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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린 변호사 Feb 01. 2024

AI와 재판

AI가 재판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그 일을 목격한 건 내 습관 때문이었다. 난 늘 재판 10분 전 도착해 방청석에서 앞 재판을 보며 판사의 재판 스타일을 파악하는 습관이 있다. 꼼꼼하고 날카로운 판사는 법정에서 변호사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데 그런 예리한 질문에 진땀을 빼지 않으려면 미리 스타일을 알아두어야 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재판 시작 10분 전 도착했다. 출입문 앞에서 법정 호수를 확인하고 전자 게시판에 내 사건 번호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법정 안에서 부스럭 대는 소음을 내는 건 예의가 아니라 코트도 미리 벗고 들어갔다. 조심스레 방청석에 앉았다. 앞 사건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원고 측은 변호사가 왔고 피고는 당사자가 직접 출석한 듯 보였다. 피고 당사자들은 모자 관계였다. 노모를 모시고 온 50대 후반의 남자는 억울하다고 했다. 판사는 피고의 돈 받을 권리가 기간이 많이 지나 주장할 수 없을 거란 원고 주장이 일리 있다고 했다. 그러니 피고가 원고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려면 그동안 원고에게 돈을 갚으라고 했다는 권리 행사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법이 보호하지 않습니다. 피고가 권리 행사를 했다는 입증 자료가 더 있을까요?"


 피고는 없다고 했다. 더 낼 자료도 없고 잊고 살아서 돈을 갚으라고 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판사는 그럼 재판을 종결하겠다고 선언했다. 피고는 판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원고가 자기에게 사과하면 재판을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말했다. 판사는 원고 변호사에게 어떠냐고 물었지만 원고 변호사는 그럴 의사가 없으니 판결문으로 결과를 받겠다고 했다. 피고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판사는 알았다며 다만 뒤에 사건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드릴 수는 없다고 당부했다.


 내 사건은 11시 40분이었다. 시간은 어느덧 11시 50분을 넘겼다. 남자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판사가 날 봐주길 바라며 소매를 걷어 시계를 보는 행동을 했다. 대부분 억울하단 내용이었다. 원고가 낸 서면이 거짓말로 가득 차있어 화가 나 못 참겠다는 거였다. 나는 잠깐 일어나 밖으로 나가 출입문의 전자게시판을 확인했다. 재판정 호수도 다시 확인했다. 사건이 밀리고 있었다. 앞 사건이 지연돼 정해진 시간에 재판이 시작하지 못하면 '사건이 밀린다'라는 말을 쓴다. 다시 방청석에 앉았을 때 판사는 남자의 말을 잘랐다.


 "시간을 많이 드릴 수가 없어요, 뒤에 여섯 건이 밀려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을 제가 다 기억할 수도 없으니 서면으로 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남자는 분노했다. 내 말을 다 들어주지 않을 거면 재판은 뭐 하려 하냐며. AI가 하는 게 더 낫겠다고, 그런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판사는 억지로 미소 지었다. 그는 끝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법정 경위에게 제지당하며 쫓겨났다.


 AI 판사가 낫겠다니...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그대로 날아와 귀에 꽂혔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판사는 고개 숙인 채 다음 사건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교롭게 그다음이 내 사건이라 사건 번호를 듣고 앞으로 나갔다. 자리에서 목례하자 판사는 말했다.


 "변호사님,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그는 술자리 안주로 오늘 일을 떠벌릴 것이다. 내가 판사에게 소리 질렀다며, 역시 AI가 재판하는 날이 빨리 와야 한다고. 확신하건대 AI 판사였다면 그의 재판은 더 빨리 끝났다.


 판사는 원고의 주요 주장을 요약해 법률 용어가 아닌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말들로 피고에게 알려줬다. 피고의 권리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민법상 권리행사의 예시까지 말해주며 이러한 법률 행위를 한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피고는 없다고 했고 사과하면 없던 일로 하고 싶다고 하자 판사는 원고 변호사에게 조정을 하는 게 어떻냐고 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바란대로 AI였다면, 법에 쓰여있는 대로만 재판을 진행하는 시스템이라면 AI는 피고에게 원고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 알기 쉽게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 피고가 원고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권리 행사에 어떤 게 있는지도 당연히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AI는 원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대해 피고가 민법상 소멸시효중단 사유에 해당하는 법률행위 증거를 제출할 수 있는지 여부만 확인하면 된다. 앞 문장에서 나온 법률 용어를 줄줄이 쓰며 말해도 상관없다.


 그는 더 낼 자료가 없다고 했으니 더 들을 필요 없다. 곧바로 선고기일을 잡고 기일 이후 판결문을 보내주면 그만인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항소하라는 내용의 친절한 안내문과 함께. 그러니 피고의 권리가 사라진 시점에 판사가 피고의 사과 요구에 원고 측에게 제의한 조정 제의는 AI에겐 없는 선택지다. 당사자의 감정적 항의는 쟁점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채 법정에 들어선 그에게 판사가 짧은 시간 얼마나 많은 배려를 했는지 알게 된다면 그는 자신이 뱉은 말이 부끄러울까. 그럴 수 있을까.  

 그가 무례를 저지른 것, 무지한 사람인 건 쉽게 알 수 있지만 판사가 이 일에 모욕감을 느꼈을지는 모르겠다. 이번이 첫 'AI 소동'이 아닐지도 모른다. GhatGPT를 직접 사용해 보니 AI가 판사가 돼 재판을 대체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유는 AI는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아직까진 그렇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감정을 학습하도록 설계하길 원하고 설계자들도 그런 수요에 맞춰 기술을 업그레이드한다면? 그럼 인공지능도 감정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두려운 건 그다음이다. AI를 주제로 한 모든 영화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면서부터 인간에게 위험요소가 된다. 비슷하지 않을까.


 소송은 본질적으로 사람 간 극적인 감정 갈등을 논리적으로 포장한 절차이다. 감정을 배제한 이성과 논리로 구성된 다툼인 듯 보이지만 그 본질은 철저히 감정적이다. 사람들이 소송을 하며 법조인들에게 감정적인 면을 이해받길 원하는 것도 그 이유다. 자신의 말을 다 들어주지 않는다며 투정하던 그처럼. 그러니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까지 학습하지 않는다면 AI 판사, 검사, 변호사가 사람들에게 만족할 만한 대체가 되긴 어려울 거라 아직은 믿고 싶다.


 글을 마치며 ChatGPT와 나눴던 흥미로운 대화를 남긴다. 대화 주제를 의도적으로 바꾸려 하는 인공지능의 노력이 재밌고 소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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