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이름 붙이기 책리뷰
떠오르는 생각을 아이폰 메모장에 옮긴다. 메모를 다듬어 일기를 쓰고, 어떤 글들은 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그렇게 다듬은 몇 개의 글은 나만의 시편 목록을 차지하며 앞으로도 이 목록을 늘리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다.
종종 하는 이런 행위들이 실은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일에 가까운 행위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메모든 일기든 시든 형태는 달라도, 목적은 같다. 나에게 잠깐 모습을 비추고 안전히 멀리 가버릴 수도 있었던 기분과 감정의 이미지를 내가 잡아 보기를 시도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외면하지 못하는 이미지를 구체화하면 그 시도의 불완전성에 관계 없이, 의미가 옆에 머무르기 시작한다. 단순히 '그렇구나' 생각하고 넘겨 사라지게도 할 수 있지만, 남기고 싶은 욕구를 따라 글과 문맥을 다듬다 보면 원형의 이미지를 완벽히 구현하진 못해도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이 든다. 아니, 가까워진다. 세계가 창조된다.
이 책의 임무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기이함-일상생활의 이면에서 웅웅거리는 모든 아픔, 걱정거리, 분위기, 기쁨, 충동-에 빛을 드리우는 것이다. (14)
우리는 왜 한 언어에 어떤 것을 위한 단어는 있고 어떤 것을 위한 단어는 없는지 평소에 질문하지 않는다. ...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가 된다. 언어는 우리의 인식에 너무나도 근본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어 자체에 내장된 결함을 인식하지 못한다. (16)
언어 자체에 내장된 결함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의 세계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언어가 없더라도 우리는 익숙한 언어에 기대어 그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명되지 못하는 세계의 규모가 커질수록 불안도 커진다. 설명의 가능성은 곧 이해의 척도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림이나 영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경험이나 기분,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말이나 글 뿐 아니라 이미지, 제스쳐 등 다양한 방식의 언어가 사용된다.
이 책은 말과 글을 벗어나지 않고 같은 장르에서 해결하기를 선택했다. 바로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한 번은 느껴보았지만, 구체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삶의 순간에 관해서.
읽으며 뜻밖이었던 건 주제마다 나의 태도와 반응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내면의 세계와 관련된 장은 흥미로웠던 반면, 타인과 세상의 관계에 관한 주제의 장을 읽을 때는 불쾌한 감정이 계속 이어졌다. 삶의 어떤 면은 자세히 알고 싶지만 어떤 면은 반대로 '이렇게까지는 알고 싶지 않다'는 상반된 태도를 발견하게 된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떤 의미들은 아주 와닿고 어떤 의미들은 길가의 간판처럼 무신경하게 다가왔다. 단지 재미있어서 기억하고 싶은 단어들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글이 설명하는 상황에 처해있거나 비슷한 경험을 해서가 아니라, 글을 읽으면 점점 그런 상황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새로운 단어를, 의미를 창조하는 일은 결국 발견하는 일이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유의미한 세계를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어쩌면 '실질적으로' 삶의 판을 뒤집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진짜 이 책의 행위가 갖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기쁘게도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계속되는 어떤 더듬거림에 가까운 말하기와 글쓰기가 명분을 더 얻게 되었다.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앞으로도 언어의 세계를 가꾸고 싶다. 아래에 요즘의 상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단어를 소개하며 리뷰를 마친다.
Sefoverer* | 순간에 집중하며 세상과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 상태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새로 처하는 상황에 기대를 하지만 그 기대가 누락되더라도 절망스럽지는 않은, 사람들의 눈빛을 얻고 교환하고 다시 되돌려주는 일이 피곤하지 않은, 순간의 행위에 집중하는 의미만을 갖는-가령 단지 눈빛을 교환한다는 자체로 만족하는, 더 해석하지 않는- 친구와 나눈 대화가 기억나지 않는 상태를 자유롭게 여기는, 저무는 해와 다시 떠오를 내일을 완전한 연장선으로 느끼는 무료함을 안정감으로 받아들이는 상태.
*보다See-너머Over-영원히Forever의 합성어
**이 리뷰는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로 작성하였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