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연극제 인터뷰 ep.1
글 이철승
사진 이철승
대학로. 이음센터 5층 이음아트홀. 어두웠던 무대에 조명이 켜집니다. 관객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이 보이고 이윽고 탈을 쓴 여섯 명의 배우들이 무대를 채웁니다. 그리고 ‘매드연극제’의 시작을 알리는 탈춤 한판이 벌어집니다. 탈Good 공연, <곧은목지 이야기>입니다.
슐라(임대륜): 탈을 안 쓰고 춤을 추면 더 재미있어요. 시야가 넓어져서 좋기도 하지만 같이 춤추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수 있거든요. 목이 꺾기고 굳은 몸을 움직이면서도 표정은 한결같이 즐겁기만 해요.
슐라는 탈을 쓰고 무대에 오른 여섯 명의 춤꾼 중 한 명입니다. 동시에 정신장애인 당사자 창작문화예술단 ‘안티카’에서 창작팀을 이끌고 있기도 합니다.
덩그러니: 공연이 끝나서 아쉬워요. 연습하고 공연할 때가 제일 좋은데.
덩그러니 역시 슐라와 함께 탈춤을 추었습니다. 지금까지 무대에 오른 것이 7번째인 덩그러니는 이제 무대 위의 시간을 즐깁니다. 안티카에서 가장 경력이 많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슐라: 덩그러니님과 재규어님도 신진예술인으로 등록하기 위해서 심사 중이에요. 통과되면 공식적으로 배우로 인정받는 거죠.
덩그러니: 슐라님은 이미 받으셨잖아요. 최근에. 이미 신진예술인이면서.
슐라: 그런 게 있다는 걸 제가 제일 먼저 알았으니까요. 하하. 제가 찾아서 덩그러니님과 재규어님에게도 알려드렸어요.
재규어: 연기 힘들어요. 힘들긴 힘들어요. 이번에도 동작도 외워야 했고 몸도 이래야 했고.
재규어가 무대 위에 선 것과 같이 목을 꺾고 등을 굽히고 팔을 틀어 보입니다. <곧은목지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입니다. 힘이 좋은 노비였던 말뚝이는 주인과 함께 생매장될 고비를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목을 다치면서 사지가 굽고 몸이 틀어지는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말뚝이가 앞으로 겪어야 할 더 혹독한 시련의 시작에 불과했지요. 탈Good 팀은 당사자들의 상처 입은 정신을 탈춤에 담아 온몸으로 보여줬습니다.
슐라도 덩그러니도 재규어도 모두 조현병과 같은 정신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고 그들 스스로는 자신을 ‘당사자’라고 부릅니다. ‘매드연극제’ 무대에 서기 위해 안티카의 팀원들이자 당사자인 이들은 4월부터 연습을 해왔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15주 동안 15차례에 걸쳐 만나며 이어온 연습은 6월 말에 ‘매드연극제’에서 결실을 보았습니다.
덩그러니: 15주도 짧았어요. <곧은목지 이야기>도 연습해야 했고, 동시에 <복녕당 아기씨>도 연습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짧기도 했지만,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게 재밌거든요. 그래서 더 짧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곧은목지 이야기> 공연에 올랐던 안티카 창작팀이 한 시간 후에 다시 무대로 돌아와 <복녕당 아기씨> 공연을 펼쳤습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정극입니다.
슐라: <곧은목지 이야기>는 움직임을 기억해야 하고, <복녕당 아기씨>는 말을 기억해야 해요. 제가 맡은 덕혜옹주는 대사도 많아요.
덕혜옹주. 그 이름 기억하시나요? 조선의 마지막 옹주였던 덕혜옹주는 가족들의 불행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일제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했던 탓인지 조현병을 앓았습니다. 이 때문에 오랜 세월 일본의 폐쇄병동에 갇혀 있기도 했습니다. 덕혜옹주는 병동에서 항상 보온병을 안고 다니며 보온병에 담긴 물만 마셨다고 합니다.
안티카 팀은 덕혜옹주가 겪었던 고통의 이야기를 일부 옮겨와 극단 ‘현장’과 함께 <복녕당 아기씨>의 극본을 완성했습니다. 덕혜옹주의 이야기에 팀원들이 겪었던 일화들도 담아서 조현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슐라, 덩그러니, 재규어, 그리고 하정우까지, 안티카의 모든 팀원이 <복녕당 아기씨>의 무대에 올랐습니다. 극장 ‘현장’ 소속의 두 배우도 힘을 보탰습니다. 탈춤도 함께 추었던 그 배우들입니다.
슐라: <복녕당 아기씨>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준비할 때 감정표현 연습을 많이 했어요. 감정을 드러내고, 또 제어하는 것은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매우 중요해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저희는 항상 무대 위에 올려진 삶을 살고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매드연극제’ 첫째 날, 두 차례의 공연은 물론 개막식과 위촉장 전달식까지 진행했던 안티카 팀원들은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이음아트홀과 플랫폼74 두 곳의 공연장을 오가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슐라: 공연 이후 이틀 동안은 매표나 관람객 안내에 집중했죠. 그리고 코로나19 때문에 방역지침도 있으니까 QR코드 등록 도와드리고.
덩그러니: 오시는 분들은 미리 온라인 예매를 하신 분들이에요. 코로나19로 현장 구매가 안 돼서. 그래서 오시면 이름 확인하고 표 드리고 제가 체온 재고 문진표 작성도 안내해드렸죠.
재규어: 그런 건 하나도 안 힘들어요.
덩그러니: 힘들지는 않은데 공연을 더 하고 싶어요. 시간도 늘리고 횟수도 늘리고. ‘매드연극제’ 3일 내내 하고 싶어요.
슐라: 덩그러니님 연기에 제대로 맛 들이셨네요. 저희 그러면 유튜브 콘텐츠는 언제 만들어요. 하하. 안티카 내에서 다른 할 것도 많은데.
‘매드연극제’ 현장에서도, 탈춤과 연극을 연습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최근 강릉으로 출장을 다녀올 때도 안티카 팀원들을 계속 따라다녔던 촬영팀이 있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촬영팀입니다. ‘다큐프라임’은 안티카 팀원들을 일상과 ‘매드연극제’ 준비 활동을 담은 방송을 8월 11일(수) 밤 9시50분, EBS1TV 에서 방영할 예정입니다. 제목은 ‘예술의 쓸모-3부 아티스트’ 입니다.
온 국민 볼 수 있는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무서워 집 밖조차 나가기 두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 거리에서 ‘매드(Mad)’라는 푯말을 들고 행진을 하고, 공연을 올려 비당사자들을 초대하고, 그리고 이제 텔레비전에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슐라: 계속 숨어만 지내기가 너무 답답했어요. 평생을 숨어 살고 싶지도 않았고요. 자기와 조금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차별하는 태도는 잘 모를 때 더 잘 자라는 것 같았어요. 저희가 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더 없잖아요. 그래서 나오고 싶었어요. 우리를 자꾸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우리의 광기로 혐오를 이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