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너무나도 유명한 대사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서로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던 순간, 한 노인의 절규하며 내뱉는 대사 “제발 그만해! 나, 나… 무서워! 이러다가는 다 죽어!”. 오일남의 이 대사는 단순한 공포의 표현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를 향한 섬뜩한 경고처럼 들린다. 누군가는 픽션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이름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유사한 ‘사회적 오징어 게임’을 벌이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이념, 세대, 젠더, 계층, 지역 등 어느 곳을 들여다봐도 갈등이 없는 영역을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은 기득권에 절망하고, 노인은 변화에 불안해하며, 진보와 보수는 서로를 ‘적폐’와 ‘종북’으로 낙인찍는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젠더 문제로 분열되고, 빈부 격차는 ‘수저 계급론’으로 번지며 청년층의 좌절을 키운다. 수도권과 지방, 남성과 여성,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점점 더 혐오와 배제, 공포와 분노로 반응하고 있다.
“이러다 다 죽어.” 오일남의 외침은 바로 이 왜곡된 생존 논리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지금의 정치, 언론, 교육, 경제는 서로를 살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우리는 진정 ‘공존’을 말하고 있는가?
갈등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갈등은 사회가 성장하는 동력이며 다양한 목소리가 모이는 건강한 징후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갈등이 생산적이지 못할 때다.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에너지가 되어야 할 갈등이 오히려 사회를 침몰시키는 무기로 변질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가 그렇다. 갈등을 풀어가기보다 편 가르기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대결의 정치, 혐오의 언어, 상대방 악마화의 프레임이 일상화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대화의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
바로 지금! “그만하자!”라고 말해야 한다. 대결의 정치를 멈추고, 혐오의 언어를 거두어야 한다. 대화와 타협으로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연대와 공존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한국 사회는 화낼 줄은 알지만 대화와 토론에는 서툴다. 온라인과 거리 곳곳에서 분노는 넘쳐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를 지속하는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는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애초에 대화와 토론을 제대로 '연습해 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는 정답을 외워야 했고, 직장에서는 위계를 따라야 했다. 공적 영역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의견을 나누고,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며 다시 생각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대화의 결핍을 메울 수 있을까? 여기에 한 가지 해법이 있다. 바로 구조화된 대화와 토론이다. 토론은 민주주의의 근육을 단련하는 훈련이다. 의견을 나누고,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의 주장을 경청하며 다시 생각하는 이 과정은 사회 전체에 ‘생각하는 힘’을 키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마을 회의에서, 나아가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까지. 토론이 생활의 일부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싸우지 않고 대화로 해결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이 방법을 어떻게 대중화할 수 있을까? 토론의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발적으로 토론 교육에 참여하고 공적 토론장에 나서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만드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 바로 토론 참여를 소득과 연결시키는 '토론 참여소득' 제도다.
이는 지역이나 온라인에서 구조화된 토론에 참여하면 일정한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경제적 동기가 사람들을 토론장으로 이끌고, 토론 경험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대화하는 시민으로 변화시킨다. 처음엔 돈 때문에 왔더라도, 내 의견이 존중받고 다른 관점을 접하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토론 자체가 삶의 일부가 된다.
참여소득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가 공동체의 구성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역할에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태도다. 오늘날 우리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오래된 명제를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일’이란 무엇인가? 임금을 받는 노동만이 가치 있는 활동일까? 가족을 돌보는 일, 마을 공동체를 지키는 일, 갈등을 중재하는 일,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그 어떤 경제활동보다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참여소득’이란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고 보상하려는 시도다. 기본소득이 무조건적인 생존권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면 참여소득은 일정한 ‘공공 참여’의 조건을 전제로 한 보상형 소득이다. 토론 교육, 공동체 활동, 사회적 갈등 중재, 공적 담론 참여, 멘토링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 기여 활동이 참여소득 조건이 될 수 있다. 이 개념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민주적 인센티브다.
감정을 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감정을 넘어서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방식을 배운 시민이 많아질 때, 한국 사회는 진짜 변화의 문턱을 넘을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훈련에 대한 보상이며, 대한민국을 더 강하고 따뜻한 공동체로 만드는 정직한 투자다.
물론 대화와 토론이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구조적 불평등과 제도적 문제는 정책으로 풀어야 하고, 서로에 대한 상처는 진정한 사과와 화해로 치유해야 한다. 그럼에도 토론은 그 모든 과정의 출발점이 되는 '대화 능력'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경청이다. 더 날카로운 공격이 아니라 더 섬세한 이해다. 그 모든 시작이 '대화와 토론'에 있다.
이 책은 대화와 토론이 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지를 말한다. 어떻게 갈등을 공존의 에너지로 바꾸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토론 참여소득이 그 변화를 어떻게 제도화할지를 제시한다. 이 제도는 분열을 통합으로, 적대를 이해로 바꾸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반이다.
우리는 모두 한 배에 타고 있다.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치킨게임을 계속하다 간 결국 그 배는 침몰한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라는 오일남의 절규를 이제는 "그만하자. 함께 살아가자!"라는 약속으로 바꿔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증오가 아닌 호기심으로 만나고, 갈등을 대화로 풀어가며, 모든 시민이 변화의 주인이 되는 세상 — 바로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미래다. 이 책은 그 변화를 향한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