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빅 하이파이브> 지한나 작가
이 인터뷰는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제 막 <빅 하이파이브>를 발간하며 그림책 작가가 된 지한나입니다.
첫 그림책, <빅 하이파이브>는 어떤 작품인가요?
'하이파이브'는 기쁜 순간을 공유하거나 서로 응원하기 위해 두 손바닥을 마주치는 행위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응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책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사실 모든 캐릭터는 저예요.
작가님만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건가요?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어렸을 때 크고 작은 실수로 인해 수치심을 느끼거나 위축되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움츠러들었던 그때, 저는 저를 응원하지 못했거든요.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아쉬워요. 그래서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어떤 힘든 상황을 극복할 힘은 이미 내면에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한 이야기지만, 그림책 자체는 독자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다양한 캐릭터로 표현했습니다.
하이파이브로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하이파이브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는 드로잉이었어요. 작년에 도서관에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들으며 커다란 손을 반복해서 그렸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손의 주름과 형태에 한동안 빠져있었어요. 손을 그리는 게 자신 있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면 이 커다란 손을 소재로 그림책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먼저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만들었군요.
네 맞아요. 처음엔 구체적인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은 상태로 드로잉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예전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어요. 언젠가 한 친구가 저에게 뜬금없이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해서 별 생각 없이 했거든요. 서로 손바닥을 딱! 마주쳐서.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인상 깊었어요. 손바닥에 진동이 손에 꽤 오래 남아있더라고요. 살짝 얼얼하고, 생소한 감각이었어요. 우리가 살면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순간이 흔하지 않잖아요?
그렇죠. 저는 아까부터 떠올리려고 노력했는데, 하이파이브를 했던 기억이 전혀 안 나요. 살면서 한 번은 했겠지만, 아무튼 흔한 체험은 아닌 것 같아요.
맞아요. 단단하고 강하고 거칠고. 실제적인 느낌이 드는 응원이죠.
그냥 하이파이브가 아니라 ‘빅’ 하이파이브예요. 의미를 알 것도 같은데요, 한 번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하이파이브는 '아주 작은 협업의 한 단위'라고 생각했어요. 짝! 소리 한 번으로 끝나는 찰나의 행동이지만, 이 조그마한 협업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나의 내면을 지탱해주는 커다란 무엇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습니다. 제가 지면에 가득 차는 아주 큰 손을 그리기도 했고요.
작가님 말씀을 들으니까 생각나는데, 그림책에 하이파이브가 여러 번 나오잖아요. 그런데 여러 에피소드를 단순히 나열하신 것 같진 않더라고요. 그림책 전체 흐름이, 마치 몇 번의 하이파이브로 축적된 에너지를 모아 마지막 장면에 팡! 터뜨리기 위해 달려가는 음악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읽은 게 맞나요? 혹시 마지막 손을 굳은살이 배기고 상처 입은 모습으로 그린 건 의도가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흐름을 정말 잘 파악해 주셨어요. 마지막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앞에 등장했던 친구들은 일으켜주길 원하지만 야구를 한 이 친구는 끝까지 가보자고 말하는 응원하는 역할이거든요.
처음 더미북을 만들었을 땐 티 없이 맑은 손을 그렸는데 출판사와 장면 회의를 하면서, 앞에 등장한 손과 그림의 결이 좀 맞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로 힌트를 얻었어요. 야구를 해 온 친구니까 손에 상처도 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책 말미의 네 장면을 싹 고쳤어요.
그림책 결말에서 앞에 등장한 여러 명의 ‘나’끼리 만나면 어떨까? 내가 나에게 외손뼉을 내어주는 느낌이 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상처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도 나의 상처와 마주하는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한 거예요. 내가 화면 속 외손뼉에 손을 마주 댈 때 나의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 싶었어요.
하이파이브하는 손을 그릴 때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나요?
하이파이브라는 동작이 짝! 한번이면 끝나는 단순한 동작이라서 최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재미있게 구성하려고 노력했어요. 손의 방향, 형태, 갯수, 인물, 인물의 색감, 색의 에너지에서 변주를 주고자 했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 #페이스메이커는 주제와 어떤 관련이 있나요?
