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연극제 서평 ep.4
글 김요르고스
사진 이철승
한 자리에 모여
무대에 오르는 이상한 세상 이야기
본 시리즈는 2021년 6월 24일부터 6월 26일까지 대학로에서 열린 오프라인 매드연극제의 10편의 연극 공연의 정보와 감상을 전합니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2021년 8월 13일부터 8월 15일 온라인 무대에 오르는 아름답지만 이상한 세상 이야기를 제 1회 온라인 매드연극제에서 만나주세요.
2021년 8월 14일 16:50
연극은 영화나 드라마같은 영상콘텐츠나 소설보다 표현의 반경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연극에서는 클로즈업이나 롱테이크, 롱쇼트 같은 기본적인 영상 촬영 기법이나 각종 특수효과와 유사한 형태의 기술적 효과를
기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연극은 장소나 인원, 자본 같은 물리적 조건에 따라
서사 및 스토리텔링의 폭이 제약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국내의 많은 극단 및 배우들이 열악한 조건에 놓여있어 공연 및 창작 활동에 있어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AI 기술이 영상콘텐츠에 다양한 방식으로 접목되는
현대 문화에서 연극이 대중화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AI의 시대에도 연극이 대중문화콘텐츠로서 지니는 메리트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연극의 서사와 스토리텔링은 각종 인위적인 특수효과로 덧칠될 수 없기에 무대 위에 선 배우들의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역량과 개성이 표출될 수 있지요.
또한 연극에서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소통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연극에 있어 관객들은 단순한 관찰자 내지 제3자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실시간으로 극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지요. 관객들로부터 터져나올 수 있는 호응이나 웃음소리, 작은 소음, 그리고 마지막에 배우들에게 보내는 박수갈채. 이러한 것들은 극 자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입니다.
극단 '하이눈'의 연극 <쿵!>은 최소한의 물리적 재료만으로도 스토리텔링과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쿵!'이라는 제목은 극중에서 주인공 '혜인'이 주기적으로 겪는 환청을 암시합니다. 어쩌면 무겁고도 불편할 수 있는 소재지만 배우들과 스텝들은 이를 발랄하게 풀어냅니다.
본 연극은 소품과 조명이 상당히 간소하고 간결한 편입니다. 특히 극중에서 블라인드를 친 현관문의 활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이 문은 주인공의 집과 바깥 세상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역할을 하는데, 극의 흐름에 따라 배우들이 문의 배치를 바꾸곤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배우들이 직접 문을 옮길 때 암전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찌보면 허술한 연출로 비춰질 수 있지만, 저는 이것이 앞서 언급한 연극의 고전적인 특성을 살린 신선한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에서 이 문은 혜인과 외부 세계를 단절시키는 장치이지만 동시에 혜인과 혜인에게 호감과 호기심을 가진 배달부 '정훈'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평상시에 문은 굳게 닫혀있고 블라인드가 쳐져 있지만 혜인과 정훈은 만남과 소통 가운데 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서로가 만나고 함께 세상과 마주하게 되지요.
저는 무엇보다도 밝고 발랄한 분위기 안에 유효한 주제 의식과 메시지를 담아낸 점이 좋았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계속 시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실험적인 것도 좋고, 진지하고 비장한 자세도 좋지만,
가볍게 웃어넘기는 자세도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하니까요.
물리적인 제약 속에서도 풍부한 은유와 발랄한 서사를 만들어낸 배우 분들과 스텝진 분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