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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티카 Aug 12. 2021

어두운 마음을 잊게 한, 당사자들의 마음의 이야기

매드연극제 인터뷰 ep.4

글 이철승
사진 이철승





청주정신건강센터 이보늬 선생님과 김용성 당사자


정신장애 당사자들을 위한 비영리단체인 안티카에서 마련한 ‘매드연극제’. 그 둘째 날의 첫 커튼이 올라가면 작은 아이가 무대에 서서 조금은 긴장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넵니다. 


아이: 청주정신건강센터의 당사자들이 준비한 무대입니다. <나의 동화 – 마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봐주세요.



모두를 즐겁게 한 연극 


이보늬 선생님: 제 조카예요. 하하. 조카가 저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연극을 리허설만 2번을 보고, 청주에서 먼저 가졌던 정식 무대도 봤어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어하더라고요. 당사자들의 연극을 보면서 당사자들의 순수함이 아이에게 통한 것 같아요. 원래 좀 수줍음이 많은 아이인데 자기도 무대에 한 번 서보고 싶다고 해서 처음 시작할 때 관객에게 전하는 인사말을 하라고 했어요. 


이보늬 선생님은 5주 동안 왕복 5시간을 달려 청주를 여러 차례 다녀왔습니다. ‘매드연극제’ 워크숍에 참여하게 된 청주정신건강센터의 당사자들을 지도하기 위해서였죠. ‘매드연극제’ 무대에 올라갈 <나의 동화 – 마음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청주정신건강센터의 당사자들입니다.


이보늬 선생님: 당사자들을 상대로 수업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저는 원래 연극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청소년쉼터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를 하고 있어요. 청주로 출발하기 전 운전대를 잡으면 2시간 반을 달릴 생각에 몸이 조금 주춤거릴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2시간 반은 늘 뿌듯한 마음만 가득했어요.


<나의 동화 – 마음의 이야기>을 준비하면서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든 것은 선생님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사자(김용성): 내가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마음속에 있던 얘기들을 색으로도 표현하고 무대에 서서 말하면 속이 시원해요.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요.


연극을 즐겼던 당사자들의 모습은 선생님의 눈에도 확연히 보였습니다.


이보늬 선생님: 교육연극 수업을 시작하면 당사자들은 제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요. 제가 상대했던 그 어떤 그룹보다도요. 부끄러움이 없어서 빼지도 않고 모든 과정을 정말 진심으로 즐겨요.



상상 속으로 떠나는 여행


연극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10명의 당사자는 각자가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 상상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이야기는 유사성에 따라 다시 3개의 이야기로 모여졌고, 3개의 이야기를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나의 동화 – 마음의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이보늬 선생님: 대사가 적지 않아요. 당사자 모두가 대사를 다 외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낭독극 형태로 했죠. 그런데 많은 대사도 충분히 외울 수 있는 당사자도 있으니까 일부는 앞에 나와서 연기를 하는, 전체적으로 입체낭독극 형태가 되었어요. 


당사자(김용성): 제가 상상한 여행은 설산에 있는 오두막에 가는 거였어요. 그 오두막에 가면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사라지고 행복해지거든요. 


이보늬 선생님은 평소에 교육연극을 통해 청소년들이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말을 무대를 빌려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청소년들은 다쳤던 마음을 치유하기도 합니다. 교육연극은 당사자들을 대상으로도 유사한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보늬 선생님: 평소에 환청이 들린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감시자’가 나타나서 지켜보거나 말을 걸기도 하고. 그런데 연기를 할 때는 환청이 들리지 않고 그 ‘감시자’도 나타나지 않는데요. 


당사자(김용성): 상상 속 이야기이지만 막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도 감정이입이 되거든요. 이야기 속 사람이 되는 거예요. 현실의 제가 아니라. 저는 어느새 설산의 오두막 안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당사자의 무대를 본 가족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여행을 다녀옵니다. 가족조차 알 수 없었던, 볼 수 없었던 당사자의 마음과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여행입니다. 우리가 낯선 장소로 여행을 떠나서 새로운 경험 사이에서 익숙한 경험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가족들도 나의 자녀를, 나의 형제자매를 다시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무대 위에 선 당사자들의 모습이 평소에 알고 있던 당사자의 모습과도 확연히 다릅니다.



블루를 덮은 녹색


이보늬 선생님: 저희가 ‘마음 나누기’라는 미술치료 과정을 했어요. 처음에 계속 파란색과 검은색만 쓰는 당사자가 있어서 그 이유를 물으니까 우울한 마음을 표현하는 거래요. 


파블로 피카소가 가장 우울했던 시기에 그렸던 그림들을 압도하는 색상이 파란색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일까요?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도 아팠던 마음을 검은색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이보늬 선생님: 그런데 그 당사자가 무대에 오르는 티셔츠를 고르면서 녹색을 고른 거예요. 이번에는 왜 녹색을 골랐는지 물었더니 연극을 할 때는 행복하니까, 이제 내 마음은 녹색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이보늬 선생님은 5주라는 절대로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기간 동안 수업을 이어가며 당사자들만큼 큰 변화와 성과를 보여준 사람들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보늬 선생님: 당사자들은 꾸밈이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표정이나 말에서 감정이 바로 드러나거든요. 그런데 교육연극과 미술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나아지는 모습이 눈에 띄게 보이니까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너무 보람이 되는 거예요. 제가 왜 예술교육을 해야 하는지, 그 가치와 의미를 다시 되새겼던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마음의 거리를 좁혔던 무대


당사자들이 연극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오르며 변화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보늬 선생님은 이제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보늬 선생님: 당사자분들이 미술치료를 하며 찾았던 밝은 색깔과 연극무대에 서서 보여주던 밝은 마음을 앞으로도 꼭 지켜갔으면 좋겠어요. 무대에 서서 느꼈던 자유롭고 즐거웠던 감정을 잘 기억해서 다시 ‘감시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마음을 감싸주세요. 


청주정신건강센터의 당사자들이 연극을 준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센터는 ‘매드연극제’ 워크숍에 참여하며 얻은 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당사자(김용성): 이제는 무대에 올라도 긴장이 안 돼요. 연극 또 하고 싶어요.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보늬 선생님: 솔직히 5시간을 오가는 건 여전히 힘들어요. 하하. 그래도 청주정신건강센터에서 다시 불러준다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사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안티카에서 다시 만들어 준다면 어디든 갈게요. 어떻게든 당사자들을 위한 무대를 계속 만들어 주세요. ‘매드연극제’도 계속 이어가 주세요. 꼭이요.


<나의 동화 – 마음의 이야기>는 이렇게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날의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사자들은 무대 위에 섰던 즐거움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보늬 선생님은 당사자와 함께했던 보람된 시간을 평생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당사자와 함께 색다른 여행을 떠났던 가족, 그리고 관객들도 당사자에 대한 마음을 새롭게 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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