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zburg (18.01.24 ~ 18.01.25)
산뜻한 기분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들었던 또 하나의 도시와 이별을 앞둔 아침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순례자보다도 성스러운 마음으로 슈테판 대성당 문을 열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신성한 상징임은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갖가지 성화와 조각들이 가득한 예배당. 이를 감상하며 옮겨지는 무거운 발걸음은 축축한 습기 탓인지, 아니면 곧 떠나야 하는 아쉬움 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겨우 몇 분 남짓 머무른 성당 안에 내 모습이 빈 여행의 모든 순간을 압축해 놓은 듯 보였다. 모든 것을 담기에는 너무 짧았지만 그만큼 강렬했고 돌아서는 발길에 끌린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나왔기에.
빈 서역에서 탄 기차가 잘츠부르크 중앙역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두 시간 반이었다. 오스트리아 서쪽 끝에 위치한 이 도시가 이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단연코 오늘 아침에 거의 스치듯 방문한 슈테판 대성당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을 모두 치른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 때문일 것이다. 물론 피아노 학원 선생님인 엄마의 영향으로 나에게도 보다 더 의미가 있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것 만으로는 한없이 부족했다. 기나긴 유럽여행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도시로 잘츠부르크를 꼽는 이유를.
프라하부터 날 따라다니던 지긋지긋한 회색빛 하늘이 처음으로 그 파란 속살을 온전히 드러냈다. 여행은 날씨가 다 한다는 표현이 괜한 말이 아닌 듯 시작부터 만족감이 충만했다. 24시간 동안 대부분의 대중교통과 관광지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서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미라벨(Mirabell) 궁전이었다. 하지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의 촬영지이자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궁전 정원은 꽃 없는 잔디밭과 물 없는 분수만 있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맑은 하늘이 아니었다면 더욱 마음 아플 뻔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지난번 LA와 라라랜드도 그렇고 그 도시를 안내하는 좋은 영화는 꼭 감상하고 와야겠다는 생각 또한 다시금 들었다. 그랬더라면 생각 없이 지나친 요소 하나하나가 조금은 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는 역시인가 보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답게 관련된 장소 두 곳 모두 이 여행의 순간순간을 감미롭게 만들어주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생가와 20대를 보냈던 집은 이제 박물관으로 꾸며져 나를 비롯한 많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먼저 방문한 모차르트의 집(Mozart Wohnhaus)은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그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많은 이들이 굳건한 사랑을 맹세하며 자물쇠를 걸어 둔 마카르트 다리(Makartsteg)를 건너 도착한 모차르트 생가는 이정표를 따라 이동하며 위대한 작곡가의 탄생을 기려볼 수 있는 공간미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름 말고는 사실 잘 알지 못하는 한 작곡가가 어떤 삶을 살아냈기에 자신뿐 아니라 유서 깊은 이 도시까지 더욱 빛나게 했는지를 알아갈 수 있었다.
이렇듯 잘츠부르크를 활보하는 내내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던 고지대의 요새, 호엔잘츠부르크 성(Festung Hohensalzburg)에 오르기 위해 'FestungsBahn'이라는 이름의 푸니쿨라(Funicular)에 몸을 실었다. 높은 곳에 오르니 역시나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뻗은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소 늦은 시간에 올랐기에 풍경에는 이미 응달이 진 후였으나 그 나름의 선선한 색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눈을 돌리자 저 멀리 눈 덮인 산들이 겨울의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저 적을 막아내겠다는 일념으로 쌓아 올린 투박한 성벽과는 대조되는 아름다움이었다. 그 산 너머로 지는 해가 발산하는 노을빛이 풍광의 찬란함을 더했다.
새파랗던 하늘이 깜깜한 잠옷을 입은 후에야 비로소 수제버거로 든든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할 공간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독특한 외관을 한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묀히스베르크(Mönchsberg) 전망대라고 불리는 야경의 명소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려다본 잘츠부르크의 밤거리는 유럽여행 내내, 아니 짧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아도 살면서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여기까지의 모든 기록만으로 내가 경험한 잘츠부르크가 완벽하게 전달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같은 기분이 와닿기를 소망한다.
여행의 하루하루가 저무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쉬운 법이다. 그 하루가 오늘처럼 온전하게 좋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된 도시와의 이별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유는 매일매일이 어제보다도 좋았다는 반증이리라. 그래서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이제 그만 오늘을 놓아주어야 했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하자마자 역 캐비닛에 보관한 캐리어를 꺼내 기념품으로 산 모차르트 초콜릿이 뭉개지지 않도록 담았다. 시간은 짙은 새벽을 헤매고 있을 무렵, 나를 이 도시로부터 끌어내 다른 도시의 품에 안겨줄 야간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유럽을 떠나 남유럽으로 향하는 기차와 함께 이 여행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3박 4일 오스트리아 빈 & 잘츠부르크 여행 발자취》
1일 차 (18.01.22) - 유럽 4일 차
플로렌스(Florenc) 버스터미널 | 스타디온(Stadion) 버스터미널 > 빈 시청
2일 차 (18.01.23) - 유럽 5일 차
쇤브룬 궁전 > 벨베데레 궁전 > 빈 오페라하우스
3일 차 (18.01.24) - 유럽 6일 차
슈테판 대성당 > 빈 서역 | 잘츠부르크 중앙역 > 미라벨 궁전 > 모차르트의 집 > 모차르트 생가 > 호엔잘츠부르크 성 > 묀히스베르크 전망대 & 현대미술관 > 잘츠부르크 중앙역
4일 차 (18.01.25) - 유럽 7일 차
잘츠부르크 중앙역 |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