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스토리 #8
두근거리는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한 학기를 끝날 때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집 이외는 식당, 공공장소, 회사, 학원 어디든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써야 했다. 그러나 사이버대학이라는 장점으로 학교 공부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대면 수업을 할 수 없는 것 외엔 큰 불편함이 없었다.
모든 학과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실습과제는 교수님께 파일로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학업과 함께 회사 생활, 화실에서의 작업, 코로나로 인해 외출 자제 등 여러 이유로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고 대신 열심히 그림 그리며 학업에 더 열심히 집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조기졸업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원했던 문화 예술교육사 자격증까지 같이 취득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을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교수님과 학과 친구들을 직접 만나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코로나 기간 중 혼자서 전시 관람을 많이 했고 또한, 서양미술사 공부와 관련된 서적들을 많이 읽어 아티스트 로서의 많은 지식과 폭넓은 견해를 갖게 되었다.
원하는 전공을 졸업하고 또 작가로서의 활동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부분도 뒷받침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그림 공부를 이어 갔다. 편입하여 3년간의 노력으로 졸업을 했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시로 인해 작가는 이미 되었지만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수입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팔려야 하고 그 외 많은 활동을 해야만 수입이 생긴다. 왜 어릴 적 부모님이 화가는 돈이 안 되는 직업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너무 컸다.
가끔, 헤드라인 뉴스에 연예인 OOO 씨의 작품이 몇 백, 몇 천만 원에 팔렸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 작품의 가치는 유명세로 인한 건지 그 가치를 어디에 두고 판단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누구의 말처럼 일단 유명해져라 그럼 똥도 비싼 금액으로 거래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먼저 유명해져야 하나? 그들은 석고상의 기본 아그리파를 제대로 데생할 줄은 아는지 물어보고 싶기도 하다.
현대미술이라는 개념에 거대하게 포장하여 인정하면 끝인가? 예술 업계 관계자들은 연예인이라는 이름을 브랜드화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는구나 하는 못된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그중 정말 몇 명은 내가 봐도 멋진 그림을 그리는 연예인들도 있다. 그러나,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돈이 기회를 갖는구나 하는 슬픈 현실에 무력감과 상실감마저 든다. 현실로 다시 돌아와 이런 생각들은 잠시 내려두고 어쩔 수 없이 나는 현실을 인정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그림작가로 활동했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급여가 적고 성취감 없는 계약직이지만 나름 편했고 좀 더 시간의 여유가 많아 회사에 계속 다니면서 작가로서의 작업을 이어 나갔다.
부산 시립 미술관에서 <빌 비올라, 조우> 전시가 있었다. 빌 비올라는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로 '현대미술의 영상 시인'이라고 불린다. 빌 비올라의 작품들은 모두 영상이므로 관람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되어 두 번 관람하였다. 작품의 영상들은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몇 시간까지 긴 영상이 반복 재생된다. 긴 영상 작품들은 길지 않은 영상을 배속을 늦춰서 늘여 놓았기 때문에 긴 것이다. 마치 멈춰 있는 듯한 영상으로 보이지만 아주 극도로 천천히 재생된다.
빌 비올라의 여러 작품 중 마음에 끌린 영상은 <밀레니엄의 다섯 천사> 작품이다. 물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고요함과 별이 떨어지는 듯한 이 영상에서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검은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이라는 그림이 오버랩 되었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는 유럽에서 활동한 미국의 화가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고 그림의 주제 묘사에서의 자유를 주장하며 본인만의 개성적인 회화 양식을 확립했다. 특히, 휘슬러의 녹턴 연작은 당시 세밀한 묘사의 라파엘전파 풍이 유행하던 시기여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한 작품이었다.
<검은색과 금색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 작품은 녹턴 연작 중 하나이며, 조용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쇼팽의 녹턴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쇼팽의 음악을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하면 밤바다 그리고 밤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그것 만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휘슬러는 평소 쇼팽의 피아노 곡을 좋아했다. 그 결과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이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평가 존 러스킨으로부터 " 대중의 얼굴에 물감 통을 내던졌다"라는 혹평을 받은 휘슬러는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여 법정까지 가게 된다. 이 법정에서 휘슬러의 예술적 철학을 볼 수 있다. 그는 법정에서 "내 생애 전체를 통해 깨달은 지식에 대한 가치"를 매긴 것이라고 말했다. 형식보다는 그림 자체에 미학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이다. 회화의 주제 묘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던 그에게 법원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휘슬러가 표방한 '예술을 위한 예술' 이란 예술 작품은 순수하게 미 그 자체만이 가지고 있는 독립된 가치다. 그 외 종교, 도덕, 역사, 사회 등의 영역은 관계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프랑스 철학자 쿠쟁에 의해 처음 나온 이론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