특별하다면 특별한 에피소드인데요. 책을 다 작업하고 나서 오랜만에 체육공원에 나갔었어요. 세 명의 친구가 운동장을 돌며 달리기하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세 명이 같이 뛰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셋 중에 한 명은 페이스 메이커인 거예요. 옆에서 "할 수 있다"고 힘을 북돋아 주며 같이 뛰는 역할이요. 그 때 이 그림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제 안에서 더 구체적으로 정리가 됐어요. 이 그림책을 보는 독자가 누군가를 응원하는 페이스 메이커로 변신하는 신나는 경험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같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는 거죠.
재미있네요. 타인을 응원하는 행위 자체가 자기효능감을 발휘한다고도 하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하신 건가요?
저는 '의존 역설'이라는 말을 봤어요. ‘타인에게 효과적으로 의존할 때 사람은 가장 독립적일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한동안 '독립'의 의미를 '혼자서 잘 해내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쭉 살았던 것 같아요. 외로워도 참고 견디는 것으로. 그래서 커갈수록 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런 나를 인정했던 어느 날, '이제 건강한 사랑을 줄 수도 건강한 사랑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으로 커야지'라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었어요. 그 마음을 이 책에 녹여내고 싶었습니다.
실패도 연습해야 하나요?
젓가락질 연습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음식을 적당히 포크로 찍어 먹어도 별 문제는 없지만 보통 젓가락질을 연습하잖아요. 젓가락질이 수월해지는 단계에 오르면 기본적인 삶의 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사소하지만 작은 실패를 여러번 거듭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실패는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삶에서 마주하는 무수한 실패 때문에 기죽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사뮈엘 베케트의 명언이 떠오르네요.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늘 시도했다. 늘 실패했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그리고 더 잘 실패하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특별히 염두에 둔 독자가 있었나요?
처음 더미북을 만들 당시에는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이 많이 생각났지만, 책 작업 말미에는 독자의 범위가 자연스럽게 늘어났어요. 그림책 첫 부분에 '누군가의 옆을 지키는 누군가를 위해'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이 문장에서 '누군가' 단어를 나만의 인물로 바꿔보시면 좋겠어요. ‘나의 옆을 지키는 나에게’, ‘너의 옆을 지키는 나에게’, ‘나의 옆을 지키는 부모님에게’ 이런 식으로요. 그러다 보면 일상을 꾸준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 다 해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무수한 관계의 세상에서 살고 대부분의 우리는 서로를 지키며 살고 있기 때문이겠죠?
‘지킨다’는 표현이 새롭네요. 저는 다른 사람을 지킬만한 힘이 없는 것 같은데.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거든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지킨다’의 의미는 무엇인지 더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제 한 몸 건사하는 일도 아주 멋진 일이에요. 내가 온전히 나를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겪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어려워하는 때를 더 잘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타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기는 힘들겠죠. 페이스 메이커라는 말이 적합하다고 느낀 이유도 여기 있어요. 예를 들어 타인의 목적이 달리기라면, 대신 달려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달리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관찰해주고 같이 고민해주는 게 페이스 메이커의 역할이잖아요? 이런 맥락에서 '지킨다'는 말은 나와 함께하는 타인을 유심히 보고, 같이 걷기도 하고, 서로를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지킨다는 표현이 저에겐 사랑의 다른 말인가 봐요.
그림책에서 베스트 한 장면을 골라주세요.
치타가 꼴찌 하는 운동회 장면이요. 다소 복잡하게 구성해서 그릴 때 약간 괴로웠는데, 이 장면을 그리고 나니까 좀 후련한 감정이 들었어요. 이 복잡한 그림을 내가 그렸다는 성취감이 아니라 어려서 실수하고 부끄러워서 한켠에 놓아주지 못했던 감정들이 많이 날아가더라고요. "나도 스스로를 도닥일 수 있네, 조금 어른 됐다?" 이러면서. 그리고 원초적으로는 고양이 궁둥이 장면을 좋아해요. 바로 제 고양이거든요.
