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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Jun 21. 2024

영화 '퍼펙트 데이즈' 리뷰

부제: 지켜낸 삶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부대낄수록, 세상이 움직이는 원리는 하나가 아니며 각자 살아가는 세계는 어쩌면 어딘가 따로 존재할거란 생각도 같이 자라났다. 더 이상 ‘여기가' 요구하는 대로 나는 살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 내 몸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 맞출 수 없다는 생각은 다른 세계의 초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이 생각 자체도 낯설었지만 인정할수록 편안해졌다. 이건 어쩌면 이상하거나 특별한 경험이 아닌, 시간이 지나면 누구라도 한 번은 부딪치게 될 당연한 관문일지도 모르겠다는 가정으로 바뀌어 갔다.


이 가정이 틀림없이 맞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확인 받은 기분이다. 세상과 삶에 대한 나의 조심스런 짐작과 영화의 이야기가 사실은, 매우 같았다. 히라야마의 삶은 한때 내가 세상의 고정관념에 맞서고 싶었고 노력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어 마음을 간질였다. ‘나답게 사는 것‘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이기에 해묵은 답이기도 할 본질적인 인생의 문제를 상기시켰다. 핵심은 이런 말-나답게 산다-이 통용된다는 현실 자체에 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방해가 얼마나 만연하면 저런 말이 태어났을까.


히라야마의 ‘혼자 살아가는 삶'을 지탱하는 중심 축은 그가 효율적이고 균형 있게 구축한 어떤 루틴이다. 루틴, 즉 매일매일 단순하고 당연하게 반복되어야 하는 규칙들이란 그가 걱정 없이 해낼 수 있는 일련의 행동 모음이자, 한정된 에너지로 해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으며, 노동과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적절히 계산되고 분배된, 일상의 가장 뚜렷한 무늬를 그려 내는 리듬이다. 단순하고 당연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작은 시도로도 일어나는 균열은 너무 잘 눈에 띈다. 그리고 이 균열은 생각보다 빈번하다. 가령 동료의 퇴사로 인해, 범상치 않은 이웃의 등장으로 인해, 불현듯 찾아 온 조카로 인해, 단골 음식점의 만석으로 인해, 혹은 그 주인을 찾아 온 몇 년 전 이혼한 남편으로 인해. 


매일 하나씩 일어나는 균열은 히라야마가 계획한 루틴에는 없으나 그의 삶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화의 의도였겠지만, 그러나 그 균열은 히라야마의 삶을 바꾸는 계기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영화에 히라야마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은 애초에 없다. 그렇다고 그가 삶을 살아내는, 루틴을 지켜내는 의지나 내력을 부각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단지 그의 세계는 그럴 뿐이라고 보여주며, 균열까지 삶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이유는 뭘까.


말을 많이 하지 않고, 특별히 소통하는 친구도 없이 지내는 히라야마에게 사람보다 가까운 것은 자연이다. 영화는 하루가 끝나고 시작하는 사이마다 꿈처럼 등장하는 움직이는 흑백의 상을 반복해 보여준다. 이 이미지는 그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거의 같은 제스처로 찍어내 기록하는 흑백의 나무 사진들과 대응되며 히라야마의 생각과 몸에 원초적 언어로 내재된 것처럼 친밀한 자연을 묘사한다. 방식은 같지만 순간의 빛이나 바람에 따라 모든 사진은 다른 장면으로 기록된다. 히라야마는 그것을 매일, 모두 모은다. 하나도 같지 않은 순간. 그 지금을 살았다는 결과로서 삶. 이것은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더라도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조건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건 한번에 납득하기가 힘들다. 매일 아침 해가 뜨고, 나무는 햇빛에 반짝거리고, 끼니를 챙겨먹고, 목욕하고, 몇 시간 이상은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살아간다는, 이렇게 똑같은 인생이, 그런데 같은 도로를 옆에 끼고 나란히 자전거를 타며 달려가더라도, 한 번은 깊이 포옹하며 감정을 나누더라도, 각자가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은 서로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이치는 경이롭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선택하느냐 마느냐, 그리고 허용하느냐 마느냐. 히라야마는 자신의 삶을 그렇게 살기로 선택했다. 니코는 삼촌의 삶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히라야마의 여동생은 그를 일부는 받아들였을지언정, 일부는 안타깝게 여긴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선택하면 그대로 진행될 삶에는 좌절과 항의, 고됨과 비교, 그리고 악의 없는 입맞춤과 사랑스러움이 끼어든다. 균열은 순간에 존재하며 사라지고 하늘의 빛은 영원히 반짝인다. 그 아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간을 통과하며 울면서, 웃고 그리고 웃으며 우는 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어떤 세계에도 같을 이야기다.



**이 리뷰는 문화예술플랫폼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로 작성하였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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