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63일 침대맡 미술관> 리뷰
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13세기에서 19세기 중반까지의 회화이므로 틀림없이 '읽기' 위해 그려진 작품이 많다. (5쪽, 서문)
이 책은 "보는 것이 아닌 읽고 이해하는 미술"을 강조하고 있다. 왜일까?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들은 13-19세기 중반의 회화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개인적인 심상을 담아내는 단계 이전의 미술은 더욱, 역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며 읽어야 한다.
이 시기 미술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장르의 히에라르키hierarchy'다. 그림 주제에 위계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성서나 신화를 주제로 한 역사화는 최상위 예술로 대우받았지만, 인물화나 풍속화, 풍경화나 정물화는 보다 하위의 장르였다. 이 맥락에서 그림을 보아야 그 가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위계는 점점 무너진다. 역사의 흐름과 미술의 주제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책에서는 루브르미술관 속 그림을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플랑드르-네덜란드 회화로 카테고리를 구분하여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설명한다. 유럽은 긴밀히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도, 국가에 따라 조금 다른 이야기가 있다. 아래 리뷰는 각 나라의 미술사적 특징을 요약하며 썼다.
0. 루브르 미술관의 태동
루브르 미술관은 12세기 말, 파리를 지키는 요새로서 탄생했다. 센강의 서쪽 하류 출입구에 외적으로부터 방어를 위해 건축된 요새가 루브르다. 이후 14세기 샤를 5세에 의해 후기 고딕 양식으로 모습을 갖추었다. 백년전쟁 이후 프랑수아 1세에 의해 루브르성을 정식 왕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프랑수아 1세는 현재 루브르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 수집의 토대를 구축하여, 프랑스의 문화 수준을 높인 주역이기도 하다.
이후 루이 14세에 왕궁은 베르사유로 이전되었고, 프랑스 회화가 크게 발달했던 17세기를 지나 계몽주의를 맞은 18세기, 루이 15세에 대중의 목소리에 따라 왕실에서 소장한 미술품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수차례 증축과 개축을 마친 루브르미술관은 19세기에 들어서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 이탈리아 회화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서유럽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교 미술이 성행한다. 본래 그림도 우상으로 간주되었지만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가르침의 도구로서 '눈으로 보는 성서'인 그림은 허용되었다. 이게 바로 이콘이다. 비잔틴 미술을 특징짓는 이콘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었지만, 이것 마저도 8-9세기에 일어난 성상 논쟁으로 파괴되기도 했다.
11세기 무역으로 인한 도시경제의 발달은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기를 데려오며,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간 중심의 시선이 꽃을 피웠다.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산드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등 예술가를 통해 부흥을 맞는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는 3대 예술 도시라 볼 수 있는데 각 도시에서 부흥한 화풍을 중심으로 그림을 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17세기 로마의 바로크 미술은 라파엘로를 시조로 고전파와 혁신파로 나뉘었다. 혁신파의 중심 인물이 카라바조였는데, 그의 영향은 대단해서 추종자들이 생길 정도였다. 대표적인 예로 루벤스가 있다. 하지만 니콜라 푸생처럼 카라바조의 양식에 반대하는 화가도 있었다.
(카라바조, 성모의 죽음, 1605-1606년)
2. 프랑스 회화
프랑스는 17세기가 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회화의 시대를 확립했다. 당시 로마의 바로크 미술이 유럽을 석권하고 있었지만 프랑스는 독자적인 고전주의를 확립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집권한 절대왕정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로마에서 활동한 니콜라 푸생이 주창한 지성과 이성에 호소하는 화풍은 프랑스 미술의 규범이 되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서 장 앙투안 바토를 선두로 여성적인 문화, 로코코 회화가 나타났다. 이는 프랑스의 고전주의와 대립되는 양식이었다. 푸생파와 대립하는 루벤스파도 등장하였다. 앞서 푸생은 카라바조 양식에 의의를 제기한 반면 루벤스는 그 양식을 연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 대립은 예견된 일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신고전주의 시대를 맞이하며 이성 중심으로 바뀌는 듯 하다가, 19세기 낭만파의 등장으로 다시 감성을 중시하는 움직임이 생긴다. 이처럼 프랑스 회화는 이성과 감성 사이를 오가며 발전해나갔다. 이 양상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이후 등장하는 사실주의, 인상파 등 예술운동의 전조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파리는 세계 미술의 중심지가 된다.