다소 사적인, '나만 아는' 요소를 작가들이 그림책에 많이 넣더라고요. 그림책에 작가님만 아는 디테일이 또 있나요?
치타가 꼴찌 하는 운동회 장면에 주변 인물들은 전부 제 예전 사진에서 가져왔어요. 부모님의 신혼여행 사진, 아버지가 찍어 주신 운동회 사진 등등 조각 모음 하듯 하나씩 하나씩. 지금 만들고 있는 그림책과 맥락과 이어져 있다면 사적인 요소를 넣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장면에 더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어 재미있었어요.
이 작품을 꼭 보았으면 하는 사람은?
다시 일어날 힘을 기르고 싶은 사람!
작업할 때 주로 어떤 재료를 사용하시나요?
주로 과슈, 연필, 색연필, 콜라주, 포토샵을 사용하는 데 제 눈과 손이 편안한 재료를 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눈과 손이 편해지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고 작업이 잘 나오는 횟수도 절로 늘어나거든요.
작업을 하는 작가님만의 루틴이 있나요?
시간이 있을 때는 좋은 그림을 보려고 노력하고 연구한 다음 제 그림을 그립니다. 작업 시간이 부족할 때는 주로 자료를 리서치하고요. 이번 책 출간은 작업과 삶의 균형에 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이기도 했어요. '살아있어야 그림도 그리지.' 이러면서 건강의 기본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수면, 운동, 밥 일상의 중요한 것들도 제때 잘 챙기려고요!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 추천해주세요.
한 권이라니, 잔인하네요. 결정 장애가 발동하려고 합니다. 이 세상엔 좋은 그림책 진짜 많으니까요. 그러니 '오늘의 추천 책'이라고 할게요(내일은 바뀔 테니까.). 바로바로, 정유미 작가의 <먼지 아이> 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나'의 챙겨갈 부분과 버려야 부분을 잘 분리하고 알뜰살뜰 정리해서 앞으로도 잘 헤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자, 작가로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공유해주세요.
나쁜 점은, 그림 작업을 할 때는 사람을 거의 안 만나게 돼요. 스스로 고립되는 거요. 좋은 점은 책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그냥 꾸준히 균형있게 그림책을 만들고, 나로서도 잘 크면 좋겠어요. 저는 보시는 분들에게 좋은 책 많이 만들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두번째 그림책은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에요. 주변에서 이 흐름을 타서 어서 다음 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을 해주시고 저도 그 말에 너무나 동의하는 데 정리해볼 시간이 필요해요. 지금은 첫 그림책과는 다른 느낌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나에게 그림책이란?
소박한 밥 한 끼 먹고도 충전되는 집. 저의 동료 작가가 작가(作家)는 집을 짓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작가님들이 지어 둔 집을 구경할 때 저는 아이처럼 즐거워요. 그들이 지어 둔 집에서 경험한 일들로 울고, 웃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멍하고, 애틋하고, 천진난만했다가 으스스하고, 이상하다가 설레기도 하고, 고맙고 아무튼 재미있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에너지가 방전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걸 느끼는데요. 굳이 스펙타클하거나 특별한 계기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틈틈이 충전될 때가 있어요. 내 고양이가 앙앙거려 밥을 주면 와작와작 잘 먹는 소리가 좋아요. 부모님이 일 때문에 지친 날에 제 친구들이 놀러 왔는데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해주신 모습이 고맙고, 친구들이 회사에서 감정적으로 나가떨어졌다가 한층 더 단단해진 모습도 고맙고, 가족들이랑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곳에 간 게 기억에 남고, 동생이 언제 스스로 커서 여자친구랑 알콩달콩한 게 기특하고 귀엽고 그래요. 독자들에게 이런 소박한 밥 한 끼도 먹고도 충전되는 집을 지어드리고 싶어요. 놀러 와서 잘 먹고 잘 쉬고, 나가서 일하고, 사랑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자기 자신만의 방식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