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아이를 자라게 한다
괜찮다는데, 나는 괜찮지 않았다
4번째 한 달 살기였지만, 감사하게도 그동안은 여행 중 어떤 사건도 없었다. 평소 감기를 심하게 앓던 아이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여행지에서는 늘 건강하게 잘 지냈다. 그런데 이번 발리 우붓에서, 사진을 찍느라 안경과 선글라스를 교대로 쓰던 중 아이는 그만 안경을 잃어버렸다. 사누르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쓴 채 잠들었고, 안경이 없어진 걸 식당에 도착해서야 알아챘다.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10일이 넘게 남은 상황. 아이는 그 긴 시간을 선글라스 하나로 지내야 하는, 웃기지만 안쓰러운 상황이 시작됐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선글라스부터 찾았다. 호텔 안이 원래도 어두운 편이었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TV를 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답답할 텐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TV를 보며 히죽히죽 웃는 아이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어두운 호텔 방 안에서 있느니 "우리 차라리 밖에 나가자"라고 했지만, 아이는 "조금만 더 TV 보고, 수영장에서 놀 거야."라고 했다. 수경에도 도수가 있어서 보는 데는 무리가 없지만 수경은 하필 핑크색이다. 하루 종일 필터가 껴 있는 상태라 머리가 아프진 않을까? 하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종일 신나게 잘만 논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런 아이를 보는 내내 나만 혼자 심각했다. 남편도, 엄마도 "잘 지내잖아. 괜찮아." 했지만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불평쟁이 아이가 변했다
아이는 그나마 밝은 침대 위에서 언니와 그림을 그릴 때만은, 색깔 구별이 어렵다며 선글라스를 벗기도 했다. 마트에서 사 온 망고스틴을 처음 먹던 날, 너무 맛있다며 스스로 껍질 까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채 호텔 바닥에 앉아, 한참을 집중해서 알맹이만 한 접시에 가득 담아냈다.
2호가 어릴 적 자주 했던 말 중 하나가 "불편해"였다. 카시트에 탈 때마다 불편하다며 떼를 써서 5~10분 이상 걸리는 일이 다반사였고, 외출할 때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또 "불편해"라며 다른 옷을 요구했다.
"대체 뭐가 불편하다는 거야?" 화가 치밀어 오르고, 한숨이 절로 나오는 날이 많았다. 왜 이리 까탈스러울까, 육아가 참 힘들다 싶었다.
그랬던 아이가, 정말 이 '불편한' 상황을 받아들이고도 즐겁게 지내주는 모습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아마도, 여행이 주는 긍정의 힘이 아니었을까.
역시 우리 엄마야
저녁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 선글라스 중 하나는 렌즈 크기가 작고, 테도 일반 안경처럼 생겼다는 사실이. 아이 얼굴에 조금 클 수 있었지만, 열흘 넘게 컴컴한 선글라스를 쓰고 지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보다. 바로 구글 맵에서 인근 안경원을 검색했다. 전화번호가 나오는 곳을 찾아 저장한 뒤, 왓츠앱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과연 답이 올까? 저녁 시간이라 연락이 안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바로 답이 왔다. 기존 선글라스에 있는 렌즈를 빼고, 일반 안경 렌즈로 교체할 수 있냐고 묻자 흔쾌히 가능하다고 했다. 내 선글라스 사진을 찍어 보내 확인을 마치고 다음 날 방문하겠다고 했다.
발리에서 안경원을 방문할 줄이야.
여행 카페나 블로그 어디에서도 '발리에서 안경을 맞췄다'라는 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제대로 된 렌즈를 구매할 수 있을까? 살짝 불안한 마음으로 고젝을 불러 아이와 함께 출발했다. 도착한 안경원은 생각보다 상당히 컸고, 직원도 많으니 안심이 되었다. 아이가 쓰던 선글라스와 같은 도수로 일반 안경 렌즈를 맞춰달라고 부탁했고, 오래 걸리지 않아 내 선글라스는 '투명한 새 안경'으로 변신했다.
아이에게 다소 무겁긴 했지만, 아이는 안경을 바꿔 끼고는 말했다.
"와~ 이제야 살 것 같아. 진짜 하루 종일 너무 답답했어."
그제야, 아이는 힘들었음을 털어놨다. 아마 본인의 실수라고 생각해 말없이 참고 있었나 보다. 그런 속 깊은 모습이 새삼 놀라웠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안경원을 나섰다.
"엄마 여기 진짜 잘 찾았네~ 역시 우리 엄마야."
아이의 칭찬에 괜히 우쭐해지는 나.
이 여행에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아이를 어둠 속에서 구해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