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직장은 없다_나의 기준으로 일하기

권고사직을 통보를 받던 날, 가장 먼저 올라온 감정은 분노도, 좌절도 아니었다. 안도감이었다. 오랜 시간 나는 회사의 기대치로 나를 정의했고 누군가의 평가표로 하루의 가치를 정산했다. 책상 위 명함은 있었지만, 나라는 사람의 좌표는 흐릿해져갔다. 통보를 듣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순간 억울함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숨이 조금 편해졌다. 오랜 시간 보이지 않게 버텨온 노력이 마침내 끝났음을 증명하는 깨지기 쉬운 증명서를 들고 있는 사람처럼.

하지만 안도감이 월세를 내주진 않는다. 1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계산이 시작됐다.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 월세, 경력 공백의 두려움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노후. 밖으로 나가 거리로 나를 밀어냈을 때, 공기의 결이 달랐다. 차 소리마저 친절하게 들렸다, 두려움과 자유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약속했다. 확실함을 가질 수 없다면, 선명함이라도 갖자. 직함이나 직무 설명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반드시 찾아보자.



직함을 벗겨내자 남은 것들

그날 밤 집이 고요해지고 설거지까지 말랐을 때 나는 공책을 펼쳐 내 삶에서 라벨을 떼어냈다. 팀장, 디자이너, 워킹맘 이라는 이름표를 옆으로 밀어 두었다. 그리고 종이에 남은 문장들은 놀랍도록 밋밋했지만 이상하게 맑았다.

- 사람의 문제를 구조로 바꾸어 설명할 수 있는 사람

- 한 문장의 왜를 찾을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

- 낯선 과제를 만나도 작게 쪼개서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사람

- 더 나은 삶에 대한 성장 욕구와 타인의 성장을 돕고 싶은 사람


직함은 일시적이지만 능력의 구조는 남는다. 퇴사를 고민하든, 프리랜서나 자영업을 고민하든 첫 단계는 직함을 벗긴 나의 능력을 문장으로 정리해보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설계의 기준이 된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좌표를 먼저 세워야 타협도 도전도 가능하다.

브랜딩과 디자인을 하며 살아오며 많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찾는 것을 고민하며 일했지만, 정작 나 자신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 했다. 조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현실을 숫자로 읽기

불안은 대부분 모호함에서 온다. 그래서 나는 삶의 네 영역으로 나눠서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보기로 했다. 시간, 돈, 건강, 에너지. 각 영역에 현재의 수치를 솔직하게 적어넣었다.

시간부터 살펴보았다. 하루의 24시간 중 고정 의무인 일, 가사, 육아를 제외하고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인가? 계산해보니 나에게 남는 시간은 하루 3시간 이었다. 그래서 3시간짜리 사이드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은 더 구체적으로 봤다. 월 최소 생계비, 6개월 버티기 금액, 매달 들어올 확정 수입. 수치로 보니 막연한 불안이 관리 가능한 긴장으로 바뀌었다.

건강도 나이 마흔이 넘어가니 중요한 부분이다. 수면 시간, 피로 지수. 주 3회 1시간 운동 가능 여부까지. 체력이 떨어지면 모든 선택이 비싸진다는 것을 경험을 알고 있었다.

에너지는 가장 중요햇다. 무엇을 하면 충전되고 무엇을 하면 방전되는가. 사람 만나기, 글쓰기, 사이드 프로젝트 준비. 나에게는 글쓰기와 사이드 프로젝트 준비가 충전이었다.

네 영역을 채워 넣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잦아들었다. "나는 지금 이만큼 가지고 있고 이만큼은 부족하다." 이것을 정리하고 나니 다음 문장이 자연스럽게 나왓다. 그래서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가.


돈과 의미, 순서를 바꾸니 보이는 방향성

많은 분들이 퇴사를 고민할 때 의미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현금 흐름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의미도 중요하지만, 현금 흐름이 유지될 때 의미의 설계도 지속된다.

나는 순서를 바꿔보았다. 먼저 현금 흐름용 일감을 확보하기가 중요했다. 일단 실업급여가 들어올 수 있고 협상한 위로금이 급여가 2개월치가 있었다. 주변에서 당분간 프리랜서로 디자인 일을 구하고 다시 회사에 이직을 하더라도 아이들 케어와 사이드 프로젝트가 가능한 9-6시 가능한 곳을 선택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 다음은 브랜드 자산 쌓기에 집중했다. 글쓰기, 원더앨리와 프리에이전트 클럽 콘텐츠 발행 등 당장 돈이 되지 않지만 꾸준히 쌓을수록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자산이 될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만의 큰 실험에 도전해다. 제2의 커리어나 나다운 삶과 일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다른 분들과 함께 출간을 하기로 했다. 프리에이전트 클럽이라는 독립된 노동자를 돕는 커뮤니티나 플랫폼을 고민하면서 실제적으로 나 자신이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어떻게 공유해야할 지 고민이었는데 우연히 스레드를 통해 출판사 대표님의 공저 프로젝트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기회로 2026년 초 출간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돈과 의미는 대립이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다. 순서를 바꾸는 순간, 무리한 창업 대신 지속 가능한 전환이 가능해진다.


