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발리 한 달,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변화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by 프리드리머


한 달이면 뭐가 달라질까?

발리에서 우리는 별일 없이 지냈다. 핫플레이스도 안 갔고, 인스타 감성사진도 거의 찍지 않었다. 그저 숙소에서 우리의 일상을 천천히 보냈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가족에게는 분명 무언가 일어났다. 특별한 이벤트 하나 없었는데 말이다.




할머니를 지킨 10살 보호자


발리에서 가장 그리운 건, 우리가 함께 걷던 '길'이다. 주로 남편이 앞서고, 그 뒤를 1호가 걷고, 엄마와 2호가 손을 잡고 걷는다. 나는 항 마지막, 맨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다. 2호는 뒤에 있는 걸 불안해하기에, 내가 늘 맨 끝을 맡았다.

그러던 어느 저녁 산책길, 2호가 문득 내게 말했다.

"나도 엄마 손잡고 걷고 싶은데, 언니가 엄마 옆에 있으니까 나는 할머니랑 가는 거야. 사실은 나도 할머니보다 엄마가 더 좋아. 근데... 할머니 혼자 가게 할 순 없어. 할머니가 혼자 계시면 불안해. 그러니까... 엄마가 내 마음은 알고는 있어."


잠시 말문이 막혔다. 매일 할머니 손을 꼭 잡고 걷던 2호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할머니를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10살, 이 조그마한 아이가 어떻게 스스로 누군가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할 수 있을까? 그 마음이 기특하고 귀엽고, 나로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2호는 누구보다 할머니에게 애정표현을 잘한다. 언제나 할머니를 깔깔 웃게 만들고, 그 곁을 지켜주는 아이다.

아이 덕분에 나도 더 따뜻해진다. 그날의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신발 벗고 먼저 달린 아이들


맨발로 모래 위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1호가 두 살이었을 때였다. 동네 뒷산을 걷다가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나오자, 아이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서더니 땅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흙을 밟지 않고 뒤로 물러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결국 흙을 딛는데 20분이 넘게 걸렸다. 제주도 바닷가에서는 슬리퍼 사이로 들어온 모래가 불편하다며 울고 볼고 악을 쓰던 모습도 생생하다. 바닷가에 더는 가지 않겠다고 혼자 버티고 서있던 2호. 1호도 다르지 않았다. 울지는 않았지만, 해변을 좋아하지 않았고, 바다에서의 모래놀이를 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랬던 두 아이가 지금은 먼저 신발을 벗고 손에 들고 나에게 말한다.

"엄마, 이 모래 진짜 부드러워. 엄마도 빨리 신발 벗어봐."

지나친 예민함과 신중함을 우려했던 예전의 걱정이 무색해진다. 도대체 왜 그렇게 조급했을까. 시간이 해결해 줄 일도 많은데 말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자는 모습이 가장 예쁘다고 말하지만, 나는 둘이 함께 놀 때가 제일인 것 같다. 집을 떠나면 아이들은 어떻게든 놀이를 만들어낸다. 유일한 놀이 친구임을 알아서일까.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배려하고, 눈빛 하나로 마음이 닿는다. 그러니 나는, 또 다음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아이들이 함께 커가는 모습을
더 오래, 더 가까이 지켜보고 싶기에. 그래서 나는, 언제나 떠나고 싶다.





아이의 한마디, '엄마도 꼭 데리고 다닐게'


돌아오던 날, 공항에서 수화물을 붙이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그때, 1호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가 나를 데리고 여행을 많이 다녀줘서, 나도 나중에 우리 애들 데리고 여행 많이 데리고 다녀줄 거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엄마도 꼭 데리고 다닐게."

아이의 말 한다미가 조용히, 깊게 마음을 울렸다.

여행을 좋아하길 바랐고, 아이들과 다양한 곳을 함께 다니며 경험을 쌓고 싶었지만, 손주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다. 대를 잇는 여행이라니.

아이의 말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큰 감동을 준다.


칠순 엄마의 유튜브 영어공부


주로 단체여행으르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여행을 다니신 엄마. 발리처럼 루즈한 일정은 엄마 인생에 처음이었다. 조금 지루해하시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무던한 엄마는 별말 없이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셨다. 퇴직 후 시간이 많아졌을 때, 내가 한 번 영어공부를 권한 적이 있었다.

"이 나이에 영어 해서 늘겠어?" 라며 웃으셨던 엄마. 그런데 발리에서는 선베드에 누워 영어 유튜브를 직접 찾아보고 계셨다. 가이드만 따라다니던 여행이 아닌, 스스로 흥미를 찾아가는 여행자의 모이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외국인 아이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는 손주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작지만 선명한 자극을 받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그렇게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겪었다.


여행지에서 처음으로 '잘 잤다'


어릴 때부터 나는 예민했다. 특히 잠자는 것에 대해서. 시계 초침 소리에도 잠들지 못했고, 여름에도 방문을 열고 자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암막 커튼은 필수였고. 침구는 익숙해야만 했다. 여행만 가면 늘 힘든 게 잠자리였다. 낯선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한 시간 넘게 걸려 겨우 잠드는 건 기본이었다. 명절에 친정에 가면 아이들과 남편은 자고, 나는 혼자 집에 와서 자고 다음날 다시 갈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 발리 여행에서 4곳의 숙소를 예약하면서도 걱정이 컸다.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다양한 숙소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에, 감행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잘 잤다'. 숙소가 네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모두 금방 잠이 들었고, 새벽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잔 날도 많았다. 밤 11~12시에 잠들고, 아침 6시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가장 신기했던 건 몸이 개운했다는 것.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낯선 곳에서, 편안히 잠든 나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난도 엄마처럼 나이 들고 싶다


이번 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신 날, 선베드에 누워 영어 유튜브를 스스로 찾아보시던 모습. 그리고 언제나 할머니 곁을 지키며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던 2호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달라진 모습들이, 나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시간이 지난 지금, ‘발리’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평온함, 따뜻함, 잔잔한 일상이다.

짐바란 바다를 바라보며 시푸드를 먹던 날,
“지금 여기 있어서 행복해.”
활짝 웃으며 말하던 아이의 한마디가, 나의 발리 여행 계획을 완성시켜 주었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칠순 엄마와 함께한 한 달.
앞으로 엄마와 몇 번의 여행을 더 떠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는 내가 빌려온 책을 함께 읽고, 1호가 챙겨 온 뜨개질도 해보시고, 유튜브 강의와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그러나 즐겁게 엄마만의 시간을 보내셨다. 바다에 가면 누구보다 먼저 사진을 찍으시고, 어느 식당을 가도 맛있게 드시며 새로운 경험을 즐기셨다. 오빠네 가족과 우리 가족, 따로 또 같이 여행을 다니시는 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엄마의 인생도, 참 따뜻하고 아름답게 흐르고 있는 중이라고. 엄마를 보며, 나도 나중에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따뜻하게, 여유롭게, 손주의 사랑을 가득 받는 할머니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