가 발리인 만큼 혹시 발이라도 담글 수 있으니 수영복은 챙겨 오시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날, 놀라움과 감동이 동시에 밀려왔다. 칠순을 맞이한 엄마가, 발리에서 인생 첫 수영에 도전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곁엔, 아이들과 내가 있었다.
수영장에 들어가신다고요?
꾸따에서 수영장을 즐기기 위해 1박 2일로 하드록 호텔. 엄마와 나란히 썬베드에 누워 수다도 떨고 책을 읽기도 고, 각자 핸드폰을 보기도 했다. 아이들과 남편이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나는 여지거지 바쁘게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와서 할머니도 물에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나도 한번 수영장에 들어가 볼까?"라는 엄마 말에 아이들은 "네!!"라고 크게 외치며 환호했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발리까지 왔는데, 물에 한 번 들어가 봐야지. 너도 들어갈래?"
"엄마 먼저 들어가. 사진 찍고 갈게."
엄마와 수영장이라니. 한 번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그림이었다. 엄마도 나도 수영을 배운 적 없다. 특히 나는 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엄마는 과연 어떨까?
할머니가 수영장에 들어가신다는 말에 1호가 냉큼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드렸고, 아이들은 서로 할머니를 잡아주겠다며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돌고래처럼 할머니 주변을 빙빙 돌았다. 튜브를 타고 유유히 떠다니는 엄마. 긴장도, 불안함도 없이 활짝 웃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니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운동신경이 좋은 이모와 외삼촌들을 보며 자랐지만, 엄마가 이렇게 자유롭게 물 위를 떠다니실 줄은 몰랐다.
엄마도? 그럼 나도
그렇게 나도 물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진을 찍고 나도 엄마랑 물속에서 놀아보자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내려놨다. 어느새 엄마는 저만치 멀어졌고, 엄마랑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갔다. 나보다 키가 작으셔서 물속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엄마가 새롭게 보였다.
"안 무서워?"
"이까짓게 뭐가 무서워~" 씩씩한 엄마. 역시 우리 엄마다.
우리는 처음으로 물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칠순이 되도록 왜 엄마는 수영복을 한 번도 입지 않으셨을까. 분명 한 번쯤은 물놀이가 하고 싶으셨을 텐데. 우리를 챙기느라 늘 자신의 즐거움은 뒤로 미루셨던 건 아니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지금은 과연 자신을 위해 살고 계실까?
수영의 시작은, 역시 발차기였다
스미냑 풀빌라로 이동한 뒤, 아이들은 또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오픈형 거실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에게 아이들이 또 물에 들어오시라며 조른다. 우리 가족만 있는 공간이라 더 편하셨을까.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수영복을 갈아입고 나오셨다.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며 발차기 시범을 보였고, 엄마는 아이처럼 그대로 따라 하셨다. 아이들과 엄마, 셋이 함께 웃고 물장구치는 소리가 수영장에 가득 퍼졌다. 그 뒷모습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나는 온몸을 흔들어대며 깔깔거렸다.
엄마는 2호의 구명조끼를 킥판 삼아 앞으로 팔을 쭉 내밀고 발차기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셨고 아이들은 앞뒤에서 따라가며 엄호했다. 튜브를 타고 발차기를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나와 달리 엄마는 척척 앞으로 나아가셨다.
"엄마, 한국 가면 수영을 배워봐~ 소질 있는 것 같아."
다 같이 손뼉 치며 칠순을 맞이한 엄마의 운동신경에 감탄했다. 엄마도 은근히 즐기시는 듯했다. 사진보다 덜했던 풀빌라였지만,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억 한 스푼
처음으로 할머니와 같이 물놀이를 함께한 아이들. 자신들이 더 잘하는 게 있다는 게 신났는지,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이것저것 도와주려 애썼다.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기분이 한층 더 업이 되었다. 그날 저녁, 식탁 위 대화의 주제는 '발리에서 처음 수영을 시도한 엄마의 도전'이었다. 내가 찍은 동영상을 모두가 돌려보며 그 순간을 떠올렸고, 엄마의 표정엔 뿌듯함이 가득했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전혀 없는 나에게,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한 그 순간들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더없이 소중했다.
그날의 물결 소리, 웃음소리, 따뜻한 손길.
이 모든 순간은, 우리 가족에게 오래도록 간직될 ‘발리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