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타이틀'에 집착하였다.
반에서 1등을 하면 엄마가 좋아했고,
학원 선생님이 자랑스러워했고,
친구들은 나를 ‘공부 잘하는 애’라며 부러워했다.
그렇게 '전교 1등', '공부 잘하는 애'라는 타이틀은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했다.
명문대생, 잘 나가는 스타트업 마케터.
남이 부러워할만한 타이틀을 모으는 건 게임처럼 짜릿했고, 그걸 두르고 사는 건 '나'라는 캐릭터를 끊임없이 강화시키는 게임 같았다.
하지만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게임은 세이브가 안 됐다.
퇴사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많던 타이틀이 로그아웃됐다.
퇴사를 하고 나니,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말이 사라졌다.
"어디 다니세요?"
"무슨 일 하세요?"
"… 지금은, 잠시 쉬고 있어요."
쉬고 있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말끝은 쉬지를 못할까.
나를 설명하던 모든 말이 사라지고 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는 그대로인데, 설명서가 사라진 기분.
‘나’라는 상품을 포장해 주던 마케팅 문구들이 전부 지워진 느낌이다.
그러자 불안이 밀려왔다.
나 지금 뭐 하는 사람이지?
나는 무슨 사람이지?
전엔 뭐라도 붙여서 말했는데,
이제는 그냥 ‘사람’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