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전쟁의 대가

by 바담풍


매년 사라지는 싸움 값, 233조 원


국무조정실이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에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분석’을 발주했다. 연구용역 결과,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사회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326조 6천억 원에 달했다. 연평균 233조 원씩 매년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해가 갈수록 이 비용은 증가했다. 1990년부터 2022년까지 33년간 발생한 총 갈등 비용은 2,628조 원이었다. 1990년대에 연평균 31조 원 수준이던 갈등 비용은 2010년 이후 연평균 196조 원으로 6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2016년부터는 매년 300조 원이 넘는 비용이 지출되기 시작했다. 가장 충격적인 해는 2017년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이념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그 해만 무려 1,74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이 발생했다. 이는 한 해 국가예산의 약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2024년 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적 혼란, 대통령 탄핵, 그리고 2025년 대선을 치르면서 격화된 진영 간의 대결. 이 모든 것이 만들어 내는 갈등 비용은 또 얼마나 될까? 2017년 탄핵당시 보다 갈등은 더 극단적이고, 균열은 더 깊으며, SNS를 통한 증오의 전파 속도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 우리는 또다시 천문학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갈등의 종류를 들여다보면 더욱 암울하다. 전체 갈등 비용 2,628조 원 가운데 이념 갈등이 1,981조 원으로 무려 75%를 차지했다. 발생 빈도로는 전체의 6%에 불과하지만 한 번 터지면 엄청난 비용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이어서 노동 갈등 307조 원(11.7%), 계층 갈등 192조 원(7.3%), 지역 갈등 77조 원(2.9%)이 뒤를 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 비용에 최근 급격히 심화되고 있는 젠더 갈등 비용은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젠더 갈등은 출산율 저하와 노동시장 왜곡 등 간접 비용만 고려해도 연간 20~40조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정한다.


233조 원. 이 돈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실감해 보자. 2025년 대한민국의 국방예산은 약 60조 원이다. 233조 원이면 국방예산 4년 치와 맞먹는다. 매년 한국군 전체를 네 번 새로 운영할 수 있는 돈이 아무런 성과 없이 날아가고 있다.


서울 아파트 한 채를 10억 원으로 잡으면 23만 3천 채를 지을 수 있다. 매해 결혼하는 신혼부부에게 무상으로 제공해도 남는 숫자다. 전국의 모든 초·중·고 학생들에게 20년간 무상급식을 제공할 수 있고,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 월 50만 원씩 3년간 지급할 수 있으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KTX 노선을 460개나 새로 깔 수 있다. 반도체 메가팩토리 15개를 세울 수도 있다.


국민연금으로 비교하면 그 규모는 더욱 실감 난다. 국민연금의 1년 치 지급액은 약 90조 원이다. 233조 원이면 국민연금을 2년 반 동안 전액 충당할 수 있다.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인 국민연금 고갈 사태를 막고, 미래 세대에게 연금 고갈 부담을 떠넘기지 않을 수 있다.


기후 위기 대응에도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233조 원이면 태양광 발전소 50GW 이상, 또는 대형 해상풍력단지 20개 이상을 조성할 수 있다. 한국의 탄소중립 목표를 10년 이상 앞당길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 이 돈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 채 그저 허공으로 사라지고 있다.




균열 위에 선 한국 사회


국민 인식 조사는 갈등의 실상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통계청의 「202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심각하게 느끼는 국민은 77.5%에 달했다. 빈곤층과 중산층 간 갈등은 74.8%, 근로자와 고용주의 갈등은 66.4%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종교와 젠더 갈등이다. 불과 1년 사이에 약 9.5% 포인트 급등했다. 이는 정치와 경제를 넘어 선천적으로 바꾸기 어려운 영역까지 갈등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의 90%가 한국사회 갈등을 '심각하다'라고 답하고 있다. 67%는 "작은 불씨에도 순식간에 폭발할 정도로 위험하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통계가 아니라 공포다.


국제 비교는 더 충격적이다. OECD 30개국 가운데 한국의 갈등지수는 3위다. 반면 갈등관리지수는 27위에 머물렀다. 갈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심각하지만 이를 해결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최하위권이라는 뜻이다.


민간 연구기관들도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사회적 갈등 비용을 최소 82조 원에서 최대 246조 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2013년에는 사회갈등지수가 10%만 하락해도 1인당 GDP가 7.1% 증가한다고 분석했고, 사회갈등이 OECD 평균 수준이 되면 1인당 GDP가 27% 늘어나 약 5,000달러 이상 오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의 갈등 수준이 OECD 평균으로만 낮아져도 GDP가 0.2% 포인트, G7 수준으로 개선되면 0.3% 포인트 성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갈등 해소만으로도 경제가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통합의 가치


갈등을 줄이고 통합된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근본적인 가치가 그 안에 담겨 있다.

갈등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며, 공동체의 토대를 흔든다. 아무리 부유한 나라라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불신이 만연하고 대화가 단절되어 있다면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경제성장률이 높아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외롭고 불행하다면 그건 붕괴하고 있는 사회다.


갈등을 줄이는 일은 국민의 행복을 회복하는 일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다른 목소리도 존중하며, 갈등을 대화로 풀어가는 경험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신뢰, 소속감을 준다. 내 의견이 존중받고 내 목소리가 사회의 의사결정에 반영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된다.


또한, 통합된 사회는 삶의 질을 높인다. 이웃과 관계가 회복되고, 직장에서 협력이 강화된다. 정치가 국민을 위한 진짜 논의를 시작할 때, 국민들은 단순히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 삶의 만족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가 갈등을 관리하고 통합을 추구하는 이유는 미래 세대에게 더 많은 부를 물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더 안전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남기기 위함이다.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의 상실은 역설적이게도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나타나고 있다. 매년 사라지는 233조 원. 이 천문학적인 금액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신뢰, 사라진 대화, 그리고 무너져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물론 갈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갈등은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마찰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갈등을 건강하게 조정하느냐, 아니면 파괴적으로 방치하느냐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효과적인 갈등 관리를 통해 연간 70-115조 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국가예산의 10-20%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정치 협치 강화, 숙의민주주의 제도화, 대화와 토론 문화 확산을 통해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 통합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제도와 참여를 통해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선택이다.


그러나 갈등을 방치한다면 그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미래 세대에게 더 큰 빚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되살린 70-115조 원을 교육·복지·환경·산업혁신에 재투자한다면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한 선순환이 가능하다. 갈등 관리는 단순한 분쟁 해결이 아니라 국가 자원을 되찾아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지금까지 우리는 갈등이 남기는 보이지 않는 비용과, 그것을 줄였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살펴봤다. 갈등은 단순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뉴스의 헤드라인, 거리의 시위, SNS 속 끝없는 논쟁처럼,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생생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제는 숫자와 이론을 넘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갈등과 분열의 실체를 마주해야 할 때다. 그 갈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토록 해결이 어려운지를 이해해야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02화“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