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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의미 Jun 14. 2024

등급으로 매겨지는 사람들

나는 VIP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가끔 주거래 은행에서 '최고 등급이 OO인데 고객님의 등급은 OO입니다' 하는 문자가 온다. 이런 문자를 일방적으로 받을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아마 대출을 받아서 썼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이 세상 어느 은행도 돈을 적게 썼다고 고객을 칭찬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은행이란 허구한 날 단기대출과 리볼빙을 추천하는 그런 인식이다. 빚도 없고 카드도 안 쓰는 어떤 회장님은 아마 나보다 고객등급이 낮을 것이다.


항상 물건을 파는 쪽에서 고객의 등급을 정한다. 인격이나 말투나 사회지위나 그런 것은 상관이 없다. 오로지 고객의 매상이 그 고객을 대변한다. 고객은 데이터에 불과하다. 고객이 물건에 대한 값을 지불하고 뒤로 돌아서면 곧바로 고객의 등에 렛텔을 붙이려고 든다. 명품샵에서는 구매금액에 따라 소위 'VIP'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진실로 경제적인 수준과 인격으로 VIP가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앞에서는 떵떵거리고 명품들을 사모으지만 뒤에서는 카드값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은행에서까지 이런 식의 등급으로 매겨져야 한다. 언제부터 은행이 명품샵이 되어버린 것인지. 이놈의 휴대폰이 문제다. 휴대폰을 쓰면 내 개인정보는 물에 젖은 휴지쪼가리보다 너덜너덜해진다. 동의를 안 하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걸 두고 협박이라고 하지 '동의를 구한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선택' 동의나 '필수'동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휴대폰을 들고 있으면 나를 평가하려는 문자들만 날아온다. 사람도, 기업도 은행도, 하다못해 2,000원짜리 커피를 사 마시는 카페에서도 나의 등급이 어떻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평가하려고 난리들이니 어찌 조용히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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