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대화를 잃었나?

by 바담풍


침묵과 복종의 교육이 만든 대화 실종 사회


한국 사회의 대화 단절은 단순한 개인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 뿌리는 교육과 문화와 사회 구조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 법,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 법을 어려서부터 학습해 왔다. 질문은 반항으로, 비판은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지는 문화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정답을 맞히는 능력만을 기르며 자랐다. 그 결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남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익숙한 침묵, 익숙한 수용, 익숙한 복종. 이것이 한국 사회가 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된 배경이다.


이러한 문화는 학교에서만 아니라 가정, 직장, 정치 공간 등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위계가 강조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의 특권처럼 작동하고, ‘듣기’는 일방적인 수용으로 이해되기 일쑤다. 상명하복의 문화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갈등이 발생하면 토론보다는 무시와 회피 혹은 일방적인 억압이 먼저 등장한다. 누군가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순간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질문자는 분위기 깨는 사람이 되기 쉽다.


이런 문화 속에서 성장한 시민들은 비판적 사고와 공론장 참여 경험이 부족하다. 공공 문제를 논의할 언어와 기술을 익히지 못한 채 정치적 의사 표현은 혐오 댓글이나 단편적인 구호에 의존하게 된다.




대화가 사라진 사회는 학교에서도 대화를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만든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입시 때문이다.

공교육이 여전히 정답을 말하는 능력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은 대화 능력 퇴행의 핵심 원인이다. 입시 중심 체계에서는 창의적 표현, 비판적 사고, 경청과 협력 같은 사회적 능력이 시험에 반영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기'와 '잘 듣기'는 채점이 어렵고 점수화되지 않기 때문에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학생들은 빠른 암기와 정확한 정답 찾기를 반복한다. 질문이나 반론은 교사의 수업을 방해하는 행위로 인식하게 된다. 침묵은 순종의 미덕으로, 비판은 문제적 행동으로 여겨진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생각은 많지만 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이런 경험은 사회에 나가서도 의견을 조율하거나 협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침묵을 선택하게 된다.


입시 중심 교육은 또한 경쟁을 강화한다. 나의 성공은 곧 누군가의 실패를 전제로 하고 친구는 함께 토론하는 동료가 아니라 점수를 겨뤄야 할 경쟁자가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협력은 비효율로 여겨지고 질문은 시간 낭비로 간주된다. 질문보다는 답이, 공감보다는 평가가 우선이다. 이러한 경쟁 중심의 문화 속에서 자란 세대가 만들어내는 사회는 결국 공동체 언어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교육 환경은 민주 시민 핵심 역량이라 할 수 있는 공적 대화 능력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정치, 사회, 문화 등 직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이 단지 정치적 의견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 의견 차이를 조율하고 논의할 언어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경청과 대화는 민주주의 언어지만 지금 교육 체계는 여전히 명령과 복종의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침묵과 복종 교육은 갈등에 직면하는 방식을 배우지 못하게 만든다.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을 설명하고 타인과 협상하며 해법을 찾는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이들은 두 가지 반응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침묵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다. 학교에서 자기 입장을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상대방 말을 공격하거나 혹은 자기 의견을 스스로 묵살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공론장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교육은 평생의 사고방식을 결정짓는다. 생각을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언어로 풀어내기보다 감정으로만 반응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말하지 않는 사회를 재생산한다. 공교육이 침묵을 장려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말없는 시민을 양산하게 된다.




질문이 사라진 강의실, 말하지 않는 대학생들


“질문 있습니까?” 어느 대학교 강의실, 수업이 끝나고 교수는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는지를 묻는다. 순간 모든 학생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챙기며 조용히 자리를 정리한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다.

이에 교수는 자신의 신임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너무 떨려서 선배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긴장하지 않고 수업할 수 있을까요?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긴장할 필요 없어. 학생들은 절대 질문하지 않아.”

EBS에서 방영된 ‘다큐 프라임 – 우리는 왜 대학에 가는가’의 내용이다.


한국의 대학 강의실은 이처럼 침묵이 일상화된 공간이다. 교수의 “질문 있습니까?”라는 말은 형식적인 절차로 여겨지고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한다. 누군가 질문하려 손을 들면 주변의 시선이 쏠리고 그 용기는 자칫 분위기를 깨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학생은 ‘나댄다’라는 표현까지 쓰며 질문하는 학생을 은근히 비꼬거나 거리감을 둔다.


