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무의식 - 3
현대의 정신치료자들은 서구의 정신분석이론을 토대로 환자의 무의식을 파악하여 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프로이드 이후의 서구의 정신분석 이론의 발달 과정을 보면 이자 및 삼자의 가족 관계 안에서 대부분의 정신역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어머니를 사이에 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즉 3자 관계에서의 내적 갈등 문제를 다루었으며,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은 욕구로 인해, 아버지로부터 거세 불안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불안이 초자아로 내재화되어 신경증을 유발하게 되며, 아버지를 내재화할 때 이러한 초자아 갈등이 해소된다고 보았습니다. 멜라닌 클라인은 어머니의 보살핌으로부터 유래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다루었으며, 코허트는 자기 대상 반사로부터 형성되는 자존감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는 각기 신체화 장애, 우울증 및 경계성 인격장애,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들을 보며 발달시킨 이론으로 당시 사회 문화적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서구의 정신역동이론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에 국한시켜 문제를 풀어나가려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개괄적으로 보면, 출생 시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취약한 아동이 성장을 하면서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였을 때, 또는 부모와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할 때 개인의 정신적 성숙이 멈추어 이후 정신질환을 유발하게 된다는 설명으로, 즉 개인의 온전한 성숙이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서구의 이론은, 정신역동의 최소 단위를 개인으로 보고 있으며, 그 개인을 온전하게 다시 성숙시키는 것을 치료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개인의 정신적 성숙이 정신치료의 1차 목표가 되어야 함에는 동의하지만, 우리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특이성을 고려하였을 때 더 복잡한 역학관계가 존재함을 알아야 합니다. 서구의 개인의 성숙이란 다시 말하자면, 온전히 개인 대 개인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독립된 개체로 정신적 발달을 이루어냄을 의미합니다. 자녀의 성숙은 부모와 동등한 인격체로 성장함을 의미하고, 이러한 부모-자녀 사이의 대상관계는 자녀의 무의식 속에 내재화되어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이 된다. 즉 서구의 성숙한 개인 간의 대인 관계에서는 내적 상하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는 완전히 개별화된 독립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정체성은 무의식적으로 집단적 사고에 기반을 둡니다. 개인은 집단을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집단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한 개체의 독립적 성숙은 오히려 타 개체들에 의한 집단적 억압의 상황에 놓일 위험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한국인의 무의식적 사고를 이해하려면, 언어를 비교하는 것이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언어는 무의식을 표상화하는 가장 명백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은 스스로를 가리킬 때 '나'가 아닌 '우리'라는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합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집을 소개할 때 '내 집'이 아닌 '우리 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한국인의 자아가 '우리', 즉 집단성에 기인해서 작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살펴볼 것은, 이러한 집단성이 자연스러운 성장의 결과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입니다. 한국인에게 형성되어있는 '우리'라는 집단적 무의식은 성장과정에서 사회문화적인 압력으로 인해 주입받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3세의 아동은 자신의 집을 표현할 때 우리라는 말을 쓰지 않고 '내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즉 서구의 이론대로 부모와의 관계에서의 개인성의 완성은 한국 아동들에게서도 일어나고 있으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러한 사고는 사회문화적 압력에 의해 지속적인 변형을 겪게 됩니다.
우리가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고 어떠한 집단에 종속되어 보호 아래 있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큰 안정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집단이 유지되기 위해 개인 간에 필연적으로 위계질서가 형성됩니다. 우리라는 집단은 균질한 개인으로 구성되지 않고, 위아래를 구분 지어 수직적인 상하관계 아래 존재합니다. 이 역시 언어 체계에서 명확히 존재하며, 만 24개월인 아이는 이미 자신보다 큰 아이에게 형(오빠), 또는 누나(언니)라고 호칭을 붙여서 지칭을 하며, 연장자에게 존댓말을 하는 법을 차츰 습득하게 됩니다. 한국의 어린아이들이 4-5세만 되어도 서로 나이를 먼저 물어보며 서열정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 3세 이전부터 한국의 아동들은 나이에 의한 위계질서 체계, 즉 계급주의적 사고를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무의식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즉, 한국의 아동들은 만 3세 이전부터 수평적 인간관계가 아닌 계층적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이에 의한 계층화는 학령기 및 청소년기 아동들에게 경직된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만듭니다. 나이가 같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로 반말을 하며 친구 관계를 형성하게 되지만,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거나 적은 관계에서는 친구 관계가 아닌 상하관계를 형성하게 만듭니다. 대개 한국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나이에 의한 상하관계가 별다른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유급이 없이 진급을 하게 되고, 같은 나이의 또래들과만 친구관계를 맺으므로 계층화의 불합리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입학하는 초기 성인기가 되면, 나이가 아닌 다른 기준들이 상하관계의 기준으로 적용이 되므로, 이러한 나이에 따른 계층화가 바로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한 가지 예로 대학에는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입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수, 삼수, 사수 그 이상의 나이대가 동일한 시기에 입학을 하여 동일한 학번을 형성하게 됩니다. 동급생들 사이에는 선후배 관계가 존재하므로, 이제는 나이가 아닌 학번에 의한 서열화가 구성되는 것입니다.