(니콜라 푸생, 아르카디아의 목자들, 1638-1640년)
3. 스페인 회화
스페인 회화의 황금기도 17세기였다. 대표적인 화가로 벨라스케스, 수르바란, 무리요 등이 있다. 특히 벨라스케스는 로마의 루벤스와 친구처럼 지내며 그에게서 바로크 회화를 배워 양식을 더욱 발전시켰다. 당시 스페인은 매우 엄격한 가톨릭 사회였기에 누드화를 그리는 건 금지였다. 벨라스케스는 이 제약을 큐피드처럼 신화화로 극복했다. 이후 루이 14세의 앙주 공작 필립이 펠리페 5세로 즉위 후 스페인의 궁정과 예술 문화는 프랑스처럼 변해갔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르가리타 공주, 1653년)
4. 플랑드르 회화
플랑드르는 지금 벨기에 전역을 가리킨다. 15-16세기 경제가 발전하며 플랑드르 지방의 예술과 문화도 발전했다. 대표 화가로 얀 반 에이크,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있다. 특히 루벤스는 화가로 활동하는 초기를 이탈리아에서 보내며 최신 예술을 배운 다음 플랑드르에서 궁정화가가 되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 리옹에서의 왕과 마리 드 메디치의 만남, 1622-1625)
5. 네덜란드 회화
네덜란드의 미술은 17세기 황금기를 맞았다. 대표적인 예로 렘브란트가 있으며 그는 사회적 계급이 높은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성서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반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처럼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도 등장했다. 하지만 17세기 말 영국과 네덜란드의 전쟁으로 네덜란드 회화의 봄은 끝난다.
(렘브란트 판 레인, 목욕하는 밧세바, 1654년)
여행은 고사하고 전시든 공연이든 문화생활의 길이 막힌 요즘, 이 책으로 루브르의 그림을 '누워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조금 위로가 된다. 언젠가 루브르에 가고 싶다. 원화 앞에 서서, 이 책에서 본 내용들을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 다른 감상 1
이 책의 핵심은 미술을 역사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림을 보며 역사를 떠나 그림만으로 감상하게 되는 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림에 담긴 의미와 상관 없이, 사실적인 형태와 가깝게 그려진 인물들이 어딘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의미와 담론이 더 중요한(것 같은) 현대 미술에서는 느끼기 힘든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사람의 신화화든, 신의 인간화든 사람이라는 형태와 움직임, 양감이 주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아무리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 다른 감상 2
책을 보며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혹은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가? 누군가 묻는다면 언젠가 하겠다고 정해놓은 대답에 더 확신을 얻게 되었다. 바로, "그대로 그리는 그림."이다. 다른 말로는, 그대로 그려보려고 노력한 그림.
보는 것을 똑같이 그린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다. 어떤 형상을 2차원 평면에 표현하기로 마음먹은 때부터 한계는 전제된 것이다. 이건 한계이자 목표를 막는 제약이기도 하지만 그림에서는 다른 가능성이기도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스케치를 가다듬고 빛과 그림자를 만들거나 색을 입히는 과정은 '그대로 그린다'는 목표를 벗어나며 계속 실패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형상에서 어떤 기준으로 얼만큼 벗어났는지에 따라 아름다움의 성격이 결정될 수도 있다. 개성이다. 혹은 그 목표에 가닿을려고 애쓴 만큼 그림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고민의 결과가 그림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 목표가 없다면, 아무것도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책 소개>
프랑스 파리에는 손꼽히는 3대 미술관이 있다. 루브르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중 가장 유명한 루브르 미술관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루브르에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제작된 약 6천여 점 이상의 미술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루브르의 작품을 우리가 모두 알 필요도, 알 수도 없다. 그래서 고심한 끝에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플랑드르 지역의 회화 중 시대별, 지역별로 꼭 알아야 할 대표작 63작품을 엄선해보았다.
이 작품들만 안다면, 그림이라고는 <모나리자>밖에 모르는 미술 초보자도 어디서 '꿇리지 않게' 교양을 뽐낼 수 있다. 심지어 루브르까지 직접 가지 않고 편하게 누워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한눈에 보기 쉽게 왼쪽에는 그림,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림에 대한 핵심 설명을 담은 구성으로 되어 있어, 순서대로 보지 않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그림부터 보아도 무방하다.
이 책을 침대 맡에 놓고 잠들기 전 하루 한 페이지씩 본다면, 63일 후 여러분의 교양은 한층 더 성장해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프랑스는 의외로 17세기가 돼서야 회화가 발달했다?
큐피드와 아기 천사는 이걸로 구분한다?