세 번의 창업이 가르쳐준 것

나는 이미 크고 작은 세 번의 창업을 시도한 사람이었다. 창업 실패는 당시에는 좌절이었지만, 지금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각각의 실페에서 다른 교훈을 얻었다.

첫 번째 실패는 동업자와의 명확한 목표와 기준을 제대로 잡지 않고 무모하게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만 고려하고 시장이 원하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진지하게 시작하려는 마음가짐이 되지 않았다. 그냥 단순한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준비없는 태도라는 것을 배웠다.

두 번째 실패는 반대로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첫 번째 실패를 교훈삼아 철저히 시장 조사를 했고 상품 하나하나 신중히 골라서 준비하고 촬영도 디자인도 신경써서 준비했다. 하지만 사업은 정말 쉬운 것이 아니었다. 실제 포장이나 배송, 마케팅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격을 책정하고 처음부터 너무 많은 상품을 판매한다는 것이 무모했다.

세 번째 실패에서는 앞선 두 경험을 교훈삼아 동업자와 함께 우리의 기준과 시장의 기준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점점 성과도 만들어갔지만 나에게 닥친 개인의 문제로 사업을 지속할 수 없어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앞에 어떤 문제가 닥칠지 정말 예측할 수 없고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실패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진짜 내 기준이 무엇인지, 왜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나는 것이다.


루틴으로 불안을 다루는 법

퇴사나 전환기의 가장 큰 적은 불규칙이다. 나는 3가지 루틴으로 나태함이나 무기력함에서 나를 지키기로 했다. 아침의 1시간 글쓰기부터 시작했다. 결과가 아닌 '기록'이 목적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글을 쓰며 나를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복잡한 감정들이 문장으로 정리되면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글을 보며 위로와 동기부여를 얻었다.

스레드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갔다. 독립된 노동자는 혼자 일하지만 혼자로 버티기 어려운 순간들이 온다. 하지만 함께하는 내적 동료가 있으면 더 멀리갈 수 있다. 각자의 새로운 시선으로 글을 써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시선과 해석을 경험할 수 있다.

AI를 활용해서 촬영이나 영상을 만들어 포트폴리오를 완성해갔다. 실제 소상공인이나 창업을 시작한 분들이 촬영이나 콘텐츠를 운영하는데 AI가 비용을 절감하고 마케팅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강의를 통해 배웠다. 그리고 실제 더 잘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싶어 스스로 다양한 분야를 테스트 해보며 포트폴리오를 쌓아가고 있다. 원더앨리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포트폴리오를 쌓아가고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프리에이전트 클럽 유튜브 채널에 시작했다. 나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프리에이전트 클럽이라는 커뮤니티를 구상하게 되었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자립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독립된 노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새로운 시대에 자유로운 노동자들이 함께 연결되고, 배우고, 협력할 수 잇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각자의 전문성을 나누고, 서로이 성장을 응원하며 때로는 협업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상호 멘토링으로 서로의 성장을 도우며 프로젝트 협업으로 개인으로는 불가능한 큰 일도 함께 해결하고 정보 공유로 시장이 기회를 함께 발굴하며, 정서적 지지로 독립의 외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나 역시 미술치료와 MBTI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심리학와 관심을 가지고 배우며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돕는 것에서 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관계와 조화를 중시하며 진심으로 이해하고 돕는 것이 나의 가장 큰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나부터 나다움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공유하고 독립된 노동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올리기 시작했다.


완벽한 직장은 없다. 완벽한 창업도 없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건 나의 가치와 현실이 만나는 타협점이다. 타협은 포기가 아니라 설계라고 생각한다.

직함을 벗긴 능력을 명확히 하고 현실의 네 영역을 숫자로 파악하고, 작은 시작으로 방향을 잡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들을 의도록으로 만들어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내 기준으로 일하기 위한 기반이 되어줄거라 믿는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방향이 있으니 두렵지 않다. 나처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현재 내가 통제할 수 잇는 가장 작은 단위부터 시작해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계신가요?




작가의 이전글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업을 이어가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