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럽다고 해야 하나, 나이 대에 맞는 상황이라고 바라보아야 하나, 혼란스럽다.
요즘 들어 부쩍, 고난의 버튼을 누르는 일이 빈번해졌다. 둘째 라미 덕분이다.
어떤 날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방언 수준의 말을 퍼 붙는다 하면, 또 어떤 날은 어른인 내가 봐도 또박 또박 논리 정연하게 말을 한다. 그런 날은 정말 흠칫 놀라기도 한다.
‘누굴 닮아서 이런 거야? … 누가 알려준 건가?’
어느 때와 마찬가지, 태권도의 스케줄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여니와 라미. 저녁을 먹기 위해 씻으라고 전달한다. 첫째인 여니부터 항상 씻기에, 라미는 거실 소파 한편에 잔뜩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여니가 다 씻고 나오면 라미에게
“라미야 누나 씻고 나왔으니 얼른 씻자~”
메아리 없는 아빠 혼자만의 외침이다. 한국인은 삼세 번이라 했던가. 정확히 세 번의 전달을 통해 무거웠던 라미의 엉덩이가 들썩 거리며 천천히 옷을 벗는다. 모습을 다 보고 있는데도 메아리 없는 라미의 목소리가 분노의 버튼을 누른다.
“왜 대답 안 해?!”
“아부지가 씻으라고 해서 옷 벗고 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답하지 않은 모습에 분노의 버튼이 눌려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마치 유능한 래퍼처럼 속사포 같은 잔소리가 터져 나온다.
“씻으라고 했으면 대답을 하고 움직여야지! 아빠가 식사 준비하고 있는데 몰랐잖아! 너희들 씻는 시간 맞춰서 다 준비하고 있는데, 라미는 빠방만 갖고 놀고 있고, 대답을 해야 알 수 있지 아빠가!”
“그래서 옷 벗고 있잖아요”
“아빠가 정확히 세 번 말했잖아! 세 번 말할 동안 대답도 안 하고!”
“세 번 말했는지 몰랐어요. 그래도 씻으려고 옷 벗고 있어요”
틀린 말은 아니다. 초유의 집중력을 발휘해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노라면 아빠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나를 다독이며 이해하려 하지만, 용납할 수 없는 아빠의 마음이란.
정말, 한 가지 상황만 설명했지만, 정말 많은 상황에 따라 라미의 말 주변의 성장이 무섭기도 하다.
군 생활을 좀 해서 그런가. 복명복창에 대한 습관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상황에 따라 적절히 적용하며 지내야 하는 것이 자명하지만, 유독, 아이들에게도 강요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미운 7살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13년 뒤의 군대에 갈 라미를 걱정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7살 그 자체의 라미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머리로는, 가슴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한 육아에 대한 고뇌가 깊어지는 밤이다.
‘세상, 모든 7살 자녀를 둔 부모님들. 정말 대단하고 훌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