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제목을 다시 쓰면 작가 수마나 로이의 ‘사람에서 나무 되는 과정’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에서 어릴 적 겪었던 사소한 경험부터 철학자의 말, 신화, 예술가 등 여러 사례를 통해 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며, 독자에게 나무에 관해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접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어떤 나무가 되고 싶은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46)
나는 슬픔 없는 나무, 익소라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347)
작가는 책의 서두에서 실제로 자신이 어떤 나무가 되어야 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서 비로소 자신이 되고 싶은 나무를 결정한다. 이 책은 이토록 나무를 순수하게 사랑한 마음으로 나무가 되어가는 한 사람의 의식의 여정을 다양한 깊이와 각도로 풀어놓은 에세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나무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생각을 좇으며 펼치는 정도의 사랑은 어떤 크기와 깊이일까. 가늠하기 어렵지 않도록 이 책 속에는 주변 사람들의,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시선에 의문을 던지며 갖가지 방법으로 나무 되기를 시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를 그리거나 몸을 뻗어 나무의 모양을 만드는 일화, 식물과의 결혼 가능성을 생각하기, 몇 년간 하나의 나무만 그리는 작업을 해 온 화가의 이야기 등.
작가가 나무가 되고 싶은 이유라든지, 나무 되기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자세히 나와 있어서 그런 궁금증을 푸는 데는 무리가 없다. 읽으며 오히려 주목하게 된 건 작가의 서술 방식이었다. 작가는 사람과 나무의 차이를 순수한 태도로 탐구하며 그 차이를 바라본 결과를 펼치는 방식을 택한 듯 보인다.
발단은 속옷이었다. 나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나무가 부러웠다. (11)
식물은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 먹기 때문에 비만도 영양실조도 겪지 않는다. (23)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나무가 되고 싶을 정도로 나를 궁지에 몰아붙인 것은 다름 아닌 소음이었다. 사람은 소음을 내고, 나무는 역동적으로 살아가면서도 침묵으로 속삭인다. (42)
구체적으로는 사람에게 허용되고 나무에는 허용되지 않는 사고방식의 차이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이런 이유들은 작가 자신이 나무가 되고 싶었던 동기와 같은 맥락이기 때문에 이러한 서술 방식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태도가 아주 ‘순수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책을 읽기 수월하지 않기도 했다. 이 점은 좀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자주 조형적인 측면에서 나무를 흥미롭게 바라보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끌리는 느낌을 알아보고자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인데, 예상보다 나무에 관한 작가의 탐구 범위는 꽤 광범위했다. 그래서 작가 사고의 전부를 따라가기는 어떤 면에선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혹은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수마나 로이라는 작가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은 나무를 아주 사랑해서 그 자체가 되고자 하는 한 사람의 사고를 온전히 따라가는 방식의 읽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조용히 빛을 먹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림자는 나무의 배설물일까? (118)
가령 위와 같은 문장들. 작가는 나무에 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비롯한 자신의 질문을 이론으로 발전시켜 정립하거나 어떤 해답을 내리지 않고 질문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남겨 둔다. 어떤 관점의 순수한 성격은 이야기를 자의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서 쉽게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그만큼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무를 좋아하고, 그에 관한 관심사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어떠한 편견도 없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도 이 작가의 능력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과제는,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로 나는 나의 나무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인 W.S 머윈은 “당신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328)
특히 3년간 참나무 하나만을 여러 각도에서 그린 테일러의 이야기가 기억에 가장 남는다. 그는 아마 나무를 보며 자신이 보고 싶은 다른 무엇을 발견했을 것이다. 나 또한 나무 자체 보다는 나무를 통해 나의 일부를 혹은 다른 무엇을 보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힌다.
나는 왜 나무를 바라볼까? 원래 가졌던 질문을 되새긴다. 나무에 관한 감정이 애정 보다는 동경심에 가까워 보인다. 조형적으로는 나무가 가진 단단함과 꼬임 때문에, 더 나아가서는 그것이 버티고 선 시간의 요소들 때문에 나무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나무가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앞으로 그 이유와 의미를 밝히는 시간은 나무를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며 대화하는 시간에 가깝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이 리뷰는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의 문화초대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