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심의 무의식 원리 이해하기

한국인의 무의식 - 4

우리는 타인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흔히 '부럽다'라는 말을 사용하곤 합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부럽다'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자기도 그런 일을 이루거나 그런 물건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있다.'라고 풀이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를 보면 상대방을 축하해주기 위한 의미로 '부럽다'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잘 되었는데,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말은 축하하는 마음보다는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차를 구입한 친구에게 부럽다는 말을 사용한다면 무의식은 자신이 친구와 같은 차를 갖기를 원함과 동시에 그것을 당장 가질 수 없다는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이는 곧 '질투심'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질투심이 보다 강하게 일어날 경우 친구가 산 차의 단점을 찾아 그 차를 구입하는 것이 좋지 않은 이유를 찾아내어 스스로의 박탈감에 대한 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한편, 친구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차보다 훨씬 가격이 낮은 차를 새로 구입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우리의 무의식은 내가 이미 친구보다 좋은 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럽다 보다는 좋겠다. 잘 샀네. 등의 말을 말하도록 합니다. 친구의 차와 자신의 차를 비교한 후 내 차가 더 좋은 것임을 확인한 후에야 친구에게 축하의 말을 마음 편히 건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 내가 부럽다는 표현을 한다면 그것은 친구를 기만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한국인들의 언어적 소통이 계급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할 때 무의식적으로 수직적 높이의 차이, 즉, 상하관계를 설정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무리 친구 관계에 있다고 하여도 우리의 무의식이 설정하는 기준에 따라 친구와 자신 간의 지위적 차이를 만들어내고 맙니다. 예를 들어 10대 시절에는 학교 성적이나 외모, 20대 시절에는 다니는 대학, 30대에는 좋은 직장, 40대에는 소유한 자산, 50대가 지나서는 다시 자녀의 성적 등등 특정한 기준을 삼아 타인과의 지위의 높낮이를 설정하려고 합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우리'라는 집단 안에서 계층적 구조를 갖고 살아가도록 정신적 압력을 받는 데 있습니다. 특히나 존칭어와 존대법이 발달한 언어구조를 통해 우리는 유아기부터 나와 타인 간의 끊임없이 높낮이를 저울질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기준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줄을 세우는 방식에 익숙하여, 오히려 줄을 세우지 않으면 불안한 지경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줄을 세우는 습관은 제가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확연하게 느꼈던 부분이 있습니다. 교수님과 레지던트 1,2,3,4년 차가 함께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교수님께서 회의를 진행하며 의견 조율을 한 후 자리를 떠나면, 레지던트 4년 차가 다시 교수님의 역할을 하여 1~3년 차를 통솔합니다. 그리고 4년 차가 떠나면 다시 3년 차가 1~2년 차들에게 의견 전달을 합니다. 3년 차가 떠난 후 마지막에 남은 1,2년 차는 다소 이전보다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리가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형태의 수직적 대화 방법은 회의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회식 자리에서도 주로 발언권이 높은 교수님이나 윗년차 전공의가 대화를 주도해 나가고 다른 전공의들은 그 대화에 집중하며 맞장구를 쳐주는 방식으로 대개 대화가 진행됩니다. 이러한 수직적 서열관계에 의한 일방향의 경직된 대화 방식은 의견의 활발한 소통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되며, '눈치'의 중요성이 여기서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계급주의적 사회에서 개인 간의 질투심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제가 상대방보다 지위가 낮음을 인정한다면 부럽다거나 질투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어합니다. 누구도 타인보다 낮은 지위에서 무시를 당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나 한국인들에게 나이에 의한 위계가 약해지고 다른 기준에 의한 서열 정리가 일어나는 상황이 오면, 우리는 그 상황을 '억울하다'라고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타인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는 방법'을 소개하는 유투브 영상에서 진행자분은 자신이 대리기사를 하던 시절 나이가 어린 사람이 반말을 하며 하대를 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 진행자분은 나이에 따른 서열관계가 역전되는 상황에서 큰 심리적 갈등과 고통을 느꼈던 것입니다.


어떠한 기준에서든 서열의 높낮이를 정하는 문화권에서는 필연적으로 서열상 높은 사람이 서열상 낮은 사람의 경계를 침범하는 가해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한쪽은 존댓말을 사용하고 다른 한쪽은 반말을 사용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가해의 시발점이 됩니다. 이러한 가해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높은 지위나 부 등의 객관적인 기준에서의 지위적 상승을 획득하려고 노력합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 다시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는 다시 지위가 낮은 사람의 질투심과 분노 등의 감정을 자극하게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약자의 힘이 응축될 경우 '평등'이란 가치 아래 기존의 공고화된 계급을 뒤집으려는 집단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사회적 평등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사람들이 이미 무의식적 계급의식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평등이 아닌 남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열망에 의한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계급적 서열의식을 해소하고 상호 간의 존중의식을 양성하는 언어적, 사회적 틀을 형성한 후에야 진정한 평등에 대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개개인의 무의식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영어로는 부럽다는 말을 어떻게 할지 오랜 시간을 궁금해하였습니다. jealous나 envy 등의 단어를 학창 시절에 외우긴 하였으나 여러 미드를 보면서도 실제로 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하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두 단어에는 상대방을 질투한다는 부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상대방의 상황을 비교하여 부럽다는 감정을 느끼기보다, 제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상상하고 받아들일 때 'Good for you'라는 영어식 표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언어적 습관이 제게 질투심과 우울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저는 이제 한국어로도 부럽다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부럽다는 말을 하는 상황이 이전보다 불편하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부럽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저를 질투하는 마음이 들어 온전한 축하를 주고받기 힘든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계급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여 온전한 축하와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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