한 예로 제가 다녔던 대학에서는 서열정리를 위한 규칙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현역과 재수까지는 현역으로 묶어 같은 나이로 취급을 하고, 삼수생부터는 나이별로 +1씩 카운트를 해 주는 것입니다. 즉, 재수를 한 2021년 학번과 현역 2020년 학번은 나이로는 동갑이지만, 학번에 따른 위계를 따라 형 동생 관계를 형성하고, 2021년 학번의 현역과 재수는 서로 말을 놓고 친구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대학교 재학 시절 내내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으로, 선배들에 의해 따를 것을 강요받게 됩니다. 이때 문제가 되는 재수 당사자들은 나이에 의한 위계질서를 버리고 학번에 따라 동갑인 선배를 형으로 부르며 존댓말을 써야 하는 다소 불합리한 상황을 수용해야 합니다. 형(오빠)과 누나(언니)라는 말은 본래 나이에 의한 위계질서를 반영하는 말이었으므로, 동갑인 학생을 형으로 부르는 것은 강한 정신적 저항에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 이 규칙을 따르지 않고, 한 학번 위의 동갑인 학생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 아래 학번의 재수생이 있다면, 위의 학번 학생들은 아래 학번 학생이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위계질서에 도전하는 것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는 즉 위계질서의 역전에 의한 내적 갈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후 사회생활에서 또다시 위계질서의 역전과 이로 인한 심리적 혼란 상황을 반복해서 겪게 됩니다.
언어적으로 이렇게 극명하게 표현되는 서열화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깊고 상호적인(deep and mutual)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서열화된 인간관계에서는 필연적으로 경계의 침범이 발생하여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개인적 영역에 대한 침범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선배가 후배에게는 편하게 부탁이나 전화 연락을 할 수 있지만, 후배가 선배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굉장히 예의를 차려야 하는 일이 됩니다. 이때 개인 간에는 상호적으로 균등한 조건이 아닌 일방적인 관계에서 모든 소통이 이루어지게 되며, 이러한 관계를 역전시키는 요인이 발생하게 되면, 기존의 윗사람은 아랫사람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서 아끼던 후배가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선배에게 술을 살 경우, 그 선배는 후배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기가 힘든데, 그 이유는 부에 의한 서열의 역전 현상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즉, 한국인의 무의식은 나이 – 학번 – 재산 등을 기준 삼아 끊임없이, 서열관계를 구축한 뒤 상대와 소통을 하도록 만들며, 이러한 서열관계로 인해 상호적인 관계에서 형성할 수 있는 유대관계의 형성을 저해하고, 상대방에게 낮은 지위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경쟁적인 사고를 형성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끊임없이 자신의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의 경우,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자기애성 인경의 특성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러한 모습을 자기애성 인격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으로 봅니다. 코허트가 주창한 자기 심리학에서의 상대방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거울 반사는, 개인의 개별성이 완성되기 전, 어머니라는 보호자에게서 인정욕구를 느끼는데서 출발하지만, 한국인들이 보이는 인정욕구는 그보다는 자신을 상하관계에서 윗사람의 위치에 놓이고 싶은 욕구에 기인한다고 보입니다. 특히나 젊은 사람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서 이러한 모습이 점차 강하게 보이는데, 나이가 더 이상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시점, 즉 나이가 많다는 것이 윗사람보다는 약자를 의미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점을 부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서열화된 사고방식의 문제는, 강자들이 약자들의 경계를 침범하게 만들고, 필연적으로 약자들에게 불가항력적인 억울함, 박탈감, 우울감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인들의 정신적 특성이라고 말하는 ‘한’의 정신역동적 시발점이 됩니다. 한국인들은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다고 느껴 대응을 하지 못할 때 억울함을 느낍니다. 저는 이러한 억울함이 위계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사회적 압력에서 발생을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사회적 압력이란 타인들의 시선, 즉 명분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연장자와 다툼이 생길 경우, 나이가 적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특히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나이가 적은 사람은 타인들의 시선에 의해 죄책감과 모욕감을 느끼게 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어린 사람과 시비가 붙었다는 자체가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하여 큰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나이에 의한 위계질서에서 오는 억울함은 대개 ‘한’의 감정까지 일으키지 않고 큰 내적 갈등이 없이 해소가 되곤 합니다. 이는 한국인들이 유아기 때부터 나이에 의한 질서를 확립하여 이미 이러한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반면 중요한 한의 정서는 이러한 나이에 의한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 즉 사회적 지위에 의한 압력에서 더 강하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나이가 많은 아파트 경비원에게 입주민이 반말이나 욕설을 하는 등 갑질을 하는 경우, 이는 당사자나 그 자녀들에게 큰 분노와 한의 감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여기서, ‘한’이 발생하는 상황이 개인 간의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 상황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직장 내에서는 갑질 관련 사건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중 간호사들의 태움 문제는 여러 차례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선임 간호사가 후임 간호사를 태울 때, 후임 간호사가 저항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압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곳을 찾으면 될 법도 하지만, 이 바닥이 좁으니 새로운 곳에 취직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언질은 아직도 유효하게 작용하는 심리적 압박 중의 하나입니다. 이때 당사자가 느끼는 불가항력적인 힘이란, 상대방의 강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당사자와 상대방이 속한 사회 전체에서 발생하는 압력을 의미합니다. 개인이 이러한 압력에 저항을 해서 싸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당하는 개인은 무기력감과 억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강자들에 대한 분노를 유발하지만, 강자들 또한 이러한 역학관계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습니다.
이번 챕터에서 한국인의 집단에 의해 형성된 자의식과 이로 인한 구성원 간의 계층화에 대한 문제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간략하게 설명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의 삶에서 많은 내적, 외적 갈등들이 이러한 서열의식에 기반하여 발생을 함에도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인지를 하지 조자 못한 채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계층화된 개인은 집단의 압력 속에서 무기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가 스스로 설정해놓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후 챕터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다양한 실례들을 바탕으로 무의식적 계급주의의 문제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