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삶의 목표를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행복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이 목표가 막연하고 추상적인 다짐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행복과 불행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서점에 갈 때면 심리학과 관련된 책들을 들쳐보곤 한다. 그 책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의 아주 일부분이라도 내겐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었던 심리학, 철학 책들 중에서 행복의 정복만큼 문장이 간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논리적으로 행복과 불행에 대해 기술한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나에겐 큰 행운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러셀과 나의 사고방식이 어떤 부분에서는 놀라운 만큼 닮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다르다는 사실은 내게 큰 재미를 선사했다.
러셀은 먼저 현대(20세기 초반)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원인에 대해 설명한다. 행복이 우리 곁을 떠난 여러 가지 이유들을 선정하고, 그것들이 왜 생겨났으며 또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 얘기한다. (논리학과 수학의 대가다운 접근이다) 러셀이 선정한 불행의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는 일상생활까지 퍼진 경쟁 철학이다. 러셀은 사람들은 생존경쟁이 아닌 성공경쟁을 하고 있으며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경쟁에서 승리하여 얻는 성취감 역시 행복의 주요한 원천 중 하나임을 인정하면서도 성공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은 성공한 후 찾아올 권태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날을 세운다.
20세기 초반 미국 얘기지만 2018년 한국에 사는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여전히 경쟁하고 있고 각종 조사에서 지나친 경쟁은 불행의 원인 0 순위로 지목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쟁하는 이유는 경제적 성공을 위해서다. 부자가 되어 남들과 차별화된 소비, 주거환경, 지식과 인맥을 과시하며 자신의 성적, 지적 매력을 최대한 어필하는 것이 목적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 경쟁도 벌어진다. 바로 안정성을 위한 경쟁이다. 2018년 공무원 시험 지원자는 25만 명이 넘는다. 경쟁률은 1:50에 육박한다. 무엇이 됐든 그 시대가 가치 있다고 평가하는 한정된 재화 또는 직업이 경쟁을 만든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경쟁을 없앨 순 없는 것인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경쟁 때문에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경쟁을 없애고 제한된 재화를 분배하는 적절한 장치를 만들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경쟁은 전체적인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그나마 부작용이 가장 적은 재화 분배 방법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것들,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들에 대해 지나친 경쟁심을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꼭 갖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경쟁에서 성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역시 필요하다. (물론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러셀이 지목한 불행 요소 중 하나는 권태이다. 러셀은 오늘이 다른 날과 다르단 것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의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권태에 빠진다고 얘기한다. 권태를 느낀 사람들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서려 한다. 하지만 삶에서 어느 정도의 권태는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러므로 권태를 견디는 능력은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재미있는 영화도 러닝타임 내내 빵빵 터질 순 없고 훌륭한 책들도 지루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내 생각에 중요한 건 그러한 권태로운 순간들을 어떻게 대처하는 가다. 권태로움을 꼭 '견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권태를 견디는 시간 자체가 불행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반복에서 오는 실증이 빠른 편이다.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도 가능하면 매년 다른 업무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피아노를 칠 때도 여러 곡을 동시에 연습하는 걸 선호하고 책을 읽을 때도 서점에 가서 다양한 책을 조금씩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내게 맞는 방식으로 권태를 회피하듯 다른 사람들 역시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걱정이 언급된다.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는데도 걱정거리에 매달려 끊임없이 고민하지 말고 꼭 필요할 때에 적당하게 고민하는 침착한 태도를 기르면 행복과 능률을 엄청나게 증진시킬 수 있다고 얘기한다. 또 어떤 불행이 닥쳐오는 경우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생각해 보고 직접 불행에 부딪히는 것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라 말한다. (아.. 러셀 아재)
또 하나의 불행 요소는 질투다. 이 장의 내용은 무척 흥미로운데 러셀은 질투는 평범한 인간 본성이 가진 여러 특징 중 가장 불행한 것이라 하였다. '질투가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안기고 싶어 하고, 또 처벌받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때에는 반드시 행동을 옮긴다'. 나 역시 질투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인류 전체가 누릴 수 있는 공동 선에 기여하는 경쟁과는 달리 질투의 결과는 대개 약자의 피해로 끝나기 쉽다. 약자가 강자를 질투하는 경우 사실 약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 반대는 실질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러셀은 본능을 만족시키는 생활을 확립하는 것을 제안한다. 나 역시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쉽지 않은 부분임은 분명하다. 다른 사람들의 장점, 업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만약 그러한 것들을 나도 원한다면 나 스스로 노력해 성취하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찾은 최선의 극복 방법이다.
마지막 불행 요소는 피해 망상이다. 러셀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의 피해 망상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얘기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발끈하였다. 내가 피해 망상증이라니! 하지만 글을 읽다 보니 이 말은 정말 나에게도 해당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눈에는 자신의 미덕이 크고 분명하게 보이지만, 남들이 가진 미덕은 만에 하나 있다 하더라도 아주 너그럽게 보지 않으면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라는 문장에서 나 역시 어느 정도 피해망상 성향이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내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단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쿨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문장은 내 뼈를 후려쳤다. ' 흔히 볼 수 있는 피해 망상의 또 한 종류는 박애주의적인 유형으로,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는 그들이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 놀라고 당황한다. 우리가 남들에게 유익할 거라고 믿는 어떤 행동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권력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나는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여기까지 읽으니 나는 거의 중증 피해망상 환자가 돼 있었다. 나는 러셀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을 준비를 해야 했다. 러셀은 피해 망상을 예방하기 위한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1) 당신의 동기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2)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3)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4)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위 원칙들 중 내겐 첫 번째 원칙이 특히 눈에 띄었다. 러셀 선생님 말씀처럼 인습적인 도덕이 강조하는 이타주의는 인간 본성과 잘 맞진 않는다. 가장 고상한 행동들 역시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시작되는 것을 유감스럽고 불쾌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기적인 동기는 열정의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스스로도 그러한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2장 행복으로 가는 길에서 러셀은 행복한 사람들에 갖는 특징에 대해 기술한다. 사실 앞서 설명한 불행의 원인에 대해 잘 이해하고 그것을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왜냐하면 행복은 늘 상대적인 것이고 (기대했던 것보다 결과가 좋으면 행복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덜 불행한 것 역시 행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동의하기 힘든 내용도 많았던 불행의 원인에 대한 내용과는 달리, 행복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는 모든 부분에서 러셀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였다.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은 당연히 쉽지는 않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이런 삶의 태도를 유지한다면 분명 삶 역시 달라질 것이다. 만약 30대 내가 20살의 나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할 수 있다면 이 책을 고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