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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우붓, 가장 기대했지만 하루 만에 떠났다

언젠가 다시 가리라

by 프리드리머


추억의 우붓, 이번엔 가족


발리에 가기 전, 가장 기대했던 곳은 바로 우붓이었다. 20대 초반, 친구와 여행에서 우붓의 전통공연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 감동을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발리, 그중에서도 우붓만의 독특한 감성을 함께 느끼며 공유하고 싶었다. 저녁마다 열리는 공연 스케줄도 미리 확인했고, 엄마와 함께 유명한 요가원에 가보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요가 후 방문할 근처 맛집들까지 리스트업 해두었다. 우붓에서 느꼈던 그 특별한 경험을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그런데 출발을 며칠 앞두고, 인터넷 카페에서 우붓에 지진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강도가 심하지 않아 다행히 피해는 없었지만, 마음 한견에 살짝 불안이 스쳤다. '취소할까?' 고민도 잠깐. 그래도, 우붓 아닌가. 내가 그토록 기대했던 곳인데.

결국, 그냥 가보기로 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발리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 한국어를 구사하는 기사나 가이드가 꽤 있다. 심지어 연락도 카카오톡으로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주고받는다. 그중 한 기사분과 연락이 닿아 스미냑 숙소에서 우붓 숙소 이동하는 길에 관광지 3곳을 들리기로 했다. 아침에 출발해 우붓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저녁 6시. 체크인을 하며, 왠지 모를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육감이란 게 이런 걸까? 숙소는 겉보기엔 괜찮았다. 생각보다 깔끔했고, 무엇보다 공간이 넓었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문제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 무려 1주일을 예약한 숙소인데, 인터넷이 안되다니. 가족 모두 배가 고팠지만, 당장 식당을 검색할 수도 없었다. 프런트에 가서 항의하니 이미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숙소를 당장 옮기도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번역기를 써가며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결국 1박만 하고 나머지는 환불받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결국, 다음에 방문할 예정이었던 사누르에서 길게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굳이? 했는데, 참 좋았다


한국에서 로밍한 폰의 소량의 데이터를 이용해 다음날 사누르로 이동할 기사님을 찾았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한국어 구사 수준이 놀라울 만큼 뛰어났고 매우 친절했다. 하루 만에 우붓을 떠나는 게 아쉬워 몽키포레스트와 왕궁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사누르로 이동하기로 했다. 몽키포레스트에 도착했을 때, 기사 아저씨가 "저도 같이 들어갈게요"라고 하셨다. 순간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아저씨는 엄마 옆에서 천천히 걸으며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셨다. 나는 이곳이 3번째 방문이었는데 '설명을 들으니 다르긴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엄마도 아저씨의 동행에 무척 만족해하셨다. 원숭이가 근처를 지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무서워했던 아이들도 아저씨가 함께 있으니 안심하는 눈치였다.



우붓을 떠나며, 안경을 놓쳤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왕궁에서 사진을 남기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잠시 더위를 식혔다. 점심을 가까이에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사누르 근처의 한식당에 가기 위해 우붓을 조금 일찍 떠나기로 했다. 우붓에 도착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떠나다니...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발리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 발리는 우붓이 메인인데."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내내 잠들었던 2호가 한식당에 도착하자 말했다.

"엄마! 나 안경이 없어졌어."


우붓왕궁에서 사진 찍느라 2호는 안경을 벗고 선글라스를 썼는데, 아마 그때 잃어버린 것 같았다. 기사님께 말씀드려 스타벅스에 전화도 해보고, 주변을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안경은 보이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금껏 여러 번 여행을 다녔지만, 가족 중 누군가 안경을 잃어버리기는 처음이었다. 아이의 시력은 -3. 안경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금 끼고 있는 선글라스에 도수가 있다는 점이었다. 우습게도 아이는 식당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밥을 먹었다. 한국에서 안경을 택배로 받아야 할까 싶어 인터넷 카페에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내는 택배는 가장 빠른 경우에도 10일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실내에서 선글라스를 낀 아이를 보며 남은 일정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예민한 편이라, 조금만 불편해도 잘 참지 못하는 아이였다. 나 역시 시력이 -6이라 안경 없이 생활하는 게 얼마나 불편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걸 이 아이가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그것도 무려 10일 넘게. 걱정과 불안이 밀려왔다. 아이는 본인의 부주의로 안경을 잃어버려서인지 애써 괜찮은 척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더 불편했다.

"엄마, 그래도 선글라스가 있어 다행이지 않아?"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심란해하는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잠시 뒤, 밥을 먹던 아이가 조용히 말했다.

"근데 엄마~ 너무 어두워."

웃기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정말 이걸 어쩌나.



숙소도 꼬이고, 아이 안경까지 없어지다니.

이번 우붓은, 우리와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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