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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란 Apr 23. 2023

까미노 블루

투어러블메이커 - 구마노 고도, 꿈 많던 너로

  ‘까미노 블루’


  토마는 처음 이 단어를 접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6일 차에 로스 아르코스라는 마을에서 다시 만난 ‘불혹’ 형님과의 대화 속 처음 등장한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걷는 것만 31일이었던 총 여정 중 초반이기도 했고, 완주하기까지 마냥 좋지만은 않던 기억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해서일까? 불친절했던 그 길이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 찾아오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려 779km 위에서 올곧게 닦았다고 여긴 평정심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건 부끄럽게도 일상으로 복귀 후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스스로의 삶이 불안정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하자마자 토마는 덮어두었던 계획을 꺼내 들고는 하루하루 망설였다. 회사로 인한 시간제약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산티아고 순례길 대신 고민해 온 또 다른 길. 국내에는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귀국하자마자 부지런히 알아봤던 일본의 한 순례길이었다. ‘구마노 고도’라고 불리는 이 길은 토마가 프랑스 길을 걸으며 매일 적어 내려갔던 버킷 리스트에도 떡하니 올라가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위해서는 토마의 굳은 결심이 필요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짧다고는 해도 일주일은 잡아야 하는 여정이기에 회사 사정을 살피는 것이 제일 컸다. 너무 긴 휴가는 눈치가 보이지만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여행이었다. 과감하게 9일짜리 연차사용 계획을 올리고 부장님 결재까지 받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제 온전히 떠날 준비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 이미 올해가 시작하고 일본을 두 번이나 다녀왔기에 현지 사정은 빠삭한 편이었다. 트래킹을 위한 장비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사용했던 걸 그대로 챙겼다. 이제 숙박만 해결하면 만사 오케이다.


  앞으로 쭉 이야기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숙소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장 많은 여행이 되었다. 마땅한 곳을 찾기 힘든 지역도 있었고, 순례길 트래킹과 더불어 토마가 세운 이번 여정의 또 다른 테마가 온천이었던 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비행기 타기 전날 묵은 인천국제공항 근처의 한 게스트 하우스였다. 아침 7시 40분 비행기라 공항 리무진으로는 빠듯한 시간이었기에 토마가 지금껏 다닌 해외여행을 통틀어 최초로 집이 아닌 곳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공항 내 숙소는 이미 만실이라 대안으로 선택한 곳이었지만 알아보니 위치나 시설 모두 훌륭하다는 평이었다. 다만 회사가 변수였다.


  일이 끝나자마자 얼른 집에 들러 짐을 챙길 요량으로 집 근처 분당에 공유오피스로 출근한 토마였다. 하지만 그날따라 퇴근이 늦어져 서둘러 짐을 챙기고 출발했을  이미 저녁 8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호스트가 안내해 준 바로는 저녁 11시까지는 체크인이 가능서둘러 지하철에 올랐다. 분당선에서 공항철도까지 무려 4번의 환승, 34개 역을 경유하는 여정이었다. 당연히 저녁도 먹지 못했기에 2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목적지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여행의 첫 끼니를 때웠다. 언제나처럼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출발이었다.




  토마는 매 여행에 앞서, 이왕 떠나는 김에 더욱 특별하게 보내기 위한 테마나 여러 가지 이벤트를 고민한다. 그래서 이번엔 게임 퀘스트를 깨듯이 ‘오늘의 미션’을 부여하기로 했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소소하지만 쉽지 않았던 첫 미션과 그 결과들을 소개한다.


《오늘의 미션》

1. 조기 퇴근 (X)
: 늦어도 4시에는 일을 마치고 나올 생각이었지만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였다. 덕분에 뒤 이은 미션들까지 연달아 실패할 뻔했다.


2. 짐 싸기 (O)
: 이건 순전히 토마의 잘못이었다. 전날까지 늦장을 부리다 짐을 다 못 싸서 미션으로 넣어진 항목이니까. 퇴근하고 오자마자 급하게 챙겼지만 다행히 빠뜨리는 물품 없이 모두 챙길 수 있었다.


3. 저녁 11시 전 게스트 하우스 체크인 (O)
: 천만다행으로 호스트가 안내한 시간 내에 도착해 민폐를 면했다. 토마가 챙겨 입은 바람막이의 얼룩덜룩한 무늬 때문에 옷이 젖은 줄 아셨던 호스트는 밖에 아직도 비가 오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하루 종일 내렸던 비는 도착해 보니 이미 그쳐 있었다.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체크인을 마친 뒤 예약한 1인실에서 홀로 쾌적하게 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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