명화 속 숨겨진 의미를 알면
유럽의 역사, 종교, 문화가 보인다
서양미술사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미술 작품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 유럽의 역사를 아는 일이며, 그 다양성을 접하는 일이고, 그리스도교가 서양 문명에 끼친 영향을 아는 일이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서양 미술 작품 중 최고의 작품들만 모인 루브르는 유럽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교재다.
루브르 미술관의 소장 작품은 기본적으로 13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회화다. 서양 회화는 종교화에서 발전했는데, 특히 19세기 이전에는 역사화를 정점으로 한 장르의 계층화가 뚜렷했기 때문에 회화는 주로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신화의 에피소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회화들에는 각 시대와 그 지역의 사회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어, 이를 읽고 이해하는 지식은 서구 사회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합스부르크가가 통치했던 시대에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였던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궁정화가로 활약했는데, 그가 그린 펠리페 4세를 비롯한 왕족의 초상화는 이웃 국가인 프랑스 왕가의 초상화보다 모두 단순하고 수수해 보인다. 이는 유럽에서 첫째가는 명가인 합스부르크가에 화려한 연출은 필요 없다는 사고관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세기가 되어 베르사유 궁전에서 자라난 루이 14세의 손자가 스페인 왕으로 즉위해 펠리페 5세가 되자, 스페인 왕가의 초상화도 단번에 프랑스처럼 화려해졌다.
종교화의 경우 17세기 들어 성모마리아와 성인이 빈번하게 그려졌는데, 여기에는 1517년 이후 종교개혁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성서만을 절대적인 권위로 삼아온 프로테스탄트가 성상 숭배에 비판을 가하자, 가톨릭교회는 이에 맞서 종교미술을 통해 성서의 언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양하려는 전략을 내세웠던 것이다.
한편 18세기가 되자 회화의 색채는 17세기의 중후함이 누그러지며 경쾌해졌다. 왕후, 귀족 사회도 여성화되어 남성도 화장을 했으며, 그때까지는 여성적인 색조로 취급되던 파스텔 톤이나 장밋빛 의상을 즐겨 입었다. 프랑스에서도 이성에 호소하는 데생을 중시한 묘사보다 가볍고 산뜻한 색채가 특징인 로코코 회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상적인 여성상도 변화해서 17세기 루벤스가 그린 통통한 여성과 비교할 때 전체적으로 인물이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바뀌었다. 이는 18세기에 음식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 밖에도 네덜란드의 풍속화에서는 다양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한 예로 네덜란드의 풍속화 중에는 '음주'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네덜란드인들 중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 경계심을 주기 위해 그린 것이다. 그 외에 시민을 위한 훈계로써 남녀의 미묘한 심리나 도박을 그린 작품도 많다. 이처럼 명화 속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면, 당시의 역사와 종교, 문화를 파악할 수 있다.
미술이라고 하면 흔히 우아하고 고상한 사람들만 즐기는 취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주말에 가볍게 미술관에 들러 해설을 즐기고,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지 않았어도 기초 교양으로 배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렇게 미술관까지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도 얼마든지 편하게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어려운 회화 용어를 모르더라도 그림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느끼기만 해도 그걸로 충분하다. 저자 기무라 다이지는 이 책에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서양미술사'라는 콘셉트로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꼭 알아야 하는 작품들을 엄선해 서양 미술에 한 발자국 다가서는 법을 쉽고 재미있게 제시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요즘, 이른바 '집콕 시대'를 맞이해 집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침대맡에 이 책을 두고 하루에 한 페이지씩 명화를 감상해보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어느새 루브르가 자랑하는 보물들이 독자들을 향해 속삭이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63일 침대맡 미술관
- 루브르 눕눕 미술관 -
지은이 : 기무라 다이지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분야
미술일반/교양
규격
140*200 / 양장
쪽 수 : 204쪽
발행일
2021년 01월 28일
정가 : 16,000원
ISBN
978-89-475-4686-7 (03600)
저자 소개
기무라 다이지(木村泰司)
서양미술사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런던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예술품(Works of Art) 과정을 수료했다. 일본에서 예술, 역사, 종교, 철학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을 기반으로 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왕성하게 했으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서양미술사'를 목표로 일반 대중에게 서양 미술에 다가서는 법을 쉽고 재미있게 제시했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미술사》, 《처음 읽는 서양미술사》, 《미녀들의 초상화가 들려주는 욕망의 세계사》가 있으며 그밖에 《명화 읽는 법(名画の読み方)》, 《인상파라는 혁명(印象派という革命)》, 《명화는 거짓말을 한다(名画は嘘をつく1∼3)》 등이 있다.
이 리뷰는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의 문화초대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