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네이버 메인을 뜨겁게 다룬 기사가 눈길을 잡아끈다. 강남대로 성소수자 앱 광고 중단. 소수자이지만 다수자를 '불편' 하게 만드는 이슈인 만큼 (내가 보는 동안은) 조회수 1위를 기록. 조선에서 도망쳐 나온 조선의 퀴어는 광고를 실었다는 점이 뿌듯하면서도 며칠 만에 내렸다는 것에 '그럴 줄 알았지'라는 변함없는 회한과 체념 언제나처럼 그 와중에 불쑥 찾아오는 약간의 반발심.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동성끼리 키스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남. 나라 안 망함.
괜히 친한 지인들에게 투정 겸 푸념으로 한 말이지만, 정말 걱정해야 하는 건 동성끼리 키스를 하는 게 아니라, 키스를 못 하고 있는 지금의 내 현실! 그게 훨씬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사람이라면 응당 사랑하고 공동체를 이루고 DNA의 전달자로서 나의 복제를 확대 재생산해야 하는데!!
동성끼리 그게 가능하냐고? 그렇다. 사실 이 글은 단풍국의 사실혼과 기존의 가족주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내 나라 조선의 출산율 0.6%에 대한 재조명이라고 쓰고 아무튼 키스를 못하는 게 문제라는 현실비판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Common-law(사실혼) 이민. 이렇게 쉽다고?
그러니까 나도 이게 진짜로 일어났다고? 싶긴 한데 지인의 지인의 지인 정도 되는 사람이 LGBT에 대한 서포팅의 의미로 커먼로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절했다. 아쉽긴 하지만, 열정과 애정이 넘치는 관계에 대한 유통기한과 아무래도 난 내가 제일 소중한 이기적인 인간이 현시점 가장 친밀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 한계는 '룸메이트' 아니 '하우스메이트'이다. 싱글생활 3년 차. 이제 불편해서 누구랑 같이 자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 주소를 공유하고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다가 서로 시간이 맞으면 일상적인 일들을 같이 해 나가는 관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아. 물론 내 장기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질문은 30번 정도 했습니다. 나중엔 상대도 지쳐서 그래, 눈은 내가 가져가고, 폐는 A가 가져가고, 신장은 C가 가져가기로 했다. 고 답하더군요.
아무튼, 사실혼 관계로 영주권을 받는 건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하거나 투자 혹은 사업체를 운영해서 받는 것보다 훨-씬 간단했다.
1. 파트너와 1년간 주소를 공유하고 = 같이 살고
2. 공동계좌, Bill 같은걸 co-signee로 하고 = 경제권을 일부 공유하고
3. Social media에 서로 오픈된 상태 = Official 한 관계임을 증명
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가게가 망하거나 팔리거나 승질난다고 양파를 던지거나 일을 못한다고 가스라이팅 당하거나 하는 걸 n년간 견뎌내고 영어셤도 2년마다 '아주 잘' 치고 석사 박사도 하고 그렇게 해도 초대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확실함보다는 감정과 사랑에 기반한 이 관계는 훨씬 더 쉽다. 영주권이라는 조건만 놓고 본다면.
이왕 계속 캐나다에 살 거라면 보험 하나 들어 놓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이걸 돈을 받고 해주는 인간들도 있다. -자본주의 만세- 그에 대한 안전 장치로 커먼로 스폰서(=캐나다인)는 우리의 관계가 지속되지 않더라도 -그게 이혼은 아니고 이별정도? - 3년간 상대에 대한 경제적 의무를 가진다. 즉, 상대가 집없어(Homeless)가 되거나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 부양의무가 있는 것. 일을 못하면 알레르기가 생기는 한국인이라 오히려 그런 건 걱정이 없었다.
다만 거절을 한 것은, 결국 주고받음은 trade off라는 점이고 상대가 조금씩 나에게 감정적 의존과 만남의 제안이 강요 아닌 강요처럼 느껴지는 순간. 아 이건 아니다. 판단이 서자마자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고 그걸로 커먼로는 빠이. 표면만 본다면 반드시 '내가 미쳤지!!'의 사건이지만 오히려 그만큼 나 스스로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서로 부담 주지 않는 무해한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느끼게 된다. 영주권 안 받았음 안받았지(뻥) 귀찮은건 못하겠다는 서른 여섯살. 응애.
결국 성장이란 매일 그냥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것뿐인 듯.
아이를 낳고 키우는 다양한 방법
앞서 말한 커먼로 파트너를 증명하는 요소 중 중요한 '둘 사이의 자녀' 항목이 있다. 아무래도 모태유교신앙문화권에서 자란 조선의 퀴어에게도 좀 낯설지만 전전남편 사이에 아이 둘 + 전남편 사이 하나 + 현남편과 둘 (하지만 현남편도 별거 중이며 트랜스 여성 파트너와 아이를 모두 키우고 있음) 이런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강남대로 동성 키스광고를 내린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호모나 게이 뭐야 싶은 상황이다. 와중에 영미법과 대륙법의 차이까지 들먹이며 '이미 존재하는, 실존하는' 관계와 가정을 부정할 수 없어요!이라고 설명하는 건 좀 멀리 간 것 같지만 어찌 되었든 남녀의 스섹으로 아이가 태어난다는 생물학적 팩트에 더해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아이가 자라는 것은 굉장히 긴- 시간의 흐름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더욱 다양한 변화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 생물학적 부모가 아이를 아주 잘 키우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키스도 못하고 있다. 이겁니다.
는 농담이고. 삶이란 내가 원하는 바라는 방향으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 변수와 의외성으로 가득 차 있다. 하물며 영원할 것 같던 나의 원가족도 10대에 들어서자마자 파사삭 공중분해 되어버렸고 나는 단 한 번도 가지지 못했던 '이상적'인 가족에 대한 '재구성' 성취욕에 빠져 미친 듯이 여자를 만나고 다니고.. (이하생략) 원래 내 것이었던 '가족'을 다시 만들면, 그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허무한 믿음으로 전여친들에게 '결혼'을 남발하고 다녔다. 돌이켜보니 단풍국 기준 사실혼에 해당하는 -3번 제외. 저도 오픈리 게이 하고 싶었습니다만 쉽지 않았네요 - 관계가 두, 세 번은 있었다. 아, 이게 사실혼이었구나 인지하고 나니 괜히 결혼이라던가, 무릎 꿇고 프러포즈. 스드메. 나와 결혼 해줄래해? Will you marry me? I DO. 이런 게 다 뭔가 싶다.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고 바래 아이를 가질 것이고 그로 인해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함과 성장이 함께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게이로 태어나버려 여자끼리 키스해도 된다! 나만 못해!라는 철없고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는 모난 돌이 될 수밖에. 최재천 교수님이 그랬다. 퀴어도 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거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우리의 조국은 이미 망했고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혁파하지 않는 한 그렇다면 동성끼리 키스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망할 것. 이런 말 퀴어가 아니면 누가 해.
물론, 저는 망해야 하는 흐름이라면 망하는 것이 맞고, 어차피 인류는 언젠가 다 사라질 것이니 국가주의적 접근 역시도 결국은 아-하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와중에 '다른 나라에 평생 정주할 권리'에 목숨 걸고 있는 모순덩어리의 닝겐인 만큼 대한민국이 하루라도 빨리 다양성을 포용하길. 그리하여 하루라도 더 늦게 망하길 바란다. 진심이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