질문은 더 이상 지적 호기심의 표현이 아니라 눈치 없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질문이 조롱의 대상이 되고 질문자가 고립감을 느끼는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점점 더 침묵을 선택한다. 결국 강의실은 사고 확장이 아니라 정답을 암기하는 일방적 공간으로 퇴화하고 만다.


이런 침묵 수업은 단지 수업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학습된 문화이자 내면화된 두려움의 결과다.

이런 분위기는 학생들 태도만 문제 삼기 어렵다. 강의 방식과 교육 구조, 그리고 대학 문화 전반이 질문을 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교수들은 일방적으로 강의를 진행하기를 선호하며 질문을 환영하기보다는 진도를 방해하는 요소로 여긴다. 학생들 역시 질문은 수업 방해라는 인식에 익숙해져 있다. 무엇보다 ‘틀린 질문’을 두려워한다. 초중등 교육에서 길들여진 ‘정답 중심’ 사고는 대학에서도 계속 작동하며 질문은 틀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만 가능한 행위로 인식된다.


이러한 분위기 근저에는 더 깊은 문화적 구조가 놓여 있다. 위계 구조다. 한국 사회는 나이와 직책에 따른 권위가 강하게 작동하는 문화다. 교수는 말하는 사람이고 학생은 듣는 사람이라는 고정된 역할 속에서 질문은 도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질문은 소통이 아니라 무례로 여겨지고 반박은 학문적 발전이 아니라 인격적 불손함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는 학문의 핵심 도구인 질문을 사실상 봉쇄한다.


대학생들도 점점 질문하는 법을 잃어간다. 질문은 교수의 평가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불안, 친구들 사이에서 튀고 싶지 않다는 눈치, 어릴 때부터 학습된 ‘입 다물기’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학생들은 질문하는 대신 노트 필기와 수동적 수용에 익숙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말하지 않는 대학생’은 졸업 후에도 회의 자리나 조직 내에서 발언을 주저하고 갈등 상황에서는 침묵하거나 감정적으로만 반응하게 된다. 대학이 질문을 가르치지 않는 사회는 결국 공론장을 잃어버린 사회로 이어진다.




다른 나라와의 비교는 이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서구의 많은 대학에서는 질문을 ‘학생의 권리’이자 수업 참여의 기본으로 여긴다. 강의실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공간이 아니라, 의견을 교환하고 주장과 반론을 통해 이해를 심화하는 장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이 시간은 내 시간이다”라는 인식으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토론에 참여한다.


미국 대학의 한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강의 시간은 내 시간입니다. 내가 등록금을 내고, 내 시간을 투자해 온 자리인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을 그냥 넘어갈 이유가 없죠.”


소규모 튜토리얼이나 세미나에서는 학생의 질문이 강의의 핵심 논점이 되기도 하고, 교수는 오히려 학생의 발언을 촉진하는 진행자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문화에서 참여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태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차이의 핵심은 ‘강의를 누구의 것으로 보느냐’는 관점에 있다. 서구 대학에서 강의는 교수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이 함께 지식을 구성하는 공동의 과정이다. 따라서 학생의 질문은 수업을 완성하는 필수 요소다. 때로는 학생의 예상치 못한 질문이 강의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고, 그 순간이 생산적인 배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문화는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와 공개적 논증 능력을 자연스럽게 길러준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조직 내 공론 형성과 문제 해결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


반면 한국의 대학은 여전히 조용히 잘 듣는 것이 좋은 학생의 표본처럼 여겨진다. 질문은 교수의 강의를 끊는 실례이고,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행위로 생각한다. 이러한 문화는 대학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소통 방식을 규정한다. 질문하지 않는 학생은 질문하지 않는 시민이 되고, 침묵하는 조직 문화를 재생산한다.


질문은 단순한 학습 수단이 아니라 민주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의 핵심 역량이다. 스스로 질문하고, 비판하고, 상대와 소통하는 힘은 정치적 의견 차이와 사회적 갈등을 조율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은 그 능력을 길러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축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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