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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티카 Aug 10. 2021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혐오는 거둬주세요.

매드연극제 인터뷰 ep.3

글 이철승
사진 이철승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하일호 대표와 김보경 배우


정신장애 당사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바꾸기 위한 연극무대인 ‘매드연극제’의 둘째 날. 안산지역 워크숍에 참여했던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무대가 있었습니다. <내 아이에게>.


어두운 무대에 맨 앞에는 노란 종이배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네, <내 아이에게>는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살피는 연극입니다.


연극으로 공유하는 아픔


‘종이로 만든 배’의 하일호 대표는 세월호 사건 직후부터 세월호 가족간담회에 부지런히 참석하면서 아픔을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위로와 힘을 전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던 하 대표는 오히려 가족들이 남긴 무거운 이야기들만 잔뜩 짊어지고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하일호 대표: 간담회에 참여하면 우리가 뉴스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유가족들의 이야기와 아픔들을 그대로 마주하게 돼요. 그 무거운 이야기들을 저 혼자만 안고 있으면 너무 힘드니까 배우들과 공유하기 시작했죠. 함께 얘기하고 기록하면서 다듬어 갔는데 어느덧 그게 희곡이 되어 있더라고요.


세월호 1주년이 된 2015년에 하일호 대표와 극단 ‘종이로 만든 배’는 <내 아이에게>를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일호 대표: 지금 생각하니 초연을 한 무대로 대학로에서였네요. 하지만, 그때는 이음아트홀 같은 좋은 무대가 아니라 길거리 집회에서였어요. 그 사이 무대도 극본도 많이 변했지만, 세상만 변하지 않았네요.



시간에 따라 변화한 <내 아이에게>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는 7년간 <내 아이에게> 공연을 이어가면서 그 내용과 형식을 계속 업그레이드해나갔습니다.


하일호 대표: 초기에는 아무래도 집회가 주무대였던 이유도 있고 해서 정치적인 메시지가 많았죠. 주로 사실을 서술하면서 당시 정부가 발표했던 내용들을 반박하고 지적하는 게 중심이었습니다. 형식도 지금과 같은 정극이 아니라 1인 낭독극이었어요.


유해 수습이 이어지면서 아이를 찾은 부모들이 하나둘씩 팽목항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이를 찾지 못해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었습니다. 몸이 팽목항을 떠난 후에도 마음만은 여전히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부모들입니다.


무심한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그에 따라 뉴스와 세상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시간은 여전히 2014년에 멈춰져 있고, 세상은 그때와 한 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진실은 여전히 잠겨 있고, 아픔은 여전히 그때의 무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일호 대표: 극의 내용이 계속 수정된 것은 공연을 할 때마다 유가족들에게 절실한 이슈들이 달라지기 때문이었어요. 현재는 주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에 집중하고 있어요. 초기에는 정치나 이슈들에 가려져 있었지만 결국 처음부터 가장 깊은 곳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것은 부모들의 고통이었잖아요. 그래서  아이의 잃은 후의 부모의 일상을 때론 무덤덤하게 때론 시리게 풀어내기 시작했어요. 세월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자식을 잃은 모든 부모의 이야기도 되는, 인간적인 이야기이죠.


하얀 옷을 입은 어머니


<내 아이에게>의 무대에선 6명의 배우 중에서 김보경 배우가 돋보입니다. 검은 커튼이 내려진 무대 위에 검은 의상을 입은 5명의 배우들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스며들고, 김보경 배우만 홀로 하얀 옷을 입고 무대 중심에 서 있습니다. 1인극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오롯이 가져가기 위함이기도 하겠죠.


김보경 배우: 제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에 감히 부모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죠. 그저 저도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을 때의 심정을 미루어 짐작하면서 유가족의 아픔에 더 가깝게 다가가려고 애를 쓰고 있을 뿐이에요.


무대 위에서 시종일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천천히 읊조리던 김보경 배우는 아이와 함께한 예전의 추억을 떠오른 듯 가끔 웃음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남긴 학교의 빈 의자를 끌어안거나 종이로 만든 배를 바라보며 울먹이며 쌓이는 고통과 슬픔은 쉽게 걷히지 않습니다.


김보경 배우: 배우로서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저도 굉장히 힘들어질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 정도는 연극을 하는 배우로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함께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 


극단은 <내 아이에게>를 2015년부터 매년 4월이 되면 빠짐없이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 외에도 매드연극제처럼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많은 사람과 공유해왔습니다. 부모님의 아픔을 함께 하고 싶은 극단의 마음은 유가족에게까지 전달되었을까요?


하일호 대표: 2019년과 2020년에 연속으로 안산에 마련된 유가족 공간에서 공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 부모들이 연극이 끝난 뒤에 오셔서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전하시더라고요. 누군가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큰 위로를 받으신다고 하셨어요.


김보경 배우: 끝까지 같이 기억하겠다고 했어요. 이렇게 무대에 올려서 많은 사람이 계속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 같은 연극을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몫이겠죠. 그때는 차마 전하지 못했지만 유가족분들 어렵고 힘드시더라도 꼭 참고 잘 버텨주셨으면 좋겠어요.


매드연극제와의 연결 고리


하일호 대표: ‘종이로 만든 배’는 늘 소수자와 차별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저희는 <내 아이에게>도 매드연극제와 같은 차별에 관한 이야기예요. 사고 직후 세월호 유가족을 향했던 짧은 위로와 공감은 정치적 의도와 결부되면서 곧 무지한 차별과 무서운 혐오로 변질하였어요. 그 차별과 혐오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고요.

하일호 대표는 언제까지 이 연극을 계속할 것인지 종종 질문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묻기도 하죠.


하일호 대표: 모든 진실이 드러나서 가족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다면 그때쯤 그만둘 수 있을까요? 유가족의 고통이 멈추면 그만둘 수 있을까요? 그들의 고통이 사라질 날이 오기나 할까요? 적어도 유가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남아 있는 한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첫 회를 열고 출발한 매드연극제에게 남겨지는 똑같은 질문과 대답이 아닐까 합니다. 당사자에 대한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당사자를 차별하는 사회적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매드연극제는 계속 이어집니다. 이제 막 매드연극제를 시작했지만, 더 이상 매드연극제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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