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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 Dec 08. 2019

당신이 꼭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욕망을 위한 변론

"검사 월급 얼마 안 되죠? 재벌가 사위라는 백그라운드에 미모의 상속녀까지. 이걸 다 가지려면 그쪽도 나한테 뭘 줘야 할 텐데, 뭘 줄 수 있어요?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시 패스. 중앙 지검 검사. 아버진 중앙지검장. 흔한 재벌집 맞선 제안도 수없이 받은 초 엘리트 검사."

이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대화는 실제 드라마 대사다. 재벌가 외동딸과 법조계 엘리트 집안 장남의 맞선 장면. 이 안에 한국인의 세속적 욕망이 투영 돼 있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1년에도 수많은 드라마가 제작돼 전파를 탄다. 그중 주인공 직업이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이거나 집안이 재벌가인 드라마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단어들이 암시하는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소위 '상류층' 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꾸준히 제작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나마 달라진 점은 재벌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뀐 것 정도)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는 방증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사법고시는 폐지됐지만 검사를 포함한 법조인은 여전히 입신양명의 대명사다. 출세를 상징한다.  그들의 엘리트주의와 권위 의식은 오랜 기간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만약 검사와의 소개팅 제의가 들어온다면 마다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되면 좋은 건 그 가족뿐이라는 자조 섞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전문의가 되기 위해 기꺼이 10년 이상의 청춘을 바친다. 그 시간을 견뎌가며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법률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 봉사를 하고 싶어서. 간단한 구호 약품조차 없어 죽어가는 제3 세계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싶어서. 이렇게 대놓고 사회적 미덕이라 여겨지는 이유만을 들어 변호사나 의사가 되고 싶다고 얘기한다면 셋 중 하나이다. 아직 초등학생이거나, 지나치게 순수하거나 또는 거짓말이거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류층이라 분류되는 사람들을 이끈 동기는 대부분 욕망과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날 것 그대로는 표출하기 힘든. 현실 세계에서는 이러한 본능적 요소들이 잘 포장되어 전달될 테지만.

인간은 남들과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인정받는다는 건 곧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원시 시대, 작고 나약한 인간이 덩치 큰 동물들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집단 사냥이 필요했다. 집단 사냥을 위해서는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가 필수적이다. 인망이 잘 형성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사냥에 참여해 삶을 이어가고 자손을 남길 수 있었다. 한편, 제한된 자원은 공동체 간 경쟁과 갈등을 유발했다. 공동체 간에도 마치 인간처럼 다른 공동체와는 구분되고 싶은 집단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류가 뿌리내린 거의 모든 문명에서 '계급' 시스템으로 발현되었다. 아름답진 않지만 사실이다. 인류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해 왔고 그 과정에서 계급이 탄생했다. 우리 내적 기저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절대다수의 국가가 법적으로 신분제를 폐지했다. 그럼 더 이상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가? 이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15년에 등장한 수저 계급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는 곳으로, 입는 옷으로, 졸업한 대학으로, 합격한 시험으로, 하는 일로, 만든 창조물로 자신을 남들과 구분 짓고 싶어 한다. 자신만의 간판을 꾸민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좀 더 노골적이다. 아무나 만나지 않겠다며 사람의 외모와 스펙을 점수화 시켜 자신과 적합한 상대방을 고른다.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이것은 우리 사회가 허락한 자연스러운 본능의 표출이라 볼 수 있다. 좀 더 나아가서는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평가 기준을 통과한 사람이 자신을 선발한 제도의 공정함과 효용성을 믿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표지만 보고 책을 고르지 말라고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 권씩 출간되는 책들 중 독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표지부터 눈에 띄고 봐야 한다. 그래야 한 문단이라도 읽히는 게 현실이다.

다시 맨 처음 드라마 속 대화로 돌아가 보자. 재벌가와 엘리트 법조계 집안의 맞선. 그리고 '무엇을 줄 수 있냐'라고 물어보는 재벌가. 그들의 연애와 결혼은 낭만적 사랑이 아니라 거래이다. 그리고 이 장면 익숙하지 않은가? 당신이 검사가 아니더라도, 재벌이 아니더라도 당신 역시 매일매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계산'을 하고 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커리어 측면에서, 사회관계에 있어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또는 내가 이 사람에게 줄 도움이 있는지. 내가 이 질문을 하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나치게 세속적이다, 이해타산적이다 등등의 비난에 직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지만은 않다. 인간은 속으로는 어느 정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위했다고 생각한 말과 행동 역시 밑바닥에는 이기심이 깔려 있을 수 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 가격이 매겨지듯, 인간관계 역시 하나의 거래처럼 쌍방의 이해가 맞아야 이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인류는 수많은 고민을 했다. 피비린내 나는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파레토 법칙이 말해주듯 자본주의 세계는 20% 특권 층이 나머지 80% 와 맞먹는 권력과 부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삶과 밀접한 수치다. 수능 1~3등급은 상위 23%. 대학교 A 학점 비율도 보통 25 % 내외. 내가 다니는 회사의 상위 고과 비율도 25%이다. 경쟁은 필연적이다. 안타깝게도 인류는 아직 더 나은 발명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인권 사각지대 해소, 공정한 경쟁과 교육 기회 제공, 사회 안전망 확충, 부의 재 분배 등등.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 어떠한 제도라 하더라도 인간이기에 갖는 본능을 실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다양한 내적 욕망이 차별받지 않고 표출될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은 표현 자체가 주는 속됨과 달리 실제론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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