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티카 Aug 09. 2021

몸, 음악, 텅 빈 무대로 말을 거는 당사자들

매드연극제 인터뷰 ep.2

글 이철승
사진 이철승




매드연극제의 심사위원 멘탈헬스코리아의 최연우 대표


정신장애 당사자들을 위한, 당사자들에 의한, 당사자들의 무대였던 매드연극제. 3일간 펼쳐진 매드연극제의 개막식이 열리던 첫날, 무대에서 곧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들보다 어색한 움직임이 보입니다. 두 명의 심사자. 매드연극제에 오른 공식참가작들을 심사한 5명 중에 두 분이 위촉장을 받기 위해 앞에 섰습니다. 평소에는 받기보다 수여하는 것이 익숙할 분들이지만 오늘만은 수줍은 학생들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붙이고 차례를 기다립니다.


최연우: 학부에서 연극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연극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죠.


두 명의 수줍은 심사자 중의 한 명인 최연우 대표는 멘탈헬스코리아(Mental Health Korea)의 창립자입니다. 멘탈헬스코리아 소개를 부탁해볼까요?


피어스페셜리스트: 연극도 공부하셨어요? 카이스트도 다니셨잖아요? 사회사업도 공부하고.


최연우: 카이스트는 MBA 대학원을 간 거고, 사회사업은 뉴욕에서 공부했어요.


피어스페셜리스트: 연극은 어떤 점이 좋아요?


최연우: 인간관계를 보여주는데 아주 효과적인 매체 같아요. 그리고 살아있다고 해야 하나? 눈앞에서 펼쳐지니까요.


피어스페셜리스트: 그런데 멘탈헬스코리아 소개부터 해달라고 하셨는데...


최연우: 아참. 


멘탈헬스코리아, 그리고 컨슈머?


최연우: 멘탈헬스코리아는 정신건강컨디션을 가진 사람들의 권익을 보장하고 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전환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하는 서울시 산하 비영리민간단체입니다.

피어스페셜리스트: 이런 말 할 땐 대표님 같아요. 하하.


최연우: 대표 맞는데요?


최연우 씨는 멘탈헬스코리아의 대표가 맞습니다. 그리고 매드연극제의 무대에 올려질 연극 작품을 미리 고르고 평가하는 심사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멘탈. 헬스. 코리아? 다행히 어려운 영어는 없습니다. 번역하자면 ‘정신건강한국’일까요?


최연우: 굳이 영어 표기한 이유는 국내에서 정신건강에 관련된 용어들이 낙인이 찍혀 있거나 편견과 차별이 담겨 있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저희도 적당한 말을 찾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어요. 인식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피어스페셜리스트: 안티카에서 ‘당사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저희는 ‘컨슈머’라고 불러요.


최연우: 네,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하거나 필요하다는 면에서 컨슈머라고 정의하는 거죠. 정신건강서비스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반 소비재를 구매하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해요. 멘탈헬스코리아는 컨슈머에 대한 이미지를 리브랜딩 하고 사람들의 ‘정서적 기후(mental climate)’를 바꾸려 해요. 컨슈머 무브먼트를 일으키는 거죠.


최연우 대표에게서 낯선 경영학 용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배경을 알면 그가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법을 찾아가는 그러한 태도가 전혀 어색한 것만은 아닙니다. 멘탈헬스코리아는 최연우 대표를 비롯해 그의 뜻에 동의한 카이스트 MBA 동문이 주축이 되어 설립했습니다.


최연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면서 용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리브랜딩의 효과가 높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무슨 스페셜리스트요?


피어스페셜리스트: 제가 ‘동료전문가’나 ‘또래전문가’가 아니라 ‘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인 것도 비슷한 이유인 거죠?


최연우: 그렇죠. 피어스페셜리스트는 컨슈머의 경험을 가진 청소년이 주축이 되는데, 또래 청소년들과 자신의 아픔과 회복의 과정을 공유하는 사람이에요. 뉴욕시에서는 2013년부터 면허발급을 시작해서 지금은 1천 명이 넘는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피어스페셜리스트: 혼자서 감내해야만 했던 청소년들이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의지하도록 돕는 거예요.


최연우: 같은 얘기도 어른이 하면 꼰대의 잔소리가 되고, 비경험자가 하면 피상적인 말들을 하기 쉽고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어렵거든요. 그래서 컨슈머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이 피어스페셜리스트 교육을 받고 친구들과 공감하면서 서로 의지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피어스페셜리스트: 발표나 강연도 많이 해요. 교육부에서 주관한 ‘다들어줄개’ 발대식이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심리학술대회에도 참가해서 발표하고, 저 지난 매드프라이드에도 참여해서 발표도 했어요.


최연우: 청소년은 물론 모든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정신적인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잖아요. 컨슈머만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도 매드연극제와 같은 자리가 더 많아야죠.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최연우 대표와 피어스페셜리스트는 첫날 모든 연극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심사자이기에 이미 모두 살펴본 작품들이지만 실제 무대에 올려졌을 때의 모습이 궁금했을까요? 물론 공연장에서 여러 관객들과 함께 하는 감흥도 특별하겠지만요. 네, 그 때문인 것 같아요.

피어스페셜리스트: 공연 잘 보셨어요? 


최연우: 많은 작품이 인간의 본성과 내면을 잘 들어내고 있어요. 그게 바로 연극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고전을 인용해 심오한 표현을 하기도 하고 SNS를 통해 재미있게 비꼬기도 하고요. 육체적인 움직임이나 노래, 그리고 하다못해 텅 빈 공간을 통해서도 풍부한 감정과 인간의 심리를 잘 드러내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가슴이 뛰는 작품도 있었고 트라우마의 순간이 떠올려지는 작품도, 진심이 전해지는 대사가 있는 작품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창작자와 배우들이 많이 고민했다는 것이 느껴져요.


피어스페셜리스트: 우와, 공식 심사평인가봐요?


최연우: 네, 맞아요. 


피어스페셜리스트: 뭔가 열정이 느껴져요. 다시 연극을 해보시는 건 어때요?


최연우: 진심이에요?


피어스페셜리스트: 아뇨.


안티카는 최연우 대표의 연극 무대 진출을 응원합니다. 


매드연극제는 6월 말에 잘 마쳤습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오프라인 무대가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집니다. 온라인 매드연극제는 안티카의 공식 유튜브 채널 ‘춤추는 광기’에서 공개됩니다. 


온라인 매드연극제가 끝난 후에도 매드연극제는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정신장애 당사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생명력은 꽤 끈질기기 때문이죠. 안타깝게도요. 그래서 무대에서 당사자들이 내려오고 온라인에서 스트리밍이 끝난 후에도 당사자들은 외침을 멈추지 않으려고 합니다. 차별과 편견이 지속되는 한은요.



매거진의 이전글 시선이 모이는 무대 위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