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자유를 위한 여정

한국인의 무의식 - 1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외부 환경의 다양한 자극에 노출되었을 때 그 사고방식을 통해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생각과 감정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보편적인 한국인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람이 존댓말을 하지 않는 경우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하게 되어,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발생한 불쾌한 감정은 상대방의 무례함을 탓하거나, 관계를 멀리 하려 하는 등 다양한 부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언어의 존대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윗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쓰도록 하는 유사한 환경에서 적응하도록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3-4살만 되어도 이미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상대를 이름을 부르지 않고 형(오빠), 누나(언니) 등의 존칭으로 부르는데 적응이 되어 있습니다. 이 어린아이들조차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아동이 존칭어를 쓰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면, '너 몇 살이야?'라는 말로 서열 정리를 하려 합니다. 이는 서구의 문화에서 상대방의 나이와 관계없이 이름을 부르는데 익숙한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이렇듯 사고방식은 자극에 대한 고착화된 반응 경로로 볼 수가 있으며 언어, 문화, 관습 등에 큰 영향을 받으며 가치관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사고방식은 유년기부터 환경에 적응을 위해 수도 없이 반복되며 형성되어왔기 때문에 매우 찰나의 순간에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한 채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이는 우리가 운전과 같이 이미 익숙해진 일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게 해주는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의 작동방식과 유사하며, 의식을 하지 못한 채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무의식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정신과에 내원하는 분들은 근본적으로 자신만의 고착화된 사고방식이 새로운 환경, 또는 관계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다른 직원들보다 업무의 적응 속도가 느린 것 때문에 불안 증세를 보이고 위축되어있던 분의 경우, 사람들 간에 업무 능력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일에 적응을 잘하는 듯이 보이는 동료와 자신을 비교하여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의 경우 실패가 용인되지 않는 분위기의 가정환경에서 성장해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나 학업 성적이 좋았던 분들이 직장이나 결혼 생활 등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위축되거나 우울감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정신과 치료에 왔을 때 비슷한 질문을 하곤 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현실이 달라질 게 없을 텐데, 이 치료가 무슨 도움이 될까요?'


엄밀하게 말해서, 우울감이나 불안감에 빠지는 이유는 내가 마주한 현실 그 자체 때문이 아닙니다. 나에게 당면한 부정적인 현실을 받아들이는 스스로의 사고방식이 그 원인입니다. 아이가 둘 있는 가장이 기존의 직장에서 실직한 것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어떠한 사람의 경우, 자신의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고 타인을 비난하는데 온 생각을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며 조직에 충성을 다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을까? 이 회사는 완전히 잘못됐어.' 한편으로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데 집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회사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제2의 삶을 살아보자. 무엇을 배우면 좋을까?' 등의 생각을 하며 창업을 준비하거나 그동안 회사생활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이직 준비에 집중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렇게 불의의 일을 마주 하였을 때 재정비를 하여 이전보다 더 나은 삶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한편,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 사고방식 간의 충돌이 원인이 됩니다. 부부간의 갈등이 원인이 되어 내원하는 분들의 경우, 각각의 배우자를 따로 만나게 되면,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방의 잘못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남편의 말을 들으면 아내가 둘도 없는 나쁜 사람인데, 또 아내의 말을 들으면 남편이 둘도 없는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이 둘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자신의 가치관에서 상대방의 행동을 판단하여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상대방이 어떠한 이유로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려 하지 않으며, 그 이유를 알게 되더라도 합리적이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 부부의 경우 남편은 사업을 하는 분으로 투자에 대한 열의가 높았고 아내는 직장에 다니며 착실하게 월급을 모아 온 분이었습니다. 결혼 초 남편은 배우자인 아내가 모은 1억 원을 주식에 투자하도록 권유하였고 아내는 수익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따라 1억 원을 남편에게 맡겨 모두 한 주식에 투자를 하였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 주식이 원금을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하락을 하자 아내는 크게 당황하여 남편에게 주식을 팔아 남은 돈이라도 다시 돌려주길 요구하였으나 남편은 아내가 투자에 대한 마인드가 없어 부자가 될 수 없다며 다시 반등이 올 때까지 주식투자를 지속하자고 하였습니다.

사실 투자의 결과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수익 낼 수 있을지, 아니면 더 큰 손실을 볼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남편은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자산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계속하길 원하였고, 아내는 그동안 일하며 어렵게 모아 온 자산을 잃는 것에 큰 불안을 느끼는 분이었습니다. 남편의 경우, 부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의미 없는 삶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아내의 경우 비교적 평범하더라도 안정된 삶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부부는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이러한 사고방식의 차이에 대한 협의를 먼저 해야 합니다. 어떠한 미래를 같이 그리며 나아갈지, 그러한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길 경우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지를 충분히 이야기하여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부자가 되려는 삶을 선택할 경우 그만큼의 리스크가 생길 것이고 안정된 삶을 선택할 경우 그만큼의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리스크와 아쉬움의 정도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에 따라 다르며, 이 사고방식은 개개인의 삶의 과정에서 형성됩니다.


위의 예와 같이 사고방식은 감정 반응을 유발하고, 그러한 감정은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이끕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사고방식에 대입하여 상대방의 행동의 원인을 추측합니다.

상대방의 사고방식 -> 상대방의 감정 반응 -> 상대방의 행동 -> 나의 사고방식 -> 나의 감정 반응 -> 나의 행동의 순서로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내가 나의 고유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상대방의 행동을 해석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곤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타인과 다른 자신만의 사고방식에 의해 모든 주변 현상을 해석하고 있음에도,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를 '사고의 감옥'이라고 표현합니다. 타인이 나를 가둔 것이 아닌, 나 스스로나 나를 가두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점입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인 사람은 스스로 만든 걱정으로 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실패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인생의 도전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르게 됩니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타인의 행동을 곡해하여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을 하여 타인을 질투하고 깍아내리려는 행동을 합니다. 책임감이 높은 사람은 늘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살아갑니다. 스스로의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타인의 삶까지 책임지려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애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며 가용 자원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에 휩싸여 삽니다. 의존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적 안녕을 타인에게 위탁하려 합니다. 그 대상은 이성친구, 배우자, 정치인, 종교 지도자, 유명 연예인 등등이 될 수 있습니다. 목표지향적인 사람은 삶의 가치에서 자신이 목표로 삼은 것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물질적 가치이든 정신적 가치이든 한쪽으로 치우친 삶을 살아가며, 그 외적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합니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스스로 세운 윤리적 가치관에 따라 세상에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타인을 비판하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사고 -> 감정 -> 행동의 과정에 있어서 행동과 감정 뒤에 감추어진 사고 과정을 밝혀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합니다. 그럼으로써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사고방식을 깨닫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평상시 호흡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사고방식을 인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사고의 감옥에 스스로 들어가 있는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설령 그 사실을 깨닫더라도 대개는 이런 질문을 저에게 다시 던집니다.

'다들 저처럼 생각하지 않나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정신과 의사는 맞고 틀림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사고방식이든 존중할 가치가 있으며 틀리거나 이상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 사고방식이 너무 확고하고 편향되고 강박적일 경우 스스로를 가둬놓고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는 개개인이 만들어놓은 사고의 감옥에서 나와 바깥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의 글들을 통해서 개개인이 스스로를 가둬놓고 힘들게 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특히나 한국인들이 유교 문화권 아래서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제가 진료를 통해 경험한 것들과 미디어를 통해 접한 사례들을 통해 많은 분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얻길